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과 샤워를 같이 합니다. 동시에 할 때도 있고 남편이 먼저 하다가 마치는 기색이 보이면 내가 얼른 뒤따를 때도 있어요. 그 반대일 경우도 있고. 웬일이냐고요. 다시 신혼으로 돌아갔냐고요. 그럴 리가요. 무슨 그런 에로틱한 상상을. 결혼생활 5 년쯤 지나 보세요. 서로의 벗은 몸을 봐도 아무런 반응이 안 생깁니다.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샤워를 같이하는 이유는 아주 현실적인 것입니다. 물을 아끼기 위해서. 물 데우는 탱크가 차고 한 구석에 있는데 안방 샤워장까지의 거리가 꽤 멀어요. 그래서 그런지 뜨거운 물이 금방 안 나옵니다. 샤워를 한 번 하려면 찬물을 한참 틀어야합니다. 한참 틀고나서야 더운 물이 나오니까요. 그렇게 수채구멍으로 속절없이 흘러내려가는 물이 아까워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따로따로 샤워를 하게되면 두 번이나 그 짓을 해야하지 않습니까.

할배 다섯명과 오랜만에 한국식당에 갔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얼음과 물이 가득 채워진 컵이 하나씩 놓입니다. 아뿔사, 물은 안 줘도 된다고 내가 미리 말을 안 했구나. 나는 웨이트레스에게 말했습니다. 여기는 물 마실 사람이 없으니 가져다가 다른 손님에게 주면 좋을 것 같네요. 그녀가 대답합니다. 그럴까요? 고마와요. 알고봤더니 웨이트레스가 아니고 주인이랍니다. 그래서 주문받으러 온 그녀에게 내가 다시 말했습니다. 요즘 캘리포니아가 말도 못하게 가물어요. 앞으로는 물을 원하는 손님에게만 제공하면 어떨까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깨우쳐줘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나도 고마왔습니다. 나의 오지랖을 기분 나빠하지 않고 받아들여줘서.


지난 주말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지인과 미국식당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약속시간에 딱 맞추어 도착했는데 지인과 지인의 친구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네요.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자리에 앉기도 전에 테이블에 있는 세 개의 물컵이 눈에 거슬립니다. 여느식당이나 다를 바 없이 물과 얼음이 넘치도록 가득 담긴. 이 물컵은 장식용인가요, 서비스용인가요. 다른 테이블을 살펴봐도 물을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 쥬스 아니면 커피입니다. 물론 우리 테이블도 모두 커피. 내가 말했습니다. 이렇게 손님들이 입도 안 댄 물이 하루에도 얼마나 많이 버려질까. 아침에는 보통 차나 커피, 저녁에는 맥주나 와인을 찾지 물을 마시는 사람은 극소수쟎아.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만 제공하면 많은 물을 절약할 수 있을 텐데. 내 말을 듣던 지인의 얼굴이 밝아집니다. 오, 그 생각을 못했네. 우리 식당도 오늘부터 실시해야겠군. 물을 제공하기 전에 일단 먼저 손님의 의사를 물어보라고. 


캘리포니아가 가면 갈수록 가뭅니다. 지난 겨울, 비 다운 비가 한 번도 안 왔어요. 물이 부족할 게 뻔할 것 같아서 물을 많이 필요로하는 앞과 뒷뜰의 잔디를 모두 걷어내고 작은 화초 몇 포기를 심은 후 자갈을 깔았지요. 오, 그리고 또 있어요. 두어달 전에는 변기 세 개 모두를 절수형으로 교체했습니다. 집에 혼자 있을 때 소변을 서너번 본 후 플러쉬를 하는 등 물을 절약해보려 안간힘을 썼는데 그것 가지고는 도저히 안 되겠단 생각기 들어서. 절수형으로 교체한 후에는 눈에 뜨이게 물값이 낮아졌어요. 물값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물이 아까와서였는데 이대로라면 일 년안에 변기값은 빼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부엌 싱크대 밑에 큰 들통을 갖다 놓은지는 오래전부터입니다. 쌀 씻은 물, 야채씻은 물 등은 무조건 모읍니다. 모아서 뒷뜰 나무와 화초에 줍니다. 한국에 사는 내 친구 영선이는 인간들에 의해 지구환경이 자꾸 파괴되는 사실을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탁기에서 나오는 맑은 물을 받았다가 청소할 때 쓰는 등 물자절약을 통해 지구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나는 생각했더랬습니다. 내 주위에도 영선이같은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 혼자 이렇게 애를 쓰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곳곳에서 여전히 물낭비가 계속 되고 있거든요. 미국인들은 일체 관심이 없어보입니다. 이웃들과 얘기를 나누어보면 여전히 그들은 하루에도 두세번씩 샤워하고 반나절이나 한나절 입은 옷들과 바짝 말려서 서너번은 더 써도 될 타올들은 바로 세탁기 속에 던져 넣고 햇볕에, 바람에 날아간 수영장의 물을 매일 꽉꽉 채워넣습니다. 호스물을 철철 틀어놓은 채 세차를 합니다. 또한 아침저녁으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다보면 안타깝다 못해 분노가 치솟는 광경을 자주 봅니다. 양이나 시간을 조절하지 않고 함부로 틀어놓아진 스프링쿨러. 잔디밭을 흠뻑 적시고도 남아 마구 길로 넘쳐나는 물, 물, 물. 앞으로 가뭄과 혹서는 점점 더 캘리포니아를 강타할 텐데, 이대로라면 종내 먹을 물도 모자랄 위급한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데.

연방가뭄모니터에 따르면 올 6월 17일 기준 캘리포니아 땅의 85%가 ‘극한 가뭄 지역’으로 분류됐다고 합니다. UC 어바인의 캐슬린 존슨 지구시스템 과학 조교수는 영국언론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현재 캘리포니아는 1200년이래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라고 진단했대요. 아닌게아니라 최근, 남가주의 큰 호수 열 다섯개가 다 말라붙었답니다. 북가주의 식수원인 '폴섬 댐'의 수위가 위험할 정도로 내려갔답니다. 현재 캘리포니아내 1500개 이상 저수지 물 저장량이 적정치 보다 50% 적은 수준이라니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닙니다.

가뭄에 겹쳐 6월에 벌써  캘리포니아 지역 전체에 최고기온 100도를 웃도는 이례적인 폭염이 왔어요. 캘리포니아주 휴양지 팜스프링스의 6월 17일 최고 기온은 123도까지 치솟았다고 합니다. 컬럼비아대 러몬-도허티 지구관측소의 제인 윌슨 볼드윈 연구원은 "지표면이 건조하면 스스로 식을 수가 없어 더욱 뜨거워진다"며 가뭄과 결합한 폭염이 지표면과 대기의 순환 작용에서 이례적인 극단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앞으로도 이 가뭄과 극한 더위는 완화되지 않을 전망이랍니다. 가뭄과 혹서에는 또 산불이 뒤따릅니다. 매해, 극렬하게 일어나는 산불은 치솟는 기온에 의한 건조한 환경때문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높은 재산세와 가장 높은 판매세와 가장 높은 소득세와 가장 높은 개솔린 가격(원 갤런당 6불에 육박하는 지역도 있음)을 기록하는 캘리포니아. 어딜 가나 드글드글한 노숙자들에 무조건 불체자 및 저소득증 위주인, 중산층은 죽어라죽어라하는 정부정책인 캘리포니아. 그런 모든 악조건을 감수하며 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날씨였습니다. 이제는 아니네요. 캘리포니아, 정말로 큰일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