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처음 시어머니네를 방문했을 때 내 눈을 휘둥그레하게 한 것은 부엌 선반을 가득 채운 고급 냄비와 프라이팬들이었습니다. 한 셋트에 몇백 불짜리라는 삼중, 사중 바닥의 두꺼운 냄비와 프라이팬. 시어머니의 취향이 나와 다른 줄은 알고 있었지만 부엌살림까지 그런 줄은 몰랐지요. 옷이고 신발이고 백이고 살림살이고 50불 넘는 건 가슴 떨려서 죽어도 못 사는 나입니다. 나는 그때 생각했지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이것들이 모두 다 내 차지가 되겠구나. 아이고, 좋아라.

그런 생각을 한 건 당연했습니다. 당시 시어머니의 나이가 칠십대 초반이었으니 십년 안쪽이면 돌아가실 거라고 예상했지요. 따라서 외며느리인 내가 모든 살림살이를 물려받을 수 있을 터였지요.

그후 이십년이란 세월이 흘렀어요. 냄비는 커녕 숟가락 하나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아직도 건재하니까요.

지난 번 글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시어머니의 연세와 건강상태를 물었어요. 올해로 아흔 넷입니다, 시어머니는. 건강은 아주 양호한 편이고요. 하루 삼시 세끼에 디저트까지 다 챙겨먹을 정도로 식성도 좋고 잠도 잘 자고. 다만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하고 시력저하로 보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없어 잘 걷지 못하면서 걸핏하면 넘어진다고합니다. 한 번 넘어지면 혼자 일어나지를 못 합니다. 그래서 스물 네시간 간병인을 두고 있습니다.

시어머니는 평생 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보지 않은 사람입니다. 시아버지가 벌어다주는 돈과 친정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팔아 은행에 넣어놓고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살았어요. 주말 저녁마다 시아버지랑 같이 춤 추러 다니면서. 왜 있잖아요, 고전영화에 나오는 춤. 왈츠, 탱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장을 하고 남자와 스탭을 맞추며 빙글빙글 도는.

지금은 춤과 거리가 멀어졌지요. 위에 쓴대로 걷는 것도 힘드니까요. 거실 장식장에는 춤 추는 사진이랑 각종 춤 경연대회에서 받은 트로피등이 화려한 젊은 시절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볼 때마다 시어머니는 만감이 교차하겠지요.

시아버지 역시 고교 교장으로 은퇴한 후 신사복 가게를 운영했던 사람답게 멋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집에서도 칼날같이 주름을 잡은 양복바지에 눈처럼 흰 와이셔츠, 그리고 얼굴이 비칠 만큼 반질반질 윤이 나는 구두를 신고 있었습니다. 단 한번도 대충 입은 모습을 본 적 없습니다. 당장 파티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 만큼입니다. 그러나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습니다. 갈수록 등이 굽고 배가 나오고 어깨가 안으로 말리면서 젊을 때에 비해 옷맵시가 형편없어졌어요. 급기야는 그동안 입던 옷들이 하나도 몸에 맞지않게 되었습니다. 수십벌의 양복들을 옷장에서 걷어내어 헌옷 가게로 보내는 날, 시아버지의 눈시울은 한동안 젖어있었다고 합니다.

한 고장에서만 평생을 살면서 라이온스클럽, 로타리클럽, 그리고 각종 춤 모임에 가입해 활동한 사람들답게 시아버지, 시어머니에게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그 지역에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수백 장의 카드를 받습니다. 큰 대바구니에 넘칠 정도로 수북하게 쌓였던 크리스마스 카드. 그 카드들이 매년 눈에 뜨이게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몇년 전 부터는 단 한 장도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카드를 보내주던 친구들이 모두다 세상을 떠나버린 거지요. 그러니까 그 많던 친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다 떠나고 급기야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만 달랑 남게 된 것입니다.

시아버지는 백 두살까지 운전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이면 운전하고 공원으로 가서 한 시간씩 걸었습니다. 걷고 돌아와서 집에서 하는 일은 책과 신문 읽는 일, 그리고 텔레비전 시청. 그밖에는 다른 할 일이 없어요. 커피 한 잔 나눌 친구들이 단 한 명도 남지 않았으니까.

그러다가 점점 귀가 멀고 눈이 멀기 시작한 시아버지. 책도 신문도 텔레비전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때가 되면 더듬더듬 식탁으로 가서 여기저기 흘리고 부딪치고 엎으며 한 끼 밥을 전투치르듯 먹는 일밖에는. 밤이 되면 피가 통하지않아 차디찬 손발을 주무르며 새우처럼 웅크리고 자는 일밖에는. 하루 온종일 가도 찾아오는 친구 하나 없고 전화벨 소리 한 번 울리지 않는 적막한 집안에서 그냥 소파에 앉아만, 앉아만 있던 시아버지. 그런 세월을 4년 더 보내고 시아버지는 백 여섯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아버지의 유언대로 추모식은 하지 않았습니다. 참석할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작년까지만해도 비교적 건강한 편이던 시어머니.지금은 시어머니도 시아버지와 같은 상황에 놓였습니다. 눈과 귀와 다리가 제 역할을 못하니 그냥 나무토막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겁니다. 생산적이거나 활동적인 일은 아무것도 못하고 하루종일 소파나 침대에 누워 천정과 벽만 쳐다보는. 낮이 오면 밤이 오기만을, 밤이 오면 낮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먹는 일, 자는 일, 화장실가는 일 등 가장 기초적인 신체반응만 근근이 해결하면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혼자 보행해서 화장실 출입 할 정도만 되면 아흔이고 백살이고 오래 살아도 괜찮다고. 아니요. 아닙니다. 화장실 아무리 혼자 갈 수 있고 식성좋아 잘 먹고 잘 자면서 살아도 별 의미가 없어요. 무인도에서 갇힌 것 같은 삶, 보지도 듣지도 못하면서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는 삶, 그런 삶을 오래 영위하면 뭐합니까. 일년 열 두달 가도 전화 한 통 해 주는 친구도 없는데. 때 되면 카드 한 장 보내주는 친구도 없는데. 햇볕 좋은 날 나가서 만날 친구 하나 없는데. 그렇게 혼자 외돌톨이로 사는 삶이 뭐가 그리 즐겁고 신나겠습니까. 그런 재미없는 삶을 길게 살아서 뭐하겠습니까. 적당하게 살다가 남 갈 무렵에 비슷하게 가는 삶이 축복인 것 같아요.

시어머니를 보면 무섭습니다. 나도 시어머니처럼 될까 봐. 눈 안 보이고 귀 안 들리고 걷지 못할 지경이면서도 오래 살까 봐. 주위 사람들 다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 천년만년 오래오래 살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