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좀 과격합니다. 그러나 글을 끝까지 읽어보시면 왜 저런 제목을 붙였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최근 미국에 사는 한 일본여성이 ‘로맨스 스캠’에 속아서, 그러니까 결혼하자고 접근한 사기꾼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이십만달러를 갈취당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이십만달러, 어쩌면 그 여성에게는 전재산일 수도 있고 목숨과도 같은 돈일 수도 있을 텐데. 앞으로 그 여성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잃은 돈도 돈이지만 사기꾼에게 바보같이 속아넘어갔다는 자괴감과 상실감에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있을까요. 다시 사람을 믿고 신뢰할 수 있을까요.

언제부터인지 뉴스에 ‘로맨스 스캠’이란 기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카카오스토리나 페이스북 등 SNS에 노출된 정보로 여성에게 접근해서 돈을 뜯어내는 신종사기라고합니다.

이들 사기범들은 의사, 군 장성, 회사의 CEO, 정부고위간부 등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업군으로 포장하여 처음에는 아주 신사적으로 말을 건답니다. 호기심에 여자가 반응을 하면 그때부터는 당신의 사진을 보고 반했다. 당신은 내가 여지껏 찾던 이상형이다. 이혼(혹은 사별)하고 외로움에 지쳐가던 중 당신의 만나게됐다. 이는 신의 계시다. 당신만 좋다면 결혼하고 싶다는 류의 달콤한 말로 적극적으로 구애작전을 펼칩니다. 물론 그럴 듯한 사진과 함께.

여성이 그 말을 다 믿는다 싶으면, 완전히 포섭되었다 싶으면 그때부터 돈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병원을 증축해야하는데 자금이 조금 모자란다. 조상으로부터 큰 재산을 물려받은 게 있는데 어떤 사정으로 묶여있다. 해결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물론 나중에 몇 배로 갚아주겠다. 우리 결혼식에 필요한 선물과 자금을 당신 이름으로 보냈는데 금액이 크다보니 세관에 걸렸다. 엄청난 벌금이 나왔는데 내 달라 등등의 그럴싸한 이유를 대면서. 장차 의사부인, 장군부인, 회장부인으로 신분이 바뀌게 될 꿈에 부푼 여자는 앞뒤 생각없이 시키는대로 돈을 송금하게 되겠지요. 목적을 달성한 사기범들은 서둘러 연락을 차단해버리고. 여자가 속은 걸 알아차린 후에는 벌써 거액의 돈을 날린 상황.

나이지리아쪽에 기지를 둔 이 사기범 일당들은 특히 아시안여성들을 표적으로 공략하는데 한국여성들도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답니다.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2016 년에만 미국에서 1만 5천명 이상이 로맨스 스캠에 넘어갔으며 피해액은 2억달러에 달하고 1인당 피해액은 1만 3천달러가 넘는 수치랍니다.

다 부질없고 의미없다는 생각에 지금은 그만 두었지만 몇 년전, 스마트폰을 처음 가지면서 오랜시간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고향친구들과 소통하는 재미로 ‘카카오 스토리’를 한동안 했었어요. 그때 내게도 이런 놈들이 접근을 시도한 적 있습니다.

지금이야 그 놈들이 무슨 흑심을 가지고 접근하는지 다 아니까 제의가 들어오는대로 일체 대꾸없이 족족 지워버리지만 그때만 해도 그럴 수 없었던 게 당시 중앙일보에 칼럼을 쓰고 있었거든요. 칼럼이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해 워싱턴, 뉴욕 등 전 미주 중앙일보에 게재되는지라 여기저기에서 나랑 연락하고 싶어하는(자랑같지만 사실입니다.스마트폰을 가지기 전에는 신문사를 통해 연락해 왔었고)독자들이 꽤 있었습니다. 내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인줄 알고 아무 의심없이 친구제의를 받아들였던 거지요.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 메세지를 보내오는데 내용이 야릇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위에 쓴대로입니다. 상처했다. 이혼했다. 외롭다. 네가 내 이상형이다. 너만 좋다면 하루라도 빨리 만나보고 싶고 결혼하고 싶다...

나는 실소했습니다. 그 놈들은 내 독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눈독들여 찾는 것은 여자또한 아니요, 바로 돈이라는 것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진짜 그들이 말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구차하게 온라인으로 여자를 찾고있지 않을 테니까요. 가만 앉아있어도 예쁘고 젊고 늘씬한 여자들이 줄을 설 텐데말이죠.

그리고 분명히 한국사람인 줄 알았는데 (성씨가 모두 KIM, 아니면 LEE라서)한글 맞춤법이나 문장이 아주 어색합니다. 아주 쉬운 기본 문장인데도 앞뒤가 안 맞습니다. 타인종이 번역기를 돌린 거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하나 쉽게 가짜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던 단서가 있었습니다. 홍콩에서 진료활동을 하고있다는 한 놈은 자신이 의사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하얀가운 입은 사진을 몇 장 주르륵 보내왔는데요. 멍청한 놈들. 이왕 사기를 치려면 좀 완벽하게 하지. 의사 가운에 진료과목도 없고 이름도 없습니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이유만으로도 그들이 가짜라는 걸 나는 금방 알아냈지만 웬만한 여자들은 넘어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여성의 심리와 내면을 정확히 파악한 후 작정하고 덤비는데 누군들 현혹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생활고와 외로움에 지친 여자들이라면.

로맨스 스캠 뿐만 아니라 온라인을 통한 사기가 엄청나게 기승을 부립니다. 일상생활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가면서입니다. 모두들 조심해야 합니다. 방심하면 누구나 당할 수 있으니까요.

지난 해, 한국방문 중 한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사업한다고 바쁘다며 거의 연락이 없던 조카로부터 ‘안부 카톡’이 왔더랍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응대를 했는데 조카가 부탁 한가지만 들어달라고 하더래요. 이모 힘든 줄 알지만 사업자금이 급해서 그러니까 3천만원만 융통해 줄 수 있냐고. 딱 한 달만 쓰고 돌려주겠다고. 친구 역시 사업을 하고 있어 그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답니다. 단 돈 백만원이 없어서 쩔쩔맬 때도 있는 사업의 어려움. 오죽 힘들면 생전 돈 이야기를 안 하던 조카가 그런 부탁을 할까 싶었던 친구는 즉시 3천만원을 송금했대요. 그리고 다음날, 돈 잘 받았냐고 연락을 했는데 아무 대꾸가 없더랍니다.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친구, 부랴부랴 조카에게 전화를 했겠지요. 무슨 뜬금없는 말이냐고 되묻는 조카. 말로만 들었던 ‘보이스피싱(전화가 아니었지만)’이란 사기에 의해 순식간에 돈 3천만원을 연기처럼 공중에 날린 친구입니다. 친구는 거의 한 달동안 얼이 빠져 망연자실해있었다고 합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삼천만원으로 끝나서 다행이었다고. 일억을 달라고 했더라도 군말 없이 보내줄 생각이었다고.

사기는 몇천달러로 끝나는 경우는 드뭅니다. 적어도 몇만 단위, 몇십만달러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전 재산일 수도 있는 금액, 다시 재기할 수 없는 금액, 당한 사람은 물론 가족까지 모두 파멸로 이끌고 가는 금액. 오래전, 영주권을 해주겠다는 사기범에게 속아 한국에서 팔아온 아파트값 등 전재산을 잃은 한 가족을 취재한 적 있는데 그들의 비통과 절망과 자책과 한탄은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처절했습니다.

범죄는 다 나쁘지만 상대를 속여 환심을 얻은 후 금품을 뜯어내는 사기는 가장 죄질이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이루어지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인 믿음과 신뢰. 의심없이 남을 믿고 신뢰한 죄밖에 없는 착하고 선한 사람들을 짓밟고 기만하는 악랄한 범죄가 바로 사기입니다. 교도소 수감자들 사이에서도 사기범들은 아동성범죄자들과 함께 인간취급을 못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살인범들보다 더욱 가혹하게 대한다고 합니다. 사기가 살인보다 더 나쁘다는 거지요. 왜냐면 보통 살인은 과실이나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게 대부분이지만(고유정처럼 미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경우도 더러 있으나)사기는 상대방의 신뢰와 믿음을 담보로 잡고 차곡차곡 계획을 세워서 행하는 범죄이니까. 얼마나 악하고 나쁜 놈들이면 남을 해하기 위해 계획을 세울까요. 계획을 세울 동안 하늘 두려운 마음이 안 들었는지 참 궁금합니다. 그런 놈들은 이 지구 밖으로다 쓸어내 버렸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죽을 만큼 패서 두 번 다시는 그런 짓을 못 하게 했으면 좋겠는데.


-사진은 내게 로맨스 스캠을 시도하려했던 자칭 홍콩 거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