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살기에 자주 만나는 할배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춤꾼으로 명성을 날리던 할배였어요. 잘생기고 키도 크고 춤꾼답게 몸매도 날렵한. 키 크고 날씬하니까 옷태가 남달라요. 팔순을 향해가고 있다하나 지금도 신사복모델같은 맵시를 자랑하는 할배입니다. 그 할배를 최근 만났는데 코가 석자나 빠졌습니다. 세상 살 맛이 안 난다는 겁니다. 남들 눈에 자기가 그렇게나 많이 늙고 초라해보이는 줄 몰랐다는 겁니다. 가게에 뭘 사러갔다가 오래전 일때문에 알던 한 젊은 부부를 만났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등 너머로 자기들끼리 말하는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세상에, 저 아저씨가 어쩌면 저렇게 팍삭 늙어버렸을까. 먼저 아는 척 안 했으면 못 알아볼 정도로 변해버렸네. 몇 년 안 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할배가 말했어요.
"일은 무슨 일. 그냥 세월따라 늙은 거지. 나도 거울보면서 늙었다는 걸 늘 느끼고는 있지만 새삼 남으로부터 확인사살을 당하고나니 정말로정말로 참담하네..."
할배의 얼굴은 낙담이 가득했습니다. 그러고보니 할배의 모습이 최근에 많이 변했네요. 머리는 더 성글어졌고 얼굴의 주름살은 더 많아진 것 같고 볼은 움푹 패였고 눈에 힘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형형하던 눈빛이 어느덧 푹 가라앉은 것 같아요. 일흔이 넘으면 늙는 데 가속도가 붙는다더니 그 말이 맞네요. 내 주위에 있는 할배들도 그렇습니다. 보관 잘못한 감자처럼 수분이 빠져 쪼그라들어가는 게 눈에 막 보입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봐줄만했던 할배들이었어요. 비록 회색빛으로 변해버린 머리카락이지만 포마드 발라서 싹 넘기고 옷이라도 신경써서 입으면 나름 중후하고 노련한 멋이 풍겼더랬습니다. 그 멋이 여든 가까이 되니까 없어지더군요. 무엇보다 자세가 변해요. 어깨도 굽고 허리도 굽고 배는 점점 더 나오게 되고. 게다가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다리는 O자 형으로 벌어지면서 키도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자주 만나는 할배는 그나마 변해가는 모습을 많이 못 느끼는데 어쩌다가 오랜만에 보는 할배는 팍삭 늙은 게 현저하게 보입니다.
내 친구 할배들만 늙어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사실 나도 신체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거울 보는 걸, 사진찍히는 걸 기피하게 됩니다. 하루가 다른 내 모습에 나았던 우울증이 도질 정도니까요. 눈에 뜨이게 늘어나는 이마 및 눈가의 주름살과 타조처럼 처지는 목과 불독처럼 늘어지는 볼과 아무리 기를 쓰고 꼿꼿한 자세를 유지해보려 애쓰지만 나도 모르게 구부정해지는 어깨와 바셀린을 들이붓듯이 발라도 나무등걸처럼 버석버석 거칠고 건조해지는 피부만 봐도 나 역시 할배들 뒤를 쫒고 있다는 걸 압니다. 그 중 가장 나를 의기소침하게 하는 것은 치아가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약간 딱딱한 걸 깨물기만 하면 흙덩이처럼 부서지는 치아. 올해들어 치과에 몇번을 갔는지 모릅니다. 이대로 가다간 다 빼고 틀니를 해야할 지경입니다.
또 있습니다. 입맛이 변하고 소화가 잘 안 되어요. 예전에는 앉은 자리에서 한 두 접시는 거뜬히 먹어치우던 것들이지만 소화를 잘 못시키게 되니까 꺼리게 됩니다. 그 예로 라면입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 라면. 일 주일에 두세번은 먹어도 물리지 않던 라면. 최근들어 라면 하나를 다 못 먹게 되었습니다. 하나가 많아요. 그 마저도 먹고나면 하루종일 배가 한 짐입니다. 젊었을 땐 두 개를 끓였어도 모자랐어요. 국물에 밥까지말아서 뚝딱했었습니다. 며칠 전에도 라면을 끓였는데 두어젓가락 먹고나니 죽어도 더 이상 안 들어갑니다. 음식 버리면 죄 받지 싶어 억지로 집어넣어보려 해도 안 됩니다. 눈물이 나오려 했습니다. 늙음의 증상 중 하나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더니.
그러나 걸을 수만 있다면 다른 것은 다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5년을 키운 강아지 밍키를 보내면서입니다. 걸을 수 있다면 모습이 변하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걷는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축복스런 일인지 우리는 잘 자각하지 못하고 산다는 것을 밍키를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개도 늙으니까 사람처럼 외모부터 변하더군요. 우리 밍키가 그러했습니다. 비만을 걱정해야할 정도이던 몸무게는 반으로 줄고 털도 듬성듬성 빠지고 눈 밑은 검어져 정말로 비루먹은 강아지 모습이 되어버린 밍키. 귀도 멀고 눈도 멀더니 소화를 못 시켜서 그렇게 좋아하던 말린닭고기를 자꾸 토합니다. 그랬지만 우리는 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보름 전, 어쩔 수 없이 밍키를 잠 재웠습니다. 열 다섯 번째 생일을 열흘 앞두고. 스테이크라도 하나 구워 마지막 생일을 축하하고 보내려고 무던 애를 썼습니다만 안 되겠더군요. 밍키도 편안한 세상으로 떠나가고 싶어하는 것 같아 쉽지않은 결정을 내렸어요.
몇번 얘기한 적 있지만 나는 걷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직장의 점심시간을 이용해 한 시간, 저녁 먹고 사십분. 그리고 주말 아침에 또 두 시간 가량을 늘 걸었어요. 걸을 땐 어김없이 강아지를 동행했습니다. 블루와 룰루가 오기 전에는 밍키를 데리고 나갔었지요. 근데 밍키가 천성이 참 게으릅니다. 걷는 걸 싫어해요. 보통 다른 개들은 목줄만 꺼내들어도 좋아서 난리를 치는데 밍키는 오히려 어디로 숨어버립니다. 새끼 때부터 그랬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데려나가야했습니다. 나갈 때 말린닭고기, 들어와서 말린닭고기를 주면서. 그러기를 14년 가까이 했는데 블루랑 룰루가 오면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걷기 싫어하는 밍키를 굳이 데리고 나갈 필요가 없어진 거지요. 그래서두 블루와 룰루를 데리고 나가면서도 밍키는 그냥 집에 둬버린 겁니다. 밍키 역시 가기싫은 산책을 안 해도 되니 되려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걷지 않기를 1년. 밍키의 다리가 점차 약해지더군요. 굵고 단단하던 다리가 젓가락처럼 가늘어지는 겁니다. 그러더니 소파로 향하게 놓아준 계단을 못 오르는 건 물론, 가면갈수록 걷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용변을 봐야하니 매 서너시간마다 뒷뜰로 나가게 했는데 나중에는 그 마저도 힘들어해서 남편이랑 내가 번갈아가며 시간 맞추어 뒷뜰에 들어다가 놓아야했습니다. 그러면 서너걸음도 힘에 겨워 비척거리면서 똥오줌을 쌉니다. 얼마전 부터는 설 힘도 없어서 똥오줌 싼 자리에 그냥 주저앉아 버립니다.
나이가 들면서, 늙으면서 오는 증상인 줄 알았지요. 진짜 몰랐습니다. 걷지 않아 근육이 빠져나가서 그렇다는 걸. 몇 발자국이라도 걸을 때, 그때라도 다시 밍키를 데리고 나갔더라면. 짧은 거리라고 걷게 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아예 못 걷는 상황까지는 안 되었을 텐데. 다 내 실책이었습니다. 이제 소용없는 일이 되었습니다만 정말 후회스럽습니다. 자책으로 가슴을 칩니다.
용변을 받아내야만 하는 노인들이 주위에 두 세명있습니다. 그 중에는 올해 백 다섯살이 되는 노인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똑같습니다. 엄청 건강했었다고요. 그러다가 이런저런 병환을 핑계로 누워만 있고 앉아만 있으면서 모든 신체기능이, 특히 하체가 빠른 속도로 기능을 상실했다고 했습니다. 힘이 들더라도, 몸에 부치더라도 지팡이나 '워커'를 끌고서 억지로라도 좀 걸었더라면 자리보전하는 신세까지는 안 되었을 거라고요. 물론 걸을 수 없게 되는 이유는 다리근육 퇴화때문입니다. 우리 밍키처럼요.
위에도 말했지만 늙으면 초라해지고 비루해지고 쇠약해집니다.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노화를 늦출 수 없어요. 아무리 비싼 크림을 발라도, 당기고 올리고 채우는 수술과 시술을 병행해도 그저 몇년 반짝 젊어보이게 할 뿐 궁극적으로는 다 늙습니다. 그러나 걷는 것은 내 의지만으로도 얼마든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미국만큼 걷기 좋게 환경이 잘 조성된 나라도 드물 겁니다. 걸어야합니다. 무조건 걸어야합니다. 백발이 되어도, 허리가 구부려져도, 눈이 안 보여도, 귀가 안 들려도 걸을 수만 있다면, 그래서 화장실을 내 발로 다니다가 생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축복받았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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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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