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테이크 구울 준비를 하는데 옆에서 남편이 말했다. 고기가 매우 크고 두꺼운데 옆으로 반을 갈라 굽는 게 낫지않을까. 나는 남편의 말을 무시했다. 육즙이 빠져나가 질겨진다는 이유로. 그러나 남편말대로 두껍디 두꺼운 스테이크 고기는 겉만 타면서 속은 잘 익지않았다. 프라이팬에서 꺼냈다가 다시 넣기를 수차례. 식탁에서 기다리고있던 남편이 반을 갈라 구우라고 몇 번이나 권유했지만 나는 끝까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프라이팬에  흐른 고기기름이 타면서 연기를 내뿜기시작했다. 천정을 뒤덮는 연기에 화재경보기가 요란스레 울리고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스테이크와 와인으로 근사한 저녁시간을 보내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남편은 아무소리 안 했다. 날 나무라고 비난할 수 있을 조건이 충분함에도.


2.점심으로 싸간 고등어를 직장의 브레이크룸에서 먹는 중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다른 부서의 여자가 오더니 자기도  좋아하는 생선이라면서 말을 걸기에 고등어를 화제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후 이 여자는 곧바로 상사한테 가서 내가 냄새나는 생선을 먹어서 머리가 아프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상사가 나를 불러 말했다. 가급적이면 냄새나는 음식을 브레이크룸에서 먹는 걸 피해달라고.
 
독자여러분이 이미 다 읽었던 내용을 다시 조금 소개했습니다. 아직 이 이야기를 모르는 독자님이 계시는지. 아래로 내려가셔서 7월 15일 업로드한 '남편을 살려놓는 까닭은'과 3월 1일에 업로드한 '상종못할 사람들'을 읽고 오시면 이번 글에 대한 이해가 빠를 겁니다.

굳이 지난 글들을 들추어 소개한 까닭이 뭘까요. 글의 전체 테두리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 즉 주제의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싶어서입니다. 독자님들은 1번에 소개한 상황에서의 촛점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남의 말을 잘 듣지않는 황소같은 내 고집이지요. 아니면 그 고집때문에 곤란한 상황이 벌어져도 결코 짜증내지않고 비난하지 않는 나에 대한 남편의 인내심과 너그러움이 촛점이요, 본질입니다. 댓글을 보니 독자님들 거의 다가 그렇게 생각하셨더군요. 다행입니다.

에피소드 2에선 내가 말하고저 하는 중점이 뭐였습니까? 인간의 이중성이었습니다. 앞에서는 세상에 없는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모습을 보여놓고는 뒤로 가서는 완전히 백팔십의 다른 모습을 보인 추악한 인간의 이중성. 물론 그 글에서도 제 의도를 바르게 읽으신 독자님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재밌습니다. 이 에피소드의 주제가 고등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러사람이 쓰는 브레이크룸에서는 서로 조심해야지 어떻게 그 냄새지독한 고등어를 먹을 수 있느냐. 간도 크다. 너무 냄새가 심한 음식은 피해주는 게 공공장소에서의 예의다라며 나를 나무라는 사람이요.

인간의 앞과 뒤가 그렇게 다를 수 있냐고 하소연을 하려던 나는 ‘우리회사에서는 수많은 인종들이 일하기 때문에 음식냄새에 많이 관대하다. 필리핀이나 베트남직원들도 냄새나는 생선을 사흘들이로 가져와서 먹는데 아무도 불평들을 안 한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고등어를 가져 간 거다’ 라고 한참동안 설명해야했습니다. 그러는동안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주제는 물 건너 가버리고 냄새 안 풍기고 먹을 수 있는 점심 도시락 반찬에 대해서만 설왕설래하게 되었어요.

스테이크 소동에도 같은 걸 느꼈습니다. 동네아줌마들 몇몇에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 이야기의 본질은 내 질긴 쇠고집, 아니면 남편의 너그러움입니다. 그런데요, 그 본질을 짚어내는 아줌마가 없었어요. 내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한 아줌마가 말했습니다. 프라팬이랑 딱 맞는 두껑을 덮어서 김이 안 빠지게 했으면 금방 익었을 걸. 다른 아줌마가 그 말을 금방 받았습니다. 아니야. 두껑을 덮으면 물기가 생겨서 안 돼요. 그렇게 두꺼운 고기는 포크로 푹푹 찔러서 구멍을 송송 내야 해. 그러면 금방 익지. 다른 아줌마가 또 거듭니다. 그렇게 구멍내서 굽는 것도 좋지만 고기는 뭐니뭐니해도 직화로 구워야지, 무슨 프라이팬에다가? 살림 안 늘린다는 고집 그만 부리고 이참에 바베큐그릴을 하나 사. 정 프라이팬에다 구우려면 내가 시키는대로 하면 최고의 고기맛을 즐길 수 있을 거야. 어떻게 하냐면...

아줌마들은 신이 났습니다. 내가 스테이크 굽는법을 물어본 것이 아닌데도 자기들만 아는 비법을 앞다투어 공유하느라요. 양념을 쳐서 하루 재워야 된다는둥, 마늘을 엷게 져며서 포크로 구멍낸 곳에다 꽂으면 마늘향이 어우러져 더 맛있다는둥 가늘게 쓴 양파를 볶아서 구운 고기랑 같이 먹으면 양파맛이랑 고기맛이 어우러져 기가 막히다는둥...

나는 입을 다물어버렸습니다. 본연의 주제와 동떨어진 이야기에 신 바람이 난 그들사이에 더 이상 끼어들고 싶지않았거든요. 내 고집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남편에 대한 자랑을 좀 해보려고 입을 열었던 나는 한참동안 스테이크 맛있게 굽는 법에 대한 강연을 들어야했어요.

인생의 우선순위가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등 남에게 보여지는 물질적인 것이었다면 나이가 들면서는 무형적인 것으로요. 아무에게도 구애받지 않으며 편안하게 인터넷으로 영화를 볼 수있는 휴일, 일 주일에 한 번씩 가서 받는 발 마사지, 맑은 공기와 따뜻한 햇빛을 받으면서 강아지랑 산책하는 시간, 언제든지 만나 맛있는 음식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만 두엇 있으면 더할나위없이 삶이 풍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친구가 아주 중요한데요. 이왕이면 말귀를 잘 알아듣는 사람을 선호하게 되네요. 취향이 비슷해서 같이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친구도 좋고 음식솜씨 뛰어나서 맛있는 음식을 자주 얻어먹을 수 있는 친구도 좋지만 내가 말하고자하는 욧점을 잘 짚어내고 알아듣는 친구요. 내가 행여 쑥떡같이 말한다해도 금방 찰떡같이 알아듣는 대화에 센스있는 친구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