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5년을 같이한 강아지, 밍키. 밍키의 별명은 부처님입니다. 워낙 있는 듯 없는 듯 착하고 얌전해서. 여지껏 살면서 밍키같이 순한 강아지를 본 적이 없습니다. 질투도 모르고 시기도 모르고 욕심도 없습니다. 우리집에 놀러온 지인의 강아지를 제 눈 앞에서 안아주고 쓰다듬어도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밥이나 물을 먹고 있는데 지인의 강아지가 치고 들어와서 뺏어먹어도 절대로 화내지 않아요. 옆에 가만히 비켜서서 그 강아지가 물과 밥을 다 먹고 물러나기를 기다립니다.

혹시 바보가 아닌가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김치찌개를 하도 끓여서 그 냄새에 뇌손상을 입은 것같다는 남편의 농담이 간혹 믿어질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밍키는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날카로운 이를 보이며 으르릉거릴 줄 아는 성질있는 개였습니다. 그동안 그 성질을 내보일 계기가 없었을 뿐.

여기에 소개한대로 작년, 한국에서 유기견을 한 마리 입양했습니다. 유기견으로서의 아프고 서럽던 기억은 잊고 푸른 하늘처럼 희망차게 살라고 블루로 이름지은 이 녀석, 아직 어려서 그런지 얼마나 활발하고 극성맞은지 모릅니다. 저지레도 심하고 장난도 심합니다. 밍키를 이겨먹고 지가 왕 행세를 합니다.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말처럼. 길에서 떠돌며 굶었던 기억때문인지 식탐이 많아요. 먹을 게 보이면 누가 먼저 먹을 새라 돌격하듯 덤벼듭니다. 위에 쓴대로 착하고 착한 밍키는 묵묵히 블루에게 다 양보했습니다. 문제는 블루가 지나치게 활발하다는데 있습니다. 장난이 심하다는데 있습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않고 밍키를 건드리고 치댑니다. 조용히 엎드려 쉬고 있는 밍키를 올라타거나 귀와 꼬리나 발을 물어 대요.

처음엔 밍키가 피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방으로 가버리거나 식탁 밑으로 숨거나. 그런데 블루가 그런 식으로 끊임없이 귀찮게하자 어느날 와앙, 사납게 성질을 내는 것입니다. 일년 열두달 가도 헛짖음 한 번 없던 밍키가 말이죠. 얼마나 놀랐던지. 지금도 밍키는 블루가 옆에 오는 조짐을 보이면 마구 으으렁거리며 사나움을 피웁니다. 그냥 혼자 편하게 있고 싶으니 건드리지 말라, 이겁니다.

밍키를  보고 깨달았습니다. 누구랑 같이 사느냐에 따라 순하디 순한 성격이 나쁘게 변한다는 것을.

올해로 칠십 중반에 들어서는 할매가 있습니다. 음식솜씨가 좋고 인심도 좋고 대화도 잘 통하고. 나이차이는 나지만 내가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할매가 가끔씩  별 것 아닌 일에 신경질을 팍팍 부립니다. 미친 듯이 짜증을 냅니다. 평소에도 그녀는 분노와 울화가 목 끝까지 가득 차있는 것 같아 보이긴 했어요. 나름 조절을 잘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풍선 터지듯 속에 꾹꾹 눌러져 있던 화가 터지는 것 같았어요.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남편때문이었습니다. 할매가 하소연했습니다. 물과 불같이 안 맞는 남편을 닥달하면서 평생 살다보니 성격마저 거칠고 난폭하게 변했다고. 아닌게아니라 둘이 너무너무 안 맞습니다. 옆에서 보기에도 딱할 정도로. 할매는 급하고 정확하고 재치있고 야무지고 부지런합니다. 눈치도 빠릅니다. 남의 마음을 읽어내는데 천부적인 감각을 타고 난 사람입니다. 반면 남편되는 사람은 옆에서 폭탄이 터져도 나 몰라라, 태평한 성격에 둔하고 느리고 게으릅니다. 같은 말을 서너번해야 겨우 알아차릴 정도로 센스도 없습니다. 말도 어눌합니다. 그러니 하루가 멀다하고 싸웁니다. 말로만 싸우다가 급기야는 물건이 던져지고 몸싸움을 할 정도랍니다. 안식처가 되어할 집이 매일 전쟁터랍니다.

최근, 그 할매가 이혼을 한답니다. 도저히 더 이상은 안 되겠답니다. 할매가 그랬습니다. 결혼후 50년동안 단 하루도 행복한 날이 없었다고. 얼마 남지않은 인생, 이제는 악 안 쓰고 성질 좀 안 부리고 맘 편하게 살고 싶다고.

하려면 진즉하든지 다 늙어서 이혼은 무슨 이혼이냐고 말리려던 나는 50년동안 단 하루도 행복한 날이 없었다는 데에 할 말을 잊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한 번 뿐인 우리의 인생, 맞지않는 배우자를 만나 평생 살아야하는 것 만큼 더 큰 형벌은 없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부모와 형제자매는 길어야 이, 삼십년이지만 배우자는 평생을 같이 합니다. 평생 같이하는 사람이 나랑 성격과 취향과 가치관이 안 맞으면 같이 사는 자체가 불행일 겁니다. 하루하루가 지옥일 겁니다.

그러고보니 내 주위에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나이먹으면 무조건 배우자를 만나 살아야한다는 관습에 떠밀려 한 결혼이라서 그럴까요.

사랑해서가 아닌, 썩 마음에 드는 사람도 아닌, 꿈꾸던 이상형과는 반대의 사람이지만 남들이 그렇게 결혼해 사니까 그렇게 살아야하는 줄 알고 아이낳고 그럭저럭 수십년의 세월을 같이 했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커서 나가고 배우자와 둘만 집에 남았습니다. 경제적, 시간적여유는 생겼지만 배우자와 함께하는 일이 썩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행복은 고사하고 불행하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합니다. 젊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않던 배우자의 외모며 성격, 말투 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다 싫습니다. 그동안은 그냥 보아 넘기던 것들이 다 눈에 거슬립니다. 그렇다고 싸우기도 싫고 아니, 싸우는 것도 지쳤고 싸운다고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한 지금, 차라리 관심을 접고 마음을 닫아버리는 게 편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헤어져버릴 수는 없는 게 무우자르듯 헤어지기에는 같이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너무 무거우니까. 헤어지기엔 너무 늦었고 마지못해 같이 살지만 집에서 배우자의 얼굴을 마주하느니 차라리 일을 하는 편이 낫다면서 은퇴할 나이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뒷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이 참 씁쓸합니다.

젊었을 때부터 사이가 안 좋아 지금까지도 각방을 쓰는 한 여성은 남편의 방 앞으로 지나가는 것조차 피한답니다. 그래서 몇 걸음 더 걷더라도 빙 둘러서 간답니다. 또 한 여성은 집안 저 쪽에서 남편이 걸어오는 게 보이면 뒤돌아 와버린대요. 마주치는 게 싫어서 말이지요. 얼마나 진저리가 쳐지게 싫으면 그럴까요. 얼마나 끔찍하게 미우면 그럴까요. 그 정도로 소름끼치는 사람과 같은 지붕아래서 산다는 것, 어떤 심경일지 도대체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한 때는 애틋한 감정은 있었을 텐데.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죠.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변하게 했을까요.

어느날 물어봤어요. 그래도 가끔 뒷 모습을 보면 측은하거나 불쌍한 생각이 들지 않더냐고. 뒷 모습이(혹은 먹는 모습, 자는 모습) 보기싫으면 완전히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거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거든요. 그녀들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뒷모습은 둘째치고 그림자조차 싫다고.

누군들 죽이고 싶게 밉지않았겠습니까. 누군들 헤어지고 싶을 때가 없지않았겠습니까. 누군들 결혼이란 제도가 멍에처럼 느껴지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감정은 순간적인 것이고 다른 생각이 더 많습니다. 맘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같이 살아줘서 고맙다는 생각.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모습이 불쌍하고 안타깝다는 생각. 나보다 좋은 여자를 만났으면 더 잘 살 사람이 아닐까, 미안하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더 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