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켓에 갔습니다. 지난 3월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컵라면 두 박스를 구입한 이후 처음입니다. 주위사람들을 통해 미리 알고는 있었지만 마켓 풍경이 달라져있었습니다. 일단은 띄엄띄엄 줄을 섰다가 직원의 안내에 따라 한 사람씩 들어갈 수 있는 것. 매장에 들어가기 전에 할 일도 있었습니다. 마켓 측에서 제공하는 고무장갑을(소,중,대, 사이즈까지 맞춰서 구비하는 친절함이라니!)낀 후 역시 마켓 측에서 마련해 둔 소독제로 손을 씻는 일이었어요. 물론 마스크는 필수인데 미처 가져오지 못한 사람을 위해 일회용을 한 매씩 제공하더군요. 마켓 측의 치밀함에 감탄했습니다. 흐뭇했습니다.


그 흐뭇함이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장을 보고 나오다가 아연실색할 광경을 보았거든요. 마켓 출구 앞, 두 개의 쓰레기통에 넘치게 버려져 있는, 그리고 카트 안에 뱀 허물처럼 허옇게 널부러져 있는 고무장갑과 일회용 마스크들을요. 하루에도 수백에서 수천명이 고무장갑과 마스크를 쓸 겁니다. 그게 다 쓰레기가 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태산같이 쌓이는 그것들을 폐기하면서 야기되는 환경오염을 어떻게 할까요. 요즘들어 사용이 다시 허용된 비닐 쇼핑백은 또 어쩌고요.그 비닐백들은 왜 그렇게 또 두껍고 튼튼하게 만들어졌는지.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에게는 물론 환경에도 크디 큰 재난이네요. 그렇쟎아도 온갖 화학물질과 재생이 안 되는 쓰레기로 신음하고 있는 지구가 앞으로 더 파괴되고 황폐해 질 것 같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지구에 짓는 우리들의 죄가 큽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오니 보는 사람도 없는데 텔레비전이 혼자 왕왕 떠들고 있습니다. 환한 대낮인데 부엌과 화장실 전등도 켜져 있어요. 여기저기 불 켜놓는 남편의 습관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날따라 왜 그리 한심스럽고 짜증이 나던지. 컴퓨터방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의 등 뒤에 대고 냅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손가락이 부러졌냐, 왜 끌 줄을 모르냐!?

여름이 시작될 무렵,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면 우리는 꼭 한바탕 싸웁니다. 별로 덥지도 않은데 에어컨디션을 켜기 시작해서. 별로 춥지도 않은데 히터를 틀기 시작해서. 좀 추우면 긴 옷을 입으면 되고 좀 더우면 창문을 열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화상입니다. 좀 참아보다가 정 안 되겠다 싶으면 틀어도 되는데 뭐가 그리 급한지.

남편은 항변합니다. 전기세 좀 아낀다고 부자 되는 것 아니라고. 그렇다면 좀 적당히 하지. 한 겨울에도 반팔, 반바지 차림에 히터를 있는대로 틀어놓고 한 여름에는 시베리아 벌판같이 온도를 내려놓아요. 내가 냉증에 걸릴 정도로 말입니다.

사실 전기세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점점 고갈되고 있는 이 지구의 자원을 아껴야 한다는 절박함이 큽니다. 따라서 쓸데없는 낭비는 하지 말자는 게 내 생각입니다. 세계 인구의 5%인 미국인이 전 세계 에너지의 15%를 쓴다는 말도 있던데 남편을 비롯한 미국 사람들, 도대체가 절약이라는 걸 모릅니다. 이 지구에 얼마만큼의 죄를 짓는지 인지하지 못합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일하게 되었을 때입니다. 청소부가 브레이크룸에서 쓰레기를 싣고 나가는데 투명한 봉지안이 모두 하얗습니다. 스티로폼일회용 컵이었습니다. 회사에서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스티로폼컵. 공짜니까 너도나도 아까운 줄 모르고 막 쓰는 겁니다. 물 한 모금 마시고는 쓰레기통에 휙 던져버리고 또 새 걸 꺼내 쓰고. 잘 뒀다가 나중에 몇 번 더 써도 될 걸 말입니다.

땅에서 썩는데 500년 이상 걸린다는 스티로폼입니다. 그냥 두고 볼 수만 없었어요. 회사 건의함에다 편지를 썼습니다. 더럽혀지는 지구를 생각한다면 일회용컵은 더 이상 못 쓰게해야한다고. 얼마후 회사로고가 박힌 도자기컵이 직원들에게 하나씩 제공되더군요. 그리고는 더 이상 스티로폼컵은 눈에 뜨이지않았습니다.

지금은 재택근무를 하니까 더 이상 그런 꼴을 볼 수 없지만 회사에서 가장 눈에 거슬린 건 수도물을 아낄 줄 모르는 일부 몰지각한 직원들이었습니다. 점심먹은 그릇 설거지를 하는데 물을 엄청나게 쓰는 겁니다. 그릇이라고 해봐야 하나 아니면 두 개인 플라스틱 컨테이너인데 가장 세게 물을 틀어놓고 씻습니다. 옆 사람하고 수다떨면서 세월아네월아. 화장실에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손을 씻고는 물을 틀어놓은 채 머리 손질을 하거나 화장을 고칩니다. 물을 안 쓸 땐 수도꼭지를 잠궈야한다는 쉬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같습니다. 정말로 눈에 거슬립니다. 상대가 나랑 친한 사람일 경우에는 내가 덤벼들어 물을 잠급니다. 그렇지않을 경우에는 그냥 멀거니 보고만 있어야만 하는데 자기집 수돗물이라도 그랬을까 싶은 생각에 뒷통수를 한 대 갈겨주고 싶어요. 자기집 물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낭비할 필요는 없잖아요.

사실은 나도 물 절약에 눈 뜬지 얼마 되지 않아요. 몇 년전 이곳 캘리포니아에 혹독한 가뭄이 들면서 물때문에 곤욕을 당하고 부터입니다. 그때는 정부에서 잔디 물 주는 것도 제재했고 집에서 세차하는 것도 금지했어요. 매일 운동을 하기에 하루에 두 번 샤워를 했는데 그때마다 얼마나 죄책감이 들던지요. 그 후 비가 와서 해갈은 좀 되었으나 캘리포니아의 강수량이 매년 점점 줄어든다고 합니다. 더 이상 물을 물 쓰듯이 하면 안 됩니다. 그때 든 물 아끼는 버릇이 지금도 지속됩니다. 집에 혼자 있을 땐 서너변 소변을 본 후 물을 내린다든가 과일이나 야채씻은 물은 모았다가 화초에 준다든가.

한국에 사는 영선이란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나보다 더 지구환경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구 온난화를 막아 보고자 나름 많은 실천을 한답니다. 하루는 이 친구가 사진을 보내 왔어요. 세탁기에서 나온 물을 양동이나 큰 함지에 받아놓은 사진이었습니다. 친구는 그 물을 재사용한다고 합니다. 말간 물을 그냥 흘려 보내는 게 죄스럽답니다. 미국에는 세탁기에서 나오는 물이 바로 하수구로 흘러갑니다. 한국처럼 받아쓸 수 있다면 나도 영선이를 따라 했을 겁니다. 진즉 이런 마음을 가졌어야 했는데.

미국에 첨 와서 밤에 건물청소를 할 때의 일입니다. 직원들이 모두 썰물처럼 빠져 나간 빈 건물에 혼자 일하는 게 얼마나 무섭던지.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 하지 않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듯한 적막이 그렇게 무섭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거울이 주르륵 붙어있는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은 더더욱 무서워요. 거울로 비치는 뒤의 화장실 빈 칸에서 금방이라도 누가 튀어나올 것 같았어요. 간이 오그라들 듯한 무서움에 떨다가 생각해 낸 일이 수돗물을 트는 일이었어요. 열 개정도 있는 싱크에 달린 수도꼭지를 다 틀었지요. 쏴아아,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무서움이 좀 가셨거든요. 그때 내가 하릴없이 흘려버린 수돗물이 수천톤은 되었을 겁니다. 참 후회스럽습니다.


후회하는 일이 또 있습니다. 그동안 너무 함부로, 그리고 쉽게 물건들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정리정돈에는 무조건 버리는 게 수라면서 참 잘 버렸더랬습니다. 버려도버려도 버릴 게 또 나와요. 뭐든지 잘 샀으니까요. 싸다고 사고 나중에 필요할 것 같아서 사고. 그렇게 아무 망설임없이 샀다가 싫증나면 가차없이 쓰레기통에 처넣었지요. 내가 버린 그 물건들이 지구 오염에 얼마나 일조를 했을까요.

요즘은 가급적이면 안 삽니다. 지금 혹해서 샀지만 나중에는 쓰레기가 될 게 뻔하니까요. 더 이상 이 지구에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는 뜻이 확고한 납니다. 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 사진은 친구 영선이가 빨래한 후 받아놓은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