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적인 한자를 손바닥에 적은 후 텔레비전방송에 출연했다가 구설에 오르고 있는 한 대선후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든 부처님을 믿든 역술을 믿든 신앙은 개인 자유이며 그 믿음에 따라 손바닥에 글자를 적든지 발바닥에 그림을 그리든지 다 본인 의사지만 고개가 갸우뚱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장 합리적이어야하고 가장 논리적이어야하고 가장 이성적이어야할 직위에 있던 인물과 주술이라니, 정말로정말로 생경한 조합이네요.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런 쪽으로 의존할 생각까지 했을까, 애써 이해하려 해보지만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그 후 그가 했던 발언 역시 만만찮은 논란이 되었습니다. 점은 여자가 많이 보러다닌다는 말. 음, 대선후보로서는 적절치 않은 발언이었지만 정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점쟁이나 무당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여자들이니까요. 간혹 사업이나 정치계에 종사하는 남자들이 아주 절박할 때 무속인을 찾는 경우는 있겠으나 그쪽으로 가까운 사람은 대부분 여자들입니다.

몇 천년 이어내린 유교적인 관습과 전통, 윤리를 좇아야하는(요즘은 많이 변했다하나)한국의 사회적인 특성상 여자들 쪽이 더 켜켜이 쌓인 한이 많기에 일어난 현상일 겁니다. 특히 한국은 정신과를 찾는 일을 아주 터부시하는 문화이기에 무속을 통해 꼭 과거와 미래를 알고 싶다기보다는 상담차원에서, 하소연할 데가 필요해서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은 점쟁이나 무당을 찾은 일이 있나요. 손금이나 관상이나 사주를 본 일이 있나요. 누구나 한두번쯤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 쪽을 신봉하지 않더라도 그냥 친구따라 갔다가 재미로 본 경험. 나는 전혀 없는 줄 알았었는데 가만 생각하니 한 번 있습니다, 딱 한번. 아주아주 오래전에. 그러니까 친구가 무당이 되기 전에. 고모가 사주, 관상, 손금 쪽으로 능통하기 전에. 하도 오래된 일이라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고모가 봐 준 내 손금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일이 최근에 일어나면서 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이십몇 년 전, 그러니까 남편과 결혼한 직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일입니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다가 길을 잘못들어 이리저리 헤매던 중에 무슨무슨 보살이란 간판과 만자(卍字)가 쓰여진 집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낡은 대문이 옆으로 젖혀져있었는데 그 틈으로 나도 모르게 들어갔습니다. 진짜 나도 모르게요. 평소 그런 쪽으로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뭐에 홀린 듯.

뒤로 머리를 바싹 당겨묶은, 길에서 만나더라도 무심하게 지나칠, 무속인이라고는 전혀 짐작도 못할 평범하게 생긴 중년여성이 한옥마루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일어섰습니다. 나는 뒷걸음질을 쳤지요. 그런 쪽에 종사하는 여자들은 울긋불긋한 옷에 진한 화장에 예삿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고 예상하고 있었기에. 혹시 집을 잘못 들어갔나 싶어서 놀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평범한 여성이 아니었습니다. 당황해서 엉거주춤하는 나를 잠시 빤히 보더니 대뜸 하는 말, “일부종사 못했네!". 지금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이름도, 생년월일도, 정말로 아무것도 안 물어봤어요. 그냥 내 모습만 보고, 걸어들어간 내 모습만 보고 알아맞춘 겁니다. 내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자 그녀가 또 말했습니다. 가슴에 한이 많구나. 그렇지요. 한이 많지요. 나만큼 한이 많은 사람도 드물 겁니다. 그렇지만 가슴에 한 많다는 말이야 뭐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위에도 말했지만 대한민국에 태어난 여성치고 한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 말쯤은 아무에게 해도 들어맞는 말인데 어떻게 내가 첫결혼에 실패했다는 걸 알았을까요. 

사실 따지고보면 ‘일부종사 못했네’라는 말은 함부로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당시에 미혼인 상태였더라면, 아니면 초혼에 아주 행복하고 단란한 결혼생활 중인 새색시였던 상태라면 악담도 그런 악담이 없어요. 신의 말을 대변한다는 무속인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뺨 맞을 소리입니다. 그런데 무슨 근거를 가지고 그런 말을 불쑥할 수 있었는지. 우리 인간의 눈으로 풀 수 없는 다른 세상이 있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마루에 마주 앉아서 몇 마디 더 전해 들은 것 같은데 지금까지 기억나는 것은 두 마디. 일부종사 못했다. 가슴에 한 많다.

원래 관심이 없었기에 그 뒤로 다시 그 쪽으로 기웃거려본 적 없습니다. 나중에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무당이 되었다고했지만 장난으로라도 나나 내 남편이나 형제에 대한 신상을 물어본 적 없습니다. 꼭 하나 알고 싶은 게 있긴 했어요. 남편과 나의 궁합. 몇 번 언급했지만 남편은 내게 과분한 사람입니다. 학벌, 직업, 인물, 집안배경 등. 그 어느 한 가지도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 처음에는 이런 멋진 남자와 결혼이란 걸 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늘 불안했어요. 안락한 결혼생활이 어느날 신기루처럼 날아가버릴 것만 같아서. 어릴 때부터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던 관계로 행복이라는 데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런 과분한 남자와 끝까지 갈 것인지 늘 알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나 그것 뿐, 실천으로 옮겨본 적 없습니다. 위에 말한 곳은 지나가던 길에 문이 열려있어 무심코 들어가 본 것뿐입니다.


그랬는데요. 신당을 한 번 간 적(저 뒷 페이지로 가서 '무당친구를 다시 만나'를 읽어 보시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있습니다. 음, 신당에 갔다기보다는 무당친구를 찾아갔다고 해야 옳겠지요. 다른 때는 친구가 늘 나를 찾아왔지만 그때는 월초라 많이 바쁘다고 했고 또한 새집(신당과 붙은)으로 이사를 갔다기에요. 미리 한국에 나가있던 내 친구 할배랑 같이(할배를 대동한 이유는 방학동 골짜기에 있다는 친구집을 죽어도 혼자서는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갔습니다. 인물, 재력, 성격 등 어디 한 군데 빠질 데 없는 싱글할배였어요. 가면서 우리는 입을 맞추었습니다. 언제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을지 물어보자고. 물론 할배도 나도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무당집에 간김에 재미로, 백프로 그냥 재미로. 

자기 말에 대답 안 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자기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할배한테 벼락같은 호통을 치고난 친구가 말했습니다. 

"곧 여자 하나를 만날 텐데 큰 기대를 하지 말아요. 헛빵이니까. 끝까지 안 가. 그렇지만 기다려 봐요. 3년 안에  당신 아플 때 물 한 그릇 떠 줄, 어쩌면 죽을 때까지 노후를 같이할 착하고 진실한 여자가 나타날 거니까. 근데 그 여자는 미국에 있어. 괜히 한국에서 돈 쓰고 시간 쓰지 말아요…"



할배와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할배는 한국에서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여자들을 소개받고는 있었으나 하나같이 다 마뜩치 않다고 했거든요. 그 사실을 알아맞추었잖아요. 그러나 아플 때 물 떠 줄 여자가 3년 안에 미국에서 나타난다는 말에는 회의적이었습니다. 왜냐면 할배 자신도 나도 미국에서 사방팔방으로 물색 안 해본 게 아니었거든요. 오죽하면 독자님들에게도 이 할배 중매하라는 부탁을 다 했겠습니까. 몇 년을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성과가 없었어요. 그래서 할배도 나도 미국에서는 포기하고 그냥 한국에서 찾아보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랬는데. 놀라지 마세요, 독자 여러분. 내 무당친구가 말한 그 3년 안에, 그러니까 작년 11월, 마침내 마음에 드는 여자 하나를 만난 겁니다. 그토록 여자 좀 소개하라고 동네방네에 부탁했었는데 아무 성과가 없더니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지금 둘이 잘 사귀고 있습니다. 여자가 할배한테 얼마나 지극정성인지 모릅니다. 내가 봐도 정말 괜찮은 여자입니다. 이런 좋은 여자가 어디에 숨어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나하는 생각이 들 만큼. 내 친구말대로 할배가 자리보전했을 때 '물 한 그릇 떠다 줄' 심성을 갖춘 여성입니다. 죽을 때까지 극진하게 보살펴 줄 여성입니다.

요즘, 할배와 나는 만나면 내 무당친구 이야기를 합니다. 엉터리인 줄 알았더니 꽤 영험한 무당이었다고. 다음에 가서 복채를 더 주어야겠다고.

자, 다음은 고모가 봐준 내 손금에 관해서입니다. 지난번 글에 썼지요. 큰 돈 잃은 것, 부동산이 들어온다는 것 등등을 정확하게 알아맞추었다고. 그 외에 또 있습니다, 글에 안 썼던 내용이. 설마 해서 안 썼던 내용인데요. 그 글에 안 썼던 일이 최근에 너무너무 딱딱 맞아떨어져서 전율이 생길 정도입니다. 신기한 걸 넘어서 무서울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고모에게 교회나가는 걸 그만두고 손금전문가로 나서라고 요청해야겠습니다. 

신점, 굿 등의 무속신앙은 정신적으로 허약한 사람을 현혹하고 지배하고 조종하기에 우리 사회에서 배척해야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손금과 관상, 그리고 사주는 학문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존중해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독자님들의 의견은 어떠하신가요.

고모가 봐준 신통방통한 내 손금이야기는 다음에 풀어드리겠습니다. 

-무당친구의 허락하에 사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