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코스코에 갔습니다. 옷 매대를 지나치려는데 디스플레이 해놓은 빨간색 파카가 눈에 뜨입니다. 만져보니 무척 얇고 가볍습니다. 게다가 후드도 달렸습니다. 깊은 주머니도 두 개나 있고요. 망설일 것도 없이 한 벌을 카트에 넣었지요. 꼭 원했던 스타일이었거든요. 더구나 가격도 좋아요. 19불99전. 집에 와서 입어보니 맞춘 듯 딱 맞아요. 아주 마음에 듭니다.

그 파카, 하루도 안 빼고 매일매일 입었습니다. 강아지랑 산책 나갈 때, 자전거 타러 나갈 때. 외투는 덥고 맨셔츠바람으로 나가긴 좀 쌀쌀한 요즘이라서. 아무래도 한 벌 더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다시 사러가기가 귀찮아요. 다음에 갈 때까지 없어지지 않기만을 빌었습니다. 어제 샀던 물건이 얼마 있다 가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많았던지라.

보름 후, 은행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일부러 코스코에 들렀습니다. 있네요, 그 파카가! 까만색으로 한 벌 더 샀습니다.

한달 후쯤, 남편과 코스코에 다시 갔는데 어머나, 그 파카를 세일하고 있습니다. 원래 가격에서 5불을 할인해 준답니다. 아이고,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기다렸다가 살 걸. 안타까워하다가 코스코에서는 영수증이 없어도 할인액을 매치시켜 리펀해 준다는 얘기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니 일단은 시도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아이템 번호를 사진찍어 리턴 코너로 갔습니다. 그까짓 돈 몇 푼 가지고 창피하게 뭘 그러냐는 남편을 억지로 이끌고. 리펀을 받으려면 남편의 코스코카드가 필요했으니까요.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하자 두말 않고 한 벌 할인 금액인 5불에다 세금을 합쳐 5불 39전을 현찰로 내줍니다. 나중에 내 카드로 산 건 정보가 안 뜬답니다. 어쨌든 5불 39전이 어딥니까. 나는 남편에게 의기양양하게 일갈했어요. 봐라. 돈은 이렇게 절약하는 거야.

며칠 후인 화요일, 쉬는 날. 지인과 점심약속이 있어 나가다가 코스코를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내 카드로 5불 39전을 또 리펀받을 수 있겠단 생각이 퍼뜩 들어요.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이 넉넉합니다. 뺑, 유턴을 했지요. 리턴 카운터로 가서 카드를 주고 아이템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니 무뚝뚝한 중년의 백인 남자가 이번에도 군소리 한 마디 없이 돈을 내줍니다. 이래서 너도나도 코스코를 좋아하는구나, 감격해 하며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습니다.

돌아서며 돈을 확인하니 10불짜리입니다. 계산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손목시계를 보니 약속시간이 빠듯합니다. 짜증이 팍 났습니다만 다시 가서 줄을 섰습니다. 아까의 그 무뚝뚝한 남자가 나를 다시 맞이합니다. 손바닥에 얹힌 돈을 내보이면서 아무래도 돈이 더 온 것 같다니까 그가 말합니다. 계산이 맞다고. 파카 두 벌 리펀한 액수라고. 그러니까 내 어카운트에 두 개의 파카를 구입한 걸로 뜬다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다음 손님을 맞을 태세를 취합니다. 얼떨결에 그냥 물러 나와 차로 향하는데 신바람이 납니다. 춤이라도 추고 싶었습니다. 어리버리한 직원 덕분에 오늘 횡재했구나! 어젯밤 꿈자리가 좋더니 예상하지 않은 공돈이 생겼구나!

그 흐뭇한 마음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약속장소로 운전해 가는데 갑자기 가슴이 둥둥 두 방망이질 칩니다. 큰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겁니다. 돈 5불 39전에 눈이 멀어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한 벌 값은 이미 리펀을 받았다고 알려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돈을 돌려주어야 옳았습니다.

언제 다시 가서 돈을 돌려주면 되겠지 뭐, 하고 애써 자위했습니다. 그러나 뭐 딱히 살 것도 없으면서 일부러 코스코를 다시 간다는 게  쉽지않습니다.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데도요. 제일 가기 싫은 데가 한국마켓, 코스코거든요. 웬만한 식료품쇼핑은 남편이 다 합니다.

보름이 지났습니다. 남편이 코스코에 간다길래 따라 나섰습니다. 정말로정말로 가기가 귀찮았지만 시간이 더 가기 전에 꼭 해결을 봐야할 것 같아서.

리턴 코너. 그 무뚝뚝한 백인남자는 없었습니다. 다른 직원한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5불 39전을 카운터에 내놓았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가 돈을 도로 내 쪽으로 밀면서 말하는 것입니다. 잘못은 자기네 측에 있으니 도로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고. 이 돈은 네 것이라고. 다시 돈을 받아들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그 무뚝뚝한 남자직원이 안 보이는 게 마음에 걸려서 말이지요.

그 뒤로도 몇 번 코스코에 더 갔는데 그 직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 때문에 좌천이나 해고를 당한 건 아닌가 모르겠어요. 마음이 편치않아 죽을 지경입니다. 5불 39전에 양심을 판 대가를 혹독하게 치루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한 지인이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랍니다.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을 하게되어 며칠 간병을 했답니다. 어느날 새벽, 병원에 설치된 자판기에서 지폐를 넣고 콜라 한 캔을 빼는데 갑자기 와르르르 소리와 함께 동전이 한가득 떨어지더래요. 새벽이라 보는 사람도 없겠다, 얼른 그 동전들을 쓸어모아 주머니에 집어넣었답니다. 밤낮없이 부모를 극진히 간병하니 하늘에서 상을 내리는구나, 기뻐했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에 가시처럼 남아있대요. 다 합해봐야 몇천원도 안 되는 동전에 생긴 순간적인 욕심을 억제하지 못한 자책감으로 부끄럽답니다.

살다보면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 가끔 일어납니다. 하얀 거짓말도 하고 새빨간 거짓말도 하고 둘러대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고. 순간적인 욕심이 판단력을 흐리게 되거나 위기를 모면해 보려는 마음이나 곤경에서 벗어나 보려는 마음이 무척 절실하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감쪽같이 감추어지기도 합니다. 쥐도 새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양심이란 놈이 고개를 쳐들어서 나를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사람들을 다 속여도 하늘을 속여도 땅을 속여도 나 자신은 못 속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