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왔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하나는 이달 20일에 일본유학을 떠나는 동생 보러. 최고 학부에도 늘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데 목 말라하더니 나이 오십에 일본유학을 결정한 것입니다. 일본어로 책을 써보겠다는 목표를 안고. 이번에 일본으로 떠나면 몇 년 있어야 귀국한다기에 마지막으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싶었어요.

두 번째는 숨을 쉬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3월부터 재택근무로 외출을 못한 지 일곱 달째. 대문밖 나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집귀신이지만 내가 원해서 집에 붙어 있는 것하고 강제로 칩거당하는 거하고는 달랐습니다. 겉으로는 왈왈 시끄럽고 활달해 보이지만 어둡고 염세적인 내 성격이 칩거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 이상하게 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원래부터 지니고 있던 불면증, 불안증, 강박증이 더 심해져요. 심성도 피폐해져갔습니다.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나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지고.

매일마다 올리는 간절한 기도. 하루빨리 이 환란이 끝나길 해주세요라는. 그러나 그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코로나바이러스상황부터 확인하는데 매일 올라가는 확진자, 사망자 숫자가 나를 점점 더 절망하게 만들더군요. 끝이 안 보였어요. 질식할 것만 같았습니다. 게다가 산불이라는 재해마저 겹쳐서 앞 마당과 뒷뜰에마저 나갈 수 없게 되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코로나로 죽나, 숨막혀 죽나, 외로워서 죽나, 죽는 건 마찬가지. 일단 한국에 나가서 친구들, 동생들 얼굴이나 보고 죽자는 생각에 비행기표를 끊었습니다.

앞뒤 생각없이 비행기표를 끊고보니 2주 격리가 턱, 앞을 가로 막습니다. 사실 올봄에도 한국행을 계획했더랬습니다. 그러나 출발 예정일이 다가오자 도저히 자신이 없더군요. 콧구멍만한 호텔방에서 보름을 사육당할 자신이. 비행기표를 취소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별다른 페널티 없이 취소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습니다. 꼼짝없이 보름을 감옥같은 방에 갇혀 있는다 생각하니 생각만으로도 답답하고 갑갑하고 숨이 안 쉬어져요. 그렇다고 다시 또 취소하려니 미국에 있다가는 정신병원에 실려갈 것 같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데 막내동생한테서 장마철의 한줄기 햇빛같은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가족관계만 확실히 증명되면 화장실을 따로 쓸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 있는 동생집에서 2주 격리가 가능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동생네 집은 화장실이 따로 붙은 일, 이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동생 아들의 영국유학으로 비어있는 이층에서 격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였어요. 아이고, 좋을시고! 그 소식을 듣자마자 신바람이 나서 짐을 쌌습니다. 비행기표를 끊어놓고도 ‘갈 수도 안 갈수도’의 반반이어서 그동안 아무 준비를 안 해놨었거든요.

샌프란시스코공항은 유령이 나올 것 같습니다. 사람의 그림자가 거의 보이지 않아서 괴괴하고 을씨년스러웠습니다. 항상 뱀처럼 줄이 길어 한 시간 이상 걸리던 보안검색이 순식간입니다. 출국장까지 나가는 데 10분도 안 걸렸다면 말 다했지요. 너무 쉽고 빠르고 간단해서 불안할 지경이었습니다.

비행기 안 역시 텅텅 비었네요. 한 줄에 한 사람 씩으로 자리 배정을 했어요. 항공사가 적자에 시달린다더니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이윤을 보지못하면서도 운항하는 항공사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리에 앉아마자 수면제를 입에 털어넣고 눈을 감았습니다. 한국 오갈 때마다 내가 늘 하는 행동입니다. 누구는 비행기 내에서 주는 밥 때문에라도 잠을 안 잔다고하는데 기내에서 뭘 먹으면 소화가 안 돼서 나는 잠을 자는 편으로 택했습니다. 그 편이 비행기를 내려서도 덜 피곤하고요.

눈을 뜨니 한국 땅입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익숙한 풍경이 너무 반가와서 눈물이 나려 합니다. 한편으로는 불길함이 엄습합니다. 출국이 믿지 못할 만큼 신속하고 순조로웠기에 아무래도 입국은 그러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감. 반드시 무슨 문제가 생길 것만 같은 불길함.

아니나다를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는 동생집으로 갈 수 없다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 것입니다. 자가격리 앱을 깔고,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르겠다는 수많은 서류에 서명하고 이제 동생집으로 가는 버스와 열차에 탑승하면 되는 마지막 관문만 남았는데.

보건국 직원이 말합니다. 시민권자는 혈연관계가 확인되는 직계나 기타 가족의 집에서 격리를 할 수 있지만 직계가 아닌 이상 반드시 공항에서 인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다시 말해서 직계, 즉 부부와 자식은 정부에서 정해준 대중교통을 이용해 격리장소로 이동할 수 있지만 남매는 직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계자가 반드시 공항에 비치된 특정 서류에 사인을 해야만 입국자를 인계받아 나갈 수 있대요. 그렇지 않으면 정부가 제공하는 시설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알아본 것과는(정부 지정 교통편으로 광명역까지 가서 거기서 또 지정해주는 열차로 동생사는 지역에 도착. 보건소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가 나를 픽업해서 바로 보건소로 데리고 이동. 보건소에서 바로 코로나 검사 실시)달라도 한참 다른 지침입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한 가지 터득한 것은 정부와 사회가 정한 법과 규칙은 철저하게 수용하고 엄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미국에서는 한 번 안 된다면 그걸로 끝입니다. 아무리 딱한 사정이 있다해도 절대로 관용이라는 게 없습니다. 항의나 읍소가 통하지 않습니다. 나는 미국식대로 했습니다. 순순히, 그리고 공손하게 대답했지요. 동생집으로 가는 걸 포기하고 정부가 지정해 주는 시설로 가겠다고요. 그때가 새벽 5시. 동생이 인천공항까지 다섯시간 넘게 운전해서 나를 인계하러 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말입니다. 격리시설로 가겠다는 서류에 힘없이 서명하려는데 이런 내가 딱했는지 직원이 말합니다. 일단 동생한테 전화해서 한 번 물어보지 그래요? 여기까지 올 수 있는지를요.

새벽인데도 동생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만상에! 동생이 나를 픽업하겠답니다. 경남 밀양에서 인천 2공항까지의 그 먼 거리를. 꼼짝말고 기다리랍니다. 놀라움과 감격과 고마움에 겨워 목이 메였습니다. 이래서 핏줄이 좋은 거구나.

길고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습니다. 철통같은 한국의 방역시스템에 의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지정의자에 앉아서. 춥고 배고프고 지쳤지만 새벽부터 운전해 오는 동생의 수고에 비할까요.

동생이 도착한 시간은 정오. 한국 땅에 발을 디딘지 아홉시간 만에 바깥 공기를(엄밀하게 말하면 주차장 공기)마실 수 있었어요. 우리를 보내면서 보건국직원이 다짐을 합니다. 두 분 다 마스크 꼭 쓰세요. 차 창문 내리고 가세요. 중간에 휴게소라든지 다른 데 들리지 마세요.... 혹시라도 내가 코로나바이러스 보균자라면 야기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일차적으로 봉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추석연휴가 막 시작되기 전이라서 그런지 여기저기 도로가 막혔습니다. 가는 도중에 밀양 보건소에서 두 번이나 전화가 옵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코로나 테스트를 위해. 들뜬 추석연휴의 시작인데 나 때문에 대기하고 있는 보건소 직원들에게 미안합니다.

바람같이 급히 달려서 보건소 문 닫기 바로 직전에 도착해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습니다. 무료였습다.

동생은 나를 위해 집을 통째로 비워 놨습니다. 동생 부부는 아는 사람의 빈 아파트에서 내가 격리 끝날 때까지 지내기로 했답니다. 아랫층 이층으로 나누어서 생활해도 되는데 자기들이 아랫층에 있으면 아무래도 내가 부엌이나 앞 마당에 나가는 일이 불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랍니다. 동생 부부의 깊은 배려에 다시 한 번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냉장고에 이것저것 음식이 잔뜩입니다. 먹는 걸 크게 밝히지 않는 편인 내가 충분히 먹고도 남을 양입니다. 그런데 다음 날 큰동생이 박스 하나 가득 음식들을 가져다 놓았네요. 갈비,누룽지,김치찌개, 오이지,낙지젓, 갈치젓, 포도, 사과 등등.

동생집은 밝고 깨끗하고 조용해서 지내기가 참 편안했습니다. 잔디가 심어진 앞뜰도 꽤 넓어서 조카가 쓰던 아령으로 운동하기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아침에 신문이 오는 게 참 좋아요. 시설로 안 가길 백 번 잘했지요. 새벽을 무릅쓰고, 그리고 다섯시간이라는 긴 거리를 마다하고 나를 데리러 와 준 동생한테 다시금 고마운 맘이 들었어요. 다음날로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은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격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며칠 후, 아침에 신문을 집으러 나가니 낮은 담 밖으로 보이는 앞집 대문에 태극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습니다. 개천절이었어요. 몇 십년만에 처음으로 다시 보는 실제태극기. 뭔지 모를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에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틀 후, 나는 다시 한 번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의 눈물을 흘려야했습니다. 앞뜰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담 사이로 젊은 여성 둘이 뭘 무겁게 들고 오는 게 보입니다. 집 앞에서 멈추는 것같더니 곧 내 이름을 불러요. 밀양시에서 제공하는 격리물품이었습니다. 물, 라면, 통조림, 김, 인스턴트밥 등이 골고루 박스에 한가득입니다. 한국에 세금 한 푼 안 낸 나를 위해, 아무것도 기여한 바 없는 나를 위해 밀양시에서 제공하는. 감격스러웠습니다. 고마왔습니다. 밀양시 만세입니다. 대한민국 만만세입니다.

•물론 나는 보건당국의 지침을 칼같이 철저히 지켰습니다. 단 한 발자국도 대문 밖을 나가지 않았지요. 장소이탈 알람 한 번 울리게 하지 않고 14일의 격리기간을 잘 마쳤습니다.

•사진은 동생이 돌보는 길고양이 네 마리 중 한 마리. 최근, 밀양시에서 중성화를 다 시켰기에 번식의 염려는 없는 고양이들이랍니다.
미국에서 온 이방인이 낯선지 현관 바깥쪽에서 유심히 나를 쳐다봐요. 가까이 오지는 않고 그냥 쳐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