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습니다. 이름만큼 얼굴도 예뻤던 친구입니다. 계란형 얼굴에 이목구비가 그림같이 단정하고 피부도 희고 곱습니다. 영화배우 장미희 씨랑 김미숙 씨를 합쳐놓는 외모라 생각하면 됩니다. 키는 별로 크지 않지만 아주 이상적인 체형을 가졌어요. 요즘 표현으로 비율이 좋아요. 허리가 매우 가늘고 팔다리랑 목이 길거든요. 어깨도 작고요. 또한 은지가 옷에 대한 안목도 높아요. 색깔을 기막히게 잘 매치합니다. 외모도 남다른데 옷에 대한 센스까지 있으니 밖에 나가면 탤런트냐, 영화배우냐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은지의 뛰어난 외모는 집안 내력같습니다. 남동생들이랑 언니들, 여동생들 외모 역시 누구나 한 번 더 돌아볼 정도로 출중합니다. 배우자들도 그들과 버금갑니다. 첫째 남동생 부인은 미인대회 출신입니다. 둘째 남동생 부인은 탤런트 조연으로 나오던 사람이었습니다.

작년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코로나바이러스가 일상들을 위협하지 않을 때. 어머니 팔순을 맞아 온 가족들이 모였답니다. 가족들 다 모인김에 기념사진을 찍었다면서 내게 보내주었어요. 나는 사진을 받아들고 잠깐 고개를 갸우뚱해야 했습니다. 누가 누군지 도통 짐작을 할 수 없는 겁니다. 사진에는 배가 잔뜩 나온 뚱뚱이 아줌마 아저씨들이 한 가득이었거든요. 남자나 여자 할 것없이 비슷한 머리 스타일과 비슷한 옷차림. 여자들은 더더욱 알아 볼 수 없는 것이 화장이 대체로 다 비슷합니다. 게다가 은테와 무테 안경까지 단체로 맞춘 듯이 똑같은 것을 썼네요.


한참을 내 기억 속의 사람들과 매치시키려고 노력해 보다가 은지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형제 자매들 아니라 할까 봐 틀로 찍어낸 듯 모두들 모습들이 비슷해요. 형제 자매들은 그렇다치고 피 한 방울 안 섞인 올케들마저 왜 다 닮아졌을까...”

은지가 흐흐흐 웃었습니다.

“그러게. 날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모두 똑같은 얼굴과 체형으로 바뀌어져 가네. 늘 자주 보는 사이인데도 여동생인지 언니인지 올케인지 분간을 못하는 일이 가끔 생기고 있었어요. 물론 나도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고...”

아닌게아니라 매년 한국나갈 때마다 보는 은지의 모습이 점점 달라지고 있는 걸 느꼈습니다. 길에서 흔히 보는 아줌마의 모습으로요. 살이 점점 찌면서 예전의 코스모스처럼 가늘던 팔다리가 마징가 제트처럼 우람해졌습니다. 사슴처럼 가늘던 목이 살에 묻혀서 어깨인지 목인지 찾을 수가 없게 되었어요. 버들가지처럼 낭창낭창하던 허리가 드럼통처럼 육중하게 굵어졌고요. 순정만화 주인공같던 외모가 소 한 마리는 거뜬히 때려잡을 수 있을 만큼 육중해진 것입니다. 몸집이 커지니까 편한 옷만 찾게되나 봐요. 단추나 매듭이 없는 펑퍼짐한 옷만 입습니다. 몸 전체를 가리는 옷. 예전의 세련되고 멋진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어졌어요.

단단한 바위도 변하게 하는 게 세월의 힘이라는데 하물며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있겠습니까만 은지의 격변하는 모습은 참 충격입니다. 물론 나도 많이 변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좋게 변했습니다. 주위에서는 나이들면서 점차 외모가 나이지는 사람으로, 나이에 비해 젊어보이는 사람으로 나를 꼽습니다. 미꾸라지가 용 되었습니다. 젊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면요. 

어릴 때부터 나는 비만이었습니다. 1미터 50센티가 간신히 되는 작은 키에 60키로 아래로 내려가 본 적이 없습니다. 키 작고 뚱뚱하니까 목도 짧고 팔다리도 짧고 허리도 굵습니다. 게다가 피부도 엉망진창입니다. 크고 작은 뾰루지랑 여드름이 얼마나 났던지요. 단 하루라도 매끈한 피부를 가져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예, 거기에 얼굴형도 둥글넙적에 광대까지 나왔습니다. 코도 낮고요. 두툼한 입은 튀어나왔어요. 아무리 점수를 잘 주려해도 최하위의 얼굴과 체형입니다. 추녀의 표본일 정도로 아주아주 못생겼지요. 하필이면 가장 친한 친구가 은지였습니다. 늘 붙어 다녔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한 이계숙입니다. 그 고장에서 손꼽히는 미인이 은지였고 못생기기로 유명한 사람이 나였는데. 얼마나 비교가 되었겠어요.

그런데요, 세상은 오래 살고 볼입니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생긴 겁니다. 위에 말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인물이 나기 시작하고 있으니까요. 일단 난 잔주름이 없습니다. 내 나이대의 여성들이라면 응당 자리잡힌 눈가의 주름이나 이마 주름이 거의 없어요. 박박 문질러 세수하고도 돌아서면 기름이 맺히는 지성피부이기 때문입니다. 젊었을 땐 피부좋다 소리를 듣던 사람들의 얼굴은 잔주름으로 뒤덮인 걸 봤습니다. 내 피부는 기름으로 늘 촉촉하니까 잔주름이 생기지 않아요. 나이가 들면서 호르몬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는지 여드름과 뾰루지들도 더 이상 생기지 않고요. 선블럭도 안 바르고 마구 햇볕을 쬐어서 기미가 좀 생기긴했지만 얼굴 피부 하나는 ‘왔다’입니다.

머리숱도 풍성해요. 젊었을 때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남들보다 시간이 배로 걸리니 과욋돈을 받아야한다고 미용사가 농담할 만큼입니다. 아직 흰 머리가 없어서 염색 또한 안 합니다. 한 달만 염색 안 하면 귀 위부터 하얀색으로 뒤덮이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나는 얼마나 복이 많은지요. 오, 그리고 눈썹. 여기 내 주위의 여성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 중 눈썹문신 안 한 사람을 찾기 힘든데 나는 안 했습니다. 히스패닉계 남자처럼 짙고 무성하거든요. 아버지 눈썹을 닮았습니다. 개뿔도 물려준 것 없다고 늘 원망했던 아버지로부터 가장 중요한 걸 받았네요.


내 몸에는 군살이 없습니다. 십년을 하루같이 매일 뛰고 걸었던 결과입니다. 별짓 다 해도 꼼짝 안 하던 살이 미국와서 청소일 몇 달하고 난 후 10키로 넘게 빠졌어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다이어트의 지름길은 무조건 걷는 것이라는 걸. 청소일을 그만 두고도 계속 걷고 뛰었습니다. 지금까지도요. 걷고 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글 내용도 구상할 수 있기에 틈만 나면 운동화를 신고 나갑니다.

군살이 없으니 얼굴은 물론 몸 전체가 둥글둥글해지는 내 또래의 여성들과 차별이 됩니다. 한인들의 모임이나 한국의 친구들 모임에 나가면 제일 젊어보이고 제일 날씬하고 제일 예쁘다(!)고 합니다. 양지가 음지되고 음지가 양지된다는 세상이치처럼 못생겼다고 늘 구박받던 내가 나이가 들면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갈수록 예뻐진다고들 하니 신바람이 안 날 수 있겠어요? 더더욱 신경을 쓰게 됩니다. 슈퍼마켓에서 산 싼 영양크림일지언정 아끼지않고 듬뿍듬뿍 찍어 바르게되는 것입니다.

세월은 흐르고 우리는 늙습니다. 아줌마로, 할머니로 얼굴과 체형들이 변해갑니다. 그 중에는 아주 드물게 나이들면서 얼굴이 피는 사람이 있긴 해요. 나 처럼요. 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맨얼굴로 나다니는 건 민폐이나 신문지라도 덮고 다녀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설움과 핍박을 받았더랬습니다. 이제 나도 기 좀 펴 봅시다. 장마철의 햇빛 한 줄기처럼 잠깐일지언정.



- 평생 찍은 사진 중 가장 잘 나온. 물론 화장,조명,사진기술이 합쳐진. 아무리 나아졌다고는 하나 본판이 어디 가겠습니까. 실물은 사진하고는 많이 다르다는 걸 감안하시고 봐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