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치통을 느끼기 시작한 건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얼음을 와작와작 깨물어 먹어도 멀쩡하던 어금니 하나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집에 있는 진통제를 복용했는데 별 효과가 없답니다. 의사를 봐야할 것 같은데 일요일이니 문 연 치과가 있을 리 없습니다. 다음 날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밤이 되니 치통이 더 심해지는가 봐요. 미지근한 물을 머금어 본다, 소금물로 칫솔질을 해본다, 들락날락거리면서 잠을 못 이루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지정치과에 전화한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치과가 임시로 문을 닫았답니다. 물론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때문이겠지요. 언제 다시 개원할지 기약할 수 없다는 녹음 목소리만 하염없이 흘러나옵니다.

할 수 없이 남편은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습니다. 우리 치과보험은 HMO입니다. 지정해 준 데만 갈 수 있는.

미국의 어느 곳이든지 금방 통화가 이루어지는 데는 없습니다. 처음 몇 분은 이리저리 압션을 선택하느라 시간을 허비합니다. 요즘은 또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 확인합니다. 현재 본인의 건강상태에 대한 열 개의 문항에 일일이 답을 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해 놨네요. 대답을 다 하니까 상담원이 도와줄 때까지 기다리라는 멘트가 나옵니다.

남편도 처음 삼십 분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픈 이 쪽의 턱을 수건으로 받쳐 누르면서. 그런데 삼십 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당신의 전화는 우리한테 굉장히 소중하다. 금방 상당원이 나올 테니 기다려라’는 레코딩만 반복적으로 흘러나오고.

남편이 재택근무로 회사일을 해야했기에 전화를 스피커로 해놓았습니다. 나도 회사일을 하면서 통화내용을 옆에서 들을 수 있었지요. 어느 콜 센터이든지 통화량이 제일 높다는 월요일아침이긴 하지만 좀 심합니다.

한 시간이 지나자 남편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나봅니다. 무엇보다 통증이 남편을 미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끙끙 신음소리를 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요. 무조건 기다리는 수밖에.

한 시간 이십 분을 넘겨서야 겨우 통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남편이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한 시라도 빨리 예약이 되는 치과를 지정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상담원은 젊은 여자같았는데 발음이 아주 나빴습니다. 몇 번 컴퓨터 좌판을 두드리는 것 같더니 뭐라뭐라 하는데 내가 옆에서 듣기에도 무슨 말인지 통 알 수가 없습니다. 남편이 '무슨 말인지 다시 한 번 말 해 달라'고 하는 중 전화가 끊어져버립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남편은 처음부터 다시 전화를 해야했습니다. 열이 있냐, 기침이 있냐는 열 문항의 레코딩에 일일이 다 예스, 노를 하면서.

다시 긴 기다림이 이어졌습니다. 남편은 참을성이 많은 편입니다. 신장결석이 공격을 해도 아프다 소리를 안 합니다. 신체에서 발생하는 고통 중 제일 극심한 게 신장결석이랍니다. 그래도 비명 한 번 지르지않고 혼자 운전해서 응급실에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네요. 남편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합니다. 신장결석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신장결석보다 훨씬 몇 배 더 아프다고. 전기드릴로 턱 한쪽을 드르륵드르륵 뚫는 것 같대요. 턱은 물론이고 얼굴 한쪽 및 머리까지. 참 괴롭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는 나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게 더 힘듭니다.

남편은 저절로 흘러 나오는 신음을 참기위해 진땀까지 흘리더니 도저히 일을 할 수 없겠다며 회사에 이메일을 보냅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전화통화에만 매달립니다. 매달려 본들, 받지 않고 레코딩만 계속 흘러나오는 전화기만 눈이 빠지게 들여다 본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누가 얼른 전화를 받아야 말이지요.

이번에는 40분만에 겨우 통화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다시 용건을 읊어야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전화가 중간에서 끊어지고 맙니다. 나중에 알아낸 사실. 치과보험 콜 센터가 남 아프리카의 한 지방 도시에 위치해 있답니다. 그러니까 상담원들의 발음이나 전화연결 상태가 불량할 수밖에.

또 한 시간 가량을 기다려 겨우 통화가 이루어졌는데. 큰일 났네요. 지금 치과들이 거의 문을 닫은 상태고 문 연 데는 두군 데밖에 없대요. 그렇지만 어쩝니까. 두 치과 전화 번호를 받자마자 남편은 간절한 얼굴로 전화를 하더군요. 그러나. 첫 번째 치과는 다음달 말까지 예약이 꽉 차 있답니다. 바늘 끝만한 틈도 없답니다. 두 번째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지금 당장은 예약이 안 된답니다. 때가 때인만큼. 그러면서 겨우 잡아 준다는 게 다음 주 목요일 오후.

남편이 호소를 합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의 고통이라고. 고통의 강도를 1에서 10까지 카운트를 한다면 12정도라고. 이런 상태로 어떻게 다음주 목요일까지 견디냐고. 그쪽에서는 그저 묵묵부답.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진통제라도 처방해 달라고 읍소하니까 의사랑 통화를 해야만 한답니다. 메세지와 전화번호를 의사에게 남기고 다시 길고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습니다.

의사한테서 전화가 온 건 오후 5시가 넘어서였습니다. 근처 약국으로 처방전을 넘겨줄 테니 가서 진통제를 사랍니다.

남편은 바람같이 날아가서 약을 픽업해 왔습니다. 우리 지정병원으로 가면 5불이면 살 수 있는 약을(우리 지정병원 약국은 5시면 문을 닫기에) 79불이나 주었네요. 그러나 돈이 문제가 아니지요. 한시라도 빨리 고통이 줄어들 수만 있다면. 남편이 단숨에 몇 알 을 복용하더군요. 마침내 끔찍한 고통이 끝났구나 했더니 웬걸, 아픈 게 여전하답니다. 12정도 되던 아픔의 강도가 10쯤으로 줄어들기만 했을 뿐.

밤새 끙끙 앓는 남편. 그렇게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옆에 있는데 잠을 잘 수가 있나요. 나도 밤을 하얗게 지새웠지요. 다음 날 남편은 치과에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같은 순서를 또 밟아야했지요. 메세지를 남겨놓고 의사의 전화를 기다려야했습니다. 서너시간을 기다려 마침내 전화가 왔는데 의사가 말합니다. 자기가 처방해 줄 수 있는 진통제는 그게 다라고. 좀 더 강한 진통제를 원하면 주치의한테 연락하랍니다.

할 수없이 건강보험회사에 연락하는 남편. 여기도 절차가 또 복잡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미국이란 나라에서는 금방 쉽게 시원하게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일이란 절대 없습니다. 전화받는 상담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그 상담원이 간호사에게 넘기면 또 똑같은 말을 다시 하고. 그렇지만 그 사람 또한 해결해 주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의사에게 메세지를 전달해 주겠다는 말만 합니다. 또 일각이 여삼추같은 기다림이 시작되었습니다.

몇 십분 기다리니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때가 오후 2시가 다 된 시각입니가. 4시에 의사랑 ‘화상진단’을 할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을 전합니다. 또 기다려야 합니다. 남편은 아픔에 겨워 기절하기 직전입니다.

4시. 드디어 드디어 의사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남편은 거의 울듯한 목소리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시 설명합니다. 남편의 말을 들은 의사가 강력한 진통제를 처방해 주겠다고 합니다. 약국이 문 닫기 전에 얼른 가서 픽업하라고 말해줍니다.

그렇게 지옥같은 고통에 시달리는 남편을 옆에 두고 이틀을 보내면서 느낀 것 한 가지. 미국에서는 절대로절대로 아프지 말아야겠다는 것. 아무리 혜택좋은 건강보험, 치과보험이 있어도 그 혜택을 좀 보려면 태산같이 높고 거북이같이 느려터진 절차를 밟아야한다는 것. 그 절차를 밟다가 숨이 막혀 죽거나 울화통이 터져 먼저 죽을 수 있다는 것.

코로나바이러스로 의료계가 비상사태인 현재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비합리적인 미국입니다. 한국같았으면 어땠을까요. 이틀이나 지옥같은 고통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오다가다 아무 데나 눈에 뜨이는데 들어가서도 금방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다가 그냥 간판만 보고 올라가서 별다른 상담이나 주의도 없이 바로 코 수술, 쌍커풀수술을 했다는 한국의 친구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쉽고 신속하고 저렴하고 편리한 한국 의료시스템입니다. 정확하고 안전한 치료 결과가 보장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눈물나게 부러웠던 지난 이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