새벽에 자주 잠이 깹니다. 일찍 잠자리에 드나 늦게 드나 서너시면 눈이 저절로 떠집니다. 예전에는 다음 날 출근할 생각에 다시 잠을 자보려고 애를 썼지만 애쓴다고 달아난 잠이 오지않는다는 걸 알게 된지라 단념을 합니다. 캄캄한 새벽,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예전에는 컴퓨터앞에 앉거나 책을 보았는데 눈이 아파서 지금은 못합니다. 누워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앞으로 살 계획보다는 지난 삶을 반추하는 일이 많습니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잘 한일은 뭐였으며 후회스런 일은, 가장 기뻤던 일은 뭐였을까. 가장 억울했을 때는 언제였으며 보람된 일을 한 적은 또 언제였을까

잘한 일도 많고 기뻤던 일도 많고 발등을 찧을 정도로 후회스런 일도 많고 가슴을 칠 정도로 분통터지는 일도 많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보람된 일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사회와 인류의 평안과 발전보다는 나 개인의 영달과 안락에 촛점을 맞추어 살아서일 겁니다. 열심히 일하고 세금 속이지않고 내고 법 잘 지키면 내 할일은 끝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으로 살아서일 겁니다. 눈을 들어 주위를 살펴보면 내 손길을 기다리는 곳이 수도 없이 많은데. 보람찬 일 할 데가 수도 없이 많은데.

드디어 내가 보람된 일을 했습니다. 이동봉사, 즉 한국에서 강아지 두 마리를 미국으로 데리고 들어온 일이었습니다.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어놓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있었어요. 미국으로 들어와야 할 갖가지의 사연을 안은 강아지들이 줄을 이어 기다리고 있는 미시유에스에이 입양 이동봉사방에 들어가 그중 눈에 먼저 뜨이는 곳에 연락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망설이기만 하고 선뜻 나서지 못했던 이동봉사. 지난번 블루를 입양하면서 이동봉사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꼈던 바, 한국방문을 하게되면 반드시 하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이번에 그 결심을 실행으로 옮긴 거지요. 뿐만 아니라 이번 한 번으로 끝내지않고 앞으로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계속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사실은 봉사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뭐합니다. 내가 한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내 귀국 날짜와 시간에대한 정보, 항공기명, 그리고 번호를 가린 여권 앞면을 사진찍어 보낸 게 다였습니다. 그것만 제공하면 강아지의 미국입국에 필요한 제반서류를 그쪽 봉사자들이 다 알아서 준비합니다. 물론 강아지 비행기삯도. 하다못해 미국 입국시 강아지케이지 이동을 도와줄 짐꾼 팁까지 내 손에 쥐어주더군요. 나는 그냥 두 손 놓고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 공항에 한 시간 일찍 나갔습니다. 출국할 강아지들의 검역과 검역서류를 넘겨받아야 했으니까요.

검역소에서 나는 많이 울었습니다. 안산시 보호소와 용인시 보호소에서 내가 이동봉사해야 할 강아지, 아름이와 화윤이를 각각 데리고 온 봉사자가 ‘그만 우세요’라고 달랠 만큼. 주인한테 버림받고, 한국이라는 나라한테서도 버림받아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는 두 강아지들의 겁에 질린 눈망울을 보니 나도 모르게 그냥 눈물이 터진 겁니다. 케이지 안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아름이와 화윤이에게 나는 말했습니다.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아주아주 옛날, 최인호가 쓴 소설에서 한 남자가 공짜 비행을 하는 방편으로 미국으로 입양되는 고아들을 데리고 비행기를 타는 내용이 있었던 게 기억납니다. 그때는 넘쳐나는 고아문제를 해외입양으로 해결했답니다. 정부차원에서 해외로해외로 고아들을 보냈다고 합니다. 세계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랐다는 지금은 강아지들을 내보내네요.

화윤이는 안락사명단에 여덟번이나 올랐던 강아지였다고 합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하얀 털을 가진 잘생긴 강아지였는데 덩치가 좀 크고 믹스라는 이유로 아무도 입양해가지 않았답니다. 한정된 공간에 유기견들은 자꾸 들어오고 기존의 강아지들을 죽여서 새 자리를 만드는 수밖에 없는 한국보호소의 비참한 현실 앞에서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 화윤이는 안락사명단 일 순위였다는 겁니다. 그러나 봉사자들이 화윤이 이름을 뒤로 빼주었다고합니다. 이제 두살밖에 안된 화윤이, 착하고 순하고 점잖아서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말썽 한 번 안 부리는 화윤이를 차마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뒤로 이름을 빼주는 것도 한 두번이지 입소를 기다리는 강아지들이 넘쳐나는데 화윤이만 매번 봐 줄 수 없는 형편아니겠습니까. 이번에 또 안락사 명단에 올랐답니다. 그래서 자원봉사자들이 화윤이를 미국에 보낼 결정을 내렸답니다. 한국에 남아있으면 분명히 죽을 거니까 일단 미국 동물단체로 보내서 입양처를 살펴보는 걸로. 그런데 미국으로 보낼 방법이 난감합니다. 빨리 이동봉사자가 나타나야하는데, 그래서 안락사가 시행되기 전에 미국으로 보내야하는데. 봉사단체에서 모두 애가 탔다고 합니다. 그랬는데 내가 이동봉사를 하겠다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화윤이를 데리고 나온 봉사자가 내게 몇 번이나 머리 숙여 감사를 표했습니다. 화윤이를 살려줘서 고맙다고. 그녀가 고마워할 이유가 뭐 있겠어요. 그녀 역시 봉사자인데. 그런데도 그녀는 몇번이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지난 분 블루를 보내 준 ‘BFA’ 의 회원들도 그렇고 이번에 공항에 화윤이와 아름이를 데리고 나온 두 봉사자들도 그렇고 그들은 유기견보호소에서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두 따로 직장들이 있습니다. 그 바쁜 중에도 시간을 짜내서 유기견들을 구하고 임보하고 입양시키는 일을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동물들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국가가 운영하는 보호소의 실정이 너무나 열악하기에 자기들이 나서지 않으면 많은 강아지들이 지옥같은 추위, 더위, 배고픔, 목 마름에 시달리다가 죽음에 처해지기 때문에.

내 강아지이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온갖 학대를 일삼는 인간들에게서 강아지를 구해내올 때는 온갖 봉변을 당한다고합니다. 욕을 몇 바가지 얻어 먹을 때도 있고 때로는 폭력도 당하고. 그럼에도 그들은 그 누구도 시키지않은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숭고한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구조한 개들이 좋은 가정에 입양돼 행복하게만 살아준다면 지금 고생쯤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들에 따르면 유기견들의 국내입양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랍니다. 특히 믹스견이나 나이가 많고 덩치가 큰 친구들은. 걔네들을 살리는 방법은 해외입양밖에 없는데 다행히 해외에서는 국내에서 입양되지 못하고 죽음의 문턱에있는 강아지들을 쉽게 받아준답니다. 내가 데리고 온 화윤이와 아름이도 ‘줄리의 플레이스’라는 동물단체에서 받아갔어요. 그 단체에서 한국에서 온 강아지들을 일단 맡아 보호하고 있으면서 적임자를 물색해 입양을 시키는 것입니다.

한국쪽 봉사자들과 미국쪽 봉사자들의 노력으로 겨우 입양가정을 찾아도, 화윤이처럼 안락사 시킬 수 없는 강아지를 해외로 보내려해도 이동봉사할 사람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안타까운 일이 자주 있다고합니다. 미국쪽의 샌프란시스코라인은 이동봉사하는 사람이 그런대로 끊이지않고 있는 편인데 토론토, 밴쿠버, 시애틀, 뉴욕 쪽이 이동봉사자가 귀한 편이며 시카고와 텍사스도 잘 없다고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 위에 언급한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제발 나서 주세요. 이동봉사해 주세요. 우리들의 관심이 한 생명을 살립니다.

그날 검역소에서 올해들어 이동봉사만 네 번째한다는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이 미시유에스에이에서 ‘몰리맘’이란 닉네임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분의 남편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에 출장을 자주 가는데 갈 때마다 이동봉사를 한다고 했어요. 이번에는 간질 비슷한 증세가 있어 국내에서는 입양길이 막힌 한 진도개를 맡아 시애틀로 데려간다고하더군요. 그에게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대신 나는 말했습니다. “정말로정말로 귀한 일 하십니다....”

고맙게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서도 해외로 나가는 강아지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고합니다. 강아지들이 짐들과 같이 취급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빛이 들어오고 온도가 조절되는 ‘생물칸’ 에 실어준답니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에서는 입양되어가는 강아지들을 제일 늦게 실었다가 비행기가 도착하자마자 제일먼저 꺼내주는 등의 편의를 베풀어 준다고하네요.

이렇게 개인과 단체와 항공사에서까지 열심히 마음을 합치면 뭐합니까. 정부는 관심조차 없고 개인들이 유기하는 개와 고양이들은 갈수록 늘어가는데. 개와 고양이가 한 주인과 생애를 끝까지 마치는 경우가 20%가 안 된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길거리로 내몰리는 개와 고양이들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내 막내동생은 아파트가 싫다고 주택을 직접 지어서 살고 있는데 주위에 길고양이들이 말도 못하게 많답니다. 앞 마당에서 물이랑 밥을 주면서 동생이 거둔 고양이들이 수십마리가 넘는답니다. 문제는 이웃사람들과의 마찰. 물과 밥을 제공하니까 동네 고양이들이 다 모여들어 냄새와 소란을 피워대서. 그래도 동생은 꿋꿋이 그 일을 했는데 어느 날 아침에 보니 예닐곱 마리의 고양이가 피를 토하고 죽어있더랍니다. 이웃에서 쥐약을 놓은 거지요.

동생은 시에다 연락을 했답니다. 기하학적으로 늘어나는 유기견유기묘 개체수를 줄이는 방법은 하나, 길에 떠도는 고양이와 개들을 몽땅 거두어다가 중성화 수술을 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그러나 ‘예산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답니다. 떼를 지어 몰려든 외지인들이 벌이는 무질서속에 산더미같은 오물과 쓰레기만 양산하는 무슨무슨 축제는 사흘들이로 개최하면서 예산이 없다고.

아닌게아니라 한국의 길거리에는 개와 고양이천지입니다. 그 중에는 밖에 나가서 놀으라고 주인이 풀어놓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유기된 것들이랍니다. 그렇게 거리를 떠돌다가 개장수들한테 잡혀 솥으로 들어가는 일이 부지기수랍니다. 아니면 차에 치여 죽음을 당하거나 불구가 되거나. 다리 한 쪽을 잃고 세발로 껑충거리고 다니는 개 한 마리를 길에서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요.


이 글을 쓰고 있던 중, 아름이가 한 미국인 가정에 입양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작은강아지라 쉽게 입양이 된 것 같습니다. 아름이를 안고 행복해하는 가족들의 사진을 보면서 나는 감사와 안도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화윤이도 곧 좋은 가정에 입양이 되겠지요.

측은지심에 의해 유기견이나 유기묘를 입양한 사람들이 나중에 말한답니다. ‘내가 널 구한 줄 알았더니 네가 날 구했다’고. 지금 내가 그런 심정입니다. 우리 블루를 데려다 준 아가씨를 본받아 해보기로 결심한 이동봉사, 그 결심을 지키기 위해 시도해봤던 이동봉사, 이렇게 큰 보람과 기쁨으로 돌아 올 줄이야. 작은 후회가 가슴을 칩니다. 진즉 좀 할 것을, 하는 후회가.

- 사진은 아름이를 입양한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