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지난 6월 15일에 올린 ‘이 아름다운 부부’의 후속편입니다.

"친구야, 오늘 뜻밖에도 장갑이 가득 든 커다란 박스를 받았다. 장갑 필요한지 어떻게 알고 이렇게 많이 보냈노. 장갑가게 차려도 될 만큼이네. 아내가 무척 좋아하더라. 아주 요긴하게 잘 쓰긴하겠지만 미안하네. 미안하고 고맙네...”

최근, 호찬이로부터 받은 카톡내용입니다. 아주아주 튼튼하고 얇은, 질좋은 라텍스장갑 1000장을 소포로 보냈거든요. 의사들 수술할 때 쓰는 장갑으로 의료업계에 종사하는 한 지인의 도움으로 구할 수 있었습니다. 20여년이란 오랜 세월을 누워만 있는 호찬이는 장의 활동이 원활하지 못해 제 힘으로 변을 밀어내지 못한답니다. 부인이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 손으로 직접 파내야한대요. 그 장갑이 많은 도움이 되겠지요.

물론 한국에서도 장갑은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백불 가까이되는 송달료 들여가며 장갑을 부친 이유는 멀리서도 호찬이를 잊지않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어서. 용기를 잃지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서.

호찬이는 부인과 자녀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점점 소외되고 있답니다. 최근, 2주동안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형제 중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은 것은 물론, 전화 한 통 안 하더랍니다. 호찬이는 혼자 숨죽여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지난 번 한국방문 때 호찬이와 부인을 만나 사고경위를 좀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운’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똑같은 시술을 받았는데 누구는 씻은 듯이 나아서 훨훨 날아다니고 누구는 평생을 자리보전하고 누워있게 되고. 순전히 운이 나빴다고밖에 볼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호찬이는 평소 허리디스크라는 지병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치아기공사라서 매일 앉아서 일을 했기때문이었습니다. 병원이나 척추신경원가서 치료를 받아도 그때 뿐, 허리때문에 늘 고생을 하던 중 한 태권도장 사범이 ‘손으로 뼈를 맞추어서' 감쪽같이 치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답니다. 본인의 태권도도장에서 운동하다가 삐거나 다친 사람들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호찬이같이 허리나 목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그의 손에 의해 깨끗하게 완쾌되었다는. 실제로 목디스크로 몇십년을 똑바로 서지 못했던 사람이 그 태권도사범의 치료(?)를 받고 멀쩡해져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호찬이가 직접 보았답니다. 호찬이가 솔깃해진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호찬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태권도사범을 찾아갔답니다. 앞으로는 허리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겠다는부푼 희망을 안고. 그러나 그날, 운이라는 놈이 호찬이곁을 떠나있던 그날, 호찬이는 쓰러지게됩니다. 뼈를 맞춘 후 도장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쓰러진 후 두 번 다시는 제 발로 걸을 수 없게 된 겁니다. 목 아래로 전부 마비가 되어버린 겁니다.

허리디스크 외엔 등산, 축구 등 온갖 스포츠를 즐길 정도로 건강에 아무 문제없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통나무처럼 되어버렸으니 호찬이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충격과 경악이 얼마나 컸겠어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겠지요.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 며 뻔뻔하게 나오는 태권도사범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일단 뒷전이고 하루라도 빨리 다시 일어나서 걸을 수 있어야한다는 조급함과 절박함으로 첫 몇년동안 안 해본 치료와 시술이 없다고 합니다. 전국의 유명병원이란 병원은 다 가보고 좋다는 약이란 약은 다썼답니다.

수백만원 들여서 굿도 여러번했다고 해요. 원한맺힌 조상신들의 해꼬지때문이라고해서. 의심쩍은 마음이 들긴 했지만 조상신의 한을 풀어주면 벌떡 일어나서 다시 걸을 수 있다고 장담하는데 어떻게 그 말을 안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인간의 가장 추하고 악한 부분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물에 빠져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간절한심정의 사람을, 그 사람의 가장 취약한 곳을 공략해서 돈을 갈취(이 표현밖에는 적당한 다른 표현이 없는 것 같습니다)하는 그 무당들의 심리는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요. 내 절친한친구도 무당이긴 하지만 하늘에 머리를 두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는 없을 텐데.

그런 세월을 몇 년 보냈으니 당연히 집안살림은 엉망이었겠지요. 당시 중학생이던 두 아들은 직접 밥을 해먹고 빨래를 해입으며 학교를 다녀야했다고 했습니다.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버린 거지. 기르던 강아지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유난히 개를 좋아해서 동호인 모임에 가입해 활동할 정도였던 호찬이에겐 애지중지하던 강아지 두 마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지내느라 강아지들을 제대로 건사를 할 수 없었으니 강아지들 꼴도 말이 아니었겠지요.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남을 주었다고합니다. 그게 지금까지 가슴이 아프다는 호찬이.

정말로정말로 온 집안식구가 호찬이에게만 매달려 최선의 노력과 정성을 쏟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찬이의 몸 상태가 나아졌다면얼마나 좋았을까요. 조금이라도 개선될 기미를 보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전혀 차도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뭉텅뭉텅 들어가는 병원비에 교통비에 약값에 그동안 모아놓은 저축을 거의 다 탕진할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말입니다. 수입이 없으니, 나가는 돈은 많은데 들어오는 돈은 일절 없으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호찬이었습니다. 어느날 호찬이가 부인에게 선언했다고합니다. 포기하자고. 마지막 남은 재산인 아파트마저 팔기 전에 그만 하자고.

그렇게 호찬이는 서너평 남짓한 방에 갇히는 몸이 되었습니다. 하루종일 텔레비젼만 쳐다보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하늘 한 번 못 보고 바람 한 줄기 못 쐬고 햇빛 한 번 못 쬐는.

부인이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고하나 대소변 하나도 혼자 스스로 처리 못하는 호찬이의 절망감과 상실감은 우리가 상상하는 정도보다 더 컸을 겁니다. 죽으려고 별짓을 다해보았다고해요. 그러나 번번이 부인의 눈에 뜨여 중단이 되었고 그럴 때마다 같이 부여잡고 통곡하기를 수십 번...

많이 나아졌다고는하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한국정부의 혜택은 아직도 형편없습니다. 국가에서 지급하는 장애연금이 한 달에 30만원도 안 된답니다. 특히 호찬이의 경우는 두 아들과 부인이 부양할 수 있다해서 별다른 혜택이 없대요. 그래서 부인이 틈틈이 일을 해야 한답니다.

일반외출은 꿈도 꾸지 못하고 한 달에 한두 번씩 정기첵업하러 병원에를 가야하는 일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고해요. 십몇 층 아파트에서 호찬이를 데리고 내려와 곳곳에 계단인 길을 지나 차에 태우는 일은 장정 서너명이 붙어도 힘든 일일 겁니다. 그 일을 부인 혼자서 다 했다고하네요. 자기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하는 부인을 보는 호찬이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얼마나 미안했겠습니까. 그래서 나중에는 호찬이가 병원에를 안 가는 편을 택했다고합니다. 병원가 봤자 나아지는 것도 없는데 차라리 부인이라도 좀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그 마음이 눈물겹습니다.

호찬이부인은 외동딸이랍니다. 연로한 부모가 현재 치매상태인데 돌봐 줄 사람이 없답니다. 부모님 걱정에 항상 마음이 불안하대요. 부모님 이웃사람에게서 전화라도 오면 가슴부터 철렁 내려 앉는답니다. 일 주일에 한두 번씩 차로 두 시간 거리의 부모님한테 가서 빨래랑 음식을 해놓고 돌아오는데 매번 발걸음이 떨어지지않아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태어난 자체가 블행이요, 사는 게 고해라지만 그녀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참 무겁습니다.

한때 교회를 나가기도했지만 언제부터인지 신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나였습니다. 신이 있다면 작금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일들을 방관만 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요.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부디 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디 신이 있어서 우리 호찬이부부를 축복해 주기를. 강인함을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