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밤에 있었던 일입니다. 잠자리에 들었다가 갑자기 꽈악꽈악꽈악, 시끄러운 소리에 설핏 들려던 잠을 깼습니다. 이웃집의 알람이 터진 것 같았어요.

“밤늦게 이게 무슨 일이야?!”

처음에는 대수롭지않게 생각했습니다. 집주인이 실수로 잘못 건드렸거나 누가 침입을 시도했거나. 곧 해결이 되겠지, 하고 우리는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알람소리는 계속 꽈왁꽈왁꽈왁 쉬지않고 비명을 지릅니다. 달과 별과 바람도 잠든 고요한 밤이라 더 시끄럽고 요란하게 지축을 뒤흔듭니다.

남편이 옷을 주섬주섬 줏어입더니 바깥으로 나갑니다. 어느집인지 알아보겠답니다. 얼마 후 돌아온 남편, 아무래도 집의 주인이 부재중인 것 같대요. 집안에 불이 꺼져있답니다. 하긴 주인이 집에 있다면 무슨 조치를 취해도 취했겠지요. 할 수 없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주인이 돌아와 알람을 멈추게 하는 걸 기다리는 수밖에.

참 사람 환장할 노릇입니다. 한 시간이 가고 두 시간이 가고 자정이 넘어도 알람소리는 그칠 기미가 없어요. 1초에 한 번씩 죽을 듯이 악을 씁니다. 참다못한 남편이 벌떡 일어나더니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돌아왔네요. 우리뿐 아니라 다른 데서도 항의전화가 빗발치듯 쇄도했답니다. 그런데 경찰에서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답니다. 경찰이 그 집을 가본 결과 누가 침입을 시도한 흔적은 없고 알람이 그냥 저절로 터졌다는 걸 확인했대요. 그러니까 범죄에 연류된 게 아니기 때문에 경찰에서는 일절 관련을 안(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알람회사에 연락이라도 좀 해주면 안 되냐고 하니까 알람회사가 어딘지도 모를뿐더러 그런 일은 경찰 업무밖의 일이라고 하더랍니다. 온동네사람들이 잠을 못자고 있는 판에 자기소관 아니라고 그냥 손놓고 있느냐고 항의했더니 대답을 못하더랍니다. 우리들의 바람은 경찰이 그 집 창문을 깨고 들어가서라도 알람을 멈춰주는 것이었지만 경찰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개개인의 재산보호와 프라이버시가 먼저라고 했습니다.

귀를 막아보고 별 짓을 다해봐도 귓 속을 파고들어 머리를 흔들어대는 알람소리. 참 고통스럽습니다. 도대체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잠은 둘째치고 그쪽으로 계속해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스트레스때문에 미칠 지경입니다. 짜증과 울화가 마구 치솟아서 가슴마저 두근두근합니다. 소리가 들리거나 말거나 잠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건 죽었다깨어나도 안 됩니다. 넉넉하고 푸근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나는 신경이 극단적일 만큼 날카롭고 예민합니다. 바늘떨어지는 소리에도 잠을 깰 정도입니다. 그래서 평생을 불면에 시달렸습니다. 잠 들기도 힘들고 겨우겨우 잠이 들었다가도 자주 깨고 한 번 깨면 다시 잠드는 일이 매우 힘듭니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쿨쿨 잔다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습니다.

남편과 나는 자는 것을 포기하고 일어났습니다. 강아지들도 따라 일어났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할 일이 없습니다. 인터넷을 하는 것밖에는. 알람소리를 뒤로하고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각자 랩탑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합니다. 아무래도 알람터진 집의 주인되는 사람이 태국에 가 있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 집주소를  인터넷에서 서치를 하니 성과 이름이 뜨더랍니다. 그 이름을 가지고 페이스북에다 다시 서치를 하니  마이크 뭐라는 사람이 세 명이 뜨는데 둘은 십대같고(십대가 집을 소유하기엔 무리가 있으니)사십대 초반의 남자 하나가 아무래도 그 집 주인인것 같은데 태국에 자주 가는 것 같대요. 페이스북에 태국에서 찍은 사진으로 도배가 돼 있답니다. 또한 그는 혼자사는 남자같답니다. 태국의 풍경사진이나 남자의 독사진은 있어도 부인이나 아이들과의 가족사진이 없답니다.

참 큰일났습니다. 만약 집주인이 현재 태국에 가 있는 상태라면, 여기 가족들이 살고 있지 않다면 저 원수같은 알람소리를 멈추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집주인이 태국에서 돌아오는 걸 기다리는 수밖에.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입니다.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다가 깜빡 소파에서 잠이 들었나봐요. 눈을 뜨니 아침입니다. 세상에, 그때까지 알람소리는 그치지 않았네요. 그칠 리가 없지요. 남편 말대로 주인이 태국에 가 있는 상황이라면. 천근만근의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습니다. 제발기적이 일어나서 저녁에는 알람소리가 멈춰져있길 간절히 빌면서.

그날 오후, 두 시간 먼저 퇴근하는 남편에게 문자로 확인해보니 여전히 알람소리는 쉬지않고 빽빽거리고 있답니다. 정말로 절망입니다. 또 밤을 지새게 생겼어요. 호텔을 잡아나가야되나, 하는 생각까지합니다.

퇴근길,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동네입구에 다다르자 잠깐 차를 멈추고 차창을 내려 바깥으로 귀 귀울여봤습니다. 어머나,이게 웬일, 알람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다다다다, 숨이 턱이 닿게 집으로 운전해 갔지요. 남편이 빙그레 웃으며 나를 맞았습니다.

알람소리를 멈추게한 건 바로 남편이었습니다. 마이크 뭐시기라는 사람의 페이스북에  메세지를 보냈답니다. 만약 당신이  캘리포니아 란쵸코도바 시티의  ㅇㅇ동네에 거주하는 사람이 맞다면 집에 큰 일이 났으니 빨리 연락을 좀 해달라고. 남편의 짐작이 즉효했네요. 연락이 왔더랍니다. 남편말대로 그는 독신이었고 사업차 태국에 자주가는데 지금도 태국에 머물러있는 상태. 물론 자기집에 그 난리가 난 걸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고.

남편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을까요. 참 대견했습니다. 다 큰 어른이 디즈니영화만 본다고(자기말로는 권선징악이 뚜렷해서 좋아한다지만), 바로 코 앞에 있는 물건도 못 찾는다고, 며칠전 일도 기억 못한다고 약간 모자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남이 생각할 줄 모르는 아이디어와 센스가 있는 사람이었네요.

늘 느끼는 거지만 살아가는 데는 지식보다는 지혜가, 교육보다는 타고난 센스가 더 요긴하게 쓰이는 것 같습니다. 최고대학 최고학부를 나왔지만 상황을 판단하고 이해하는 눈치와 센스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일상생활이 참 힘든 것 같아요. 직장일도 물론이고요. 고참이다보니 신입사원을 트레이닝 시키는 일이 더러 있는데 센스가 참 중요하다는 걸 늘상 느끼거든요.똑같은 프로그램을 똑같은 방식으로 가르치는데도 센스가 뛰어난 사람들은 금방 익힙니다. 안 되면 창의력을 발휘해서 이리저리 다르게 시도를 해보더라고요. 그렇게해서 금방 자기 걸로 만듭니다. 반면 센스가 없는 사람들은 죽으나사나 딱 시키는대로만 합니다. 도대체 응용이란 걸 할 줄 모릅니다.

우리회사에는 번호와 길 이름, 그리고 짚코드만 넣으면 자동으로 시티랑 카운티가 다 뜨는 주소 업데이트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123  ABC ST, 95000’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카운티랑 주를 합한 전체 주소가 뜨지요. 신입사원 하나가  울상을 지으며 내게 왔습니다. ‘123  ABC ST, 95000’을 수십번을 쳤는데도 에러가 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녀에게 보여줬습니다. ST가 안 되거든 DR를 넣어보고 그게 안 되면 WAY, BLVD, CT, CIR로 계속 시도해 보면 되지 않냐고. 그러면서 시범을 보여주었네요. 금방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환호성을 지르는 그녀. 그 방법을 몰랐다는 거예요. 아무도 안 가르쳐주었다는 겁니다. 나는 눈치로 혼자 스스로 터득해냈구만.

젊고 학력높은 사원들을 제치고 늘 우수직원 소리듣는 건 단지 내가 오래된 직원이어서일까요. 아닙니다. 남보다 눈치와 센스가 좀 뛰어나서라고 생각합니다. 바닥을 기는 영어실력으로 미국에서 살아남으려니 발달한 건 눈치밖에 없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