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때문에 활동반경이 좁아지면서 할 수 있는 건 컴퓨터밖에 없습니다. 아침부터 잠 들때까지 한국 사이트와 미주 한인 사이트를 넘나들다가 느낀 게 두어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남의 글을 주의깊게 읽는 연습이 우리에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댓글을 달기 전에 잠깐 생각해보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왜냐면 엉뚱한 대답으로 본질을 흐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본문을 찬찬히 안 읽는 것 같습니다. 그냥 한 두 줄, 한 두 문장만 가지고 마음대로 해석해서 댓글을 다는 것 같습니다.

한 집주인이 글을 올렸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실직을 핑계대고 세입자가 거의 다섯 달째 렌트비를 안 내고 있다는 사연입니다. 자기도 렌트비 받아서 먹고사는데 난감하고 답답하답니다. 두 부부가 타는 실업수당이랑 나라에서 주는 보조금도 많고 은행에 저축도 꽤 있는 걸로 알고있는데 왜 렌트비를 안 내는지 모르겠답니다. 아닌게아니라 참 딱합니다. 모든 생활을 세입자가 내는 렌트비에 의존한다면 말이지요. 금방 댓글이 하나 달렸습니다. 한 마디 �� 던졌네요. 세입자의 은행에 저축이 있는 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냈냐는. 본질과 한참 먼 댓글. 글쓴이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요.

또한 자기 잣대로 글쓴이를 판단하고는 마구 비난을 퍼붓는 경우도 많아요. 내용이 내 생각과 반대된다고 해서 함부로 면박주고 깎아내리는 경우도 많고요. 신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남을 정죄할 수 없는 일인데 말이지요. 다음 몇 가지 예를 읽어보면 이해가 좀 빠를 겁니다.

살인사건 기사에는 백이면 백,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슬픔과 분노에 동조하는 댓글이 달립니다. 살인자 편에 선 댓글은 당연히 없습니다. 물론 그래야하고. 그런데 가끔씩 살인자 부모나 형제의 심경을 헤아리는 글이 올라옵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하루아침에 살인자를 가족으로 둔 죄인이 되었으니 얼마나 사는 게 고통스럽고 힘들겠냐는. 네티즌들은 벌떼같이 공격합니다. 살인자가족을 옹호하는 너는 정신병자다. 네 동생이나 부모가 살해당했어도 그 따위 말을 하겠냐. 본인이 살인자거나 살인자가족이지 않은 이상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다...

나는 정신병자가 아닙니다. 살인자를 가족으로 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살인자가족의 심경이 이해 됩니다. 살인자 본인 못지않게 부모와 형제들 또한 참담하고 비참할 겁니다. 가족으로서 그 끔찍한 일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릴 겁니다. 또한 살인자라고해서 다 악마같기만 할까요. 더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피치못해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겁니다. 살인을 잘했다는 게 아니라 살인자가 처했을 상황을 이해는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 생각이 왜 돌팔매질을 당해야 하는 겁니까. ‘백인백색’이라고 개개인의 생각은 다 다를 수 있는데. 특히 공감능력이 남다른 사람은 피해자나 피의자의 심경을 같은 선상에 놓고 바라볼 수 있는데.

아흔 넘은 나이의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한 여성이 쓴 글에도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졌어요. 매 끼니 뿐만 아니라 틈틈이 간식을 해다 받친다는 글쓴이. 하루종일 텔레비젼만 보거나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정만 쳐다보는 어머니를 위해서 음식하느라 부엌을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힘들었는지, 지겨웠는지 어느날 어머니가 '잉여인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이 사회에 아무 쓸모없는, 그냥 밥이나 축내는. 그런 내색을 누구한테 할 수 없어서 아무도 자기를 알아 볼 수 없는 게시판에다 털어놓는다고 말했습니다. 속이라도 좀 시원하게.

댓글이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더니 금방 백 개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백 수십 개의 댓글이 거의 글쓴이를 비난하고 질타하는 내용 일색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어떻게 친정엄마를 '잉여인간'으로 칭할 수 있냐 이겁니다. 키워준 공도 모르고 배은망덕하다 이겁니다. 언제까지 네가 새파랗게 젊을 줄 아느냐 이겁니다.

그 글 내용에 분명히 있습니다. 불경한 줄 알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하소연할 데가 없어 익명의 힘을 빌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한다고. 그래야만 숨을 좀 쉴 것 같다고. 그런데도 글쓴이의 힘듦을 이해하는 글은, 오죽했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겠냐는 글은, 부디 힘 내라는 글은 단 한 개도 없었습니다. 그 댓글을 글쓴이가 다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읽었다면 크나큰 상처를 받았겠지요. 자신이 처한 현실에 공감을 좀 얻으려다가 오히려 몹쓸 딸이 되어버렸습니다. 죄인이 되어버렸습니다.

‘ ‘무플’ 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말이 있기는하지만 그건 강철같이 튼튼한 심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보통 사람들은 자신을 비난하는 손가락질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치욕스럽고 공포스럽지요.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단지 내 마음에 들지않는 글을 올렸다고해서 그렇게 공격할 필요가 있을까요.


대학가요제에 입상한 노래들을 찾아 듣다가 가수 '신해철'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 내가 미국을 떠나온 후 가요제에서 입상한 사람이고 내가 한국텔레비젼을 잘 안 봐서, 그리고 무엇보다 신해철의 주요 장르인 ‘락’ 쪽의 음악을 안 좋아했기에 관심밖의 가수였는데 실력이 어마어마했더군요. 특히 말솜씨가 뛰어나서 각종 토론 프로그램의 주요 인사로 활동을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천재 음악가가 어이없는 의료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네요. 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에 달린 댓글들도 샅샅이 읽었습니다.

세상에, 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습니다. 온통 악의적인 댓글 뿐이었기때문입니다. 지가 제일 잘 난 줄 안다. 건방지다. 오만하다.... 거기에 더해서 그의 부인에까지. 성형수술로 다 뜯어고친 얼굴이다. 지가 연예인 줄 안다(텔레비젼에 자주 얼굴을 비춘다고). 부모의 직업이 묘하다...

신해철이 토론 프로그램에서 밝힌 철학이나 신념이나 의견에 대한 반론은 없습니다. 모두 인신공격과 비난과 매도와 조롱과 비아냥과 저주의 댓글들만 넘쳤습니다. 내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도 그렇게 심할 수는 없겠다 싶더군요. 그런데 그 악의에 찬 댓글들이 싹 바뀌어진 건 그가 사망하고 나서였습니다. 찬양일색, 칭찬일색, 경외일색. 물론 그의 부인에게도.

살아 있을 때와 죽고나서의 대접이 어쩌면 그렇게 판이하게 다른지. 예전에 배우 최진실한테도 같은 현상이 있었어요. 온갖 비난과 욕설들을 쏟아붓던 사람들이 그녀가 죽고난 후에는 돌변하더군요. 현존하는 최고의 찬사와 추앙의 댓글들이 그녀의 죽음의 기사 밑에 앞다퉈 달렸습니다. 죽고난 후에야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들이 들었나 봅니다.

현대인의 생활에 뗄래야 뗄 수 없는 인터넷. 사회와 나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매개체인 포털사이트 게시판. 이를 활용하면서 누구나 지켜야하는 에티켓이 있습니다. 세월이 가면서 이 에티켓이 점점 실종되는 것 같아요. 비판은 하되 비난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가 마음에 안 든다하더라도 인신공격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가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익명을 방패삼아서 내 마음대로, 나 내키는대로, 책임감없이 써대다가 만에 하나 상대방이 죽었을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얼마나 미안하겠습니까. 얼마나얼마나 후회스럽겠습니까. 얼마나얼마나 괴롭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