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장에 A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페르시안과 러시안 피가 섞였다는 마흔 초반의 백인여성입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데이트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는데 그 말이 수긍이 갈 만큼 참 못생긴 여자입니다.

예에. 압니다, 알아요. 내가 남의 인물 가지고 왈가왈부할 주제가 못된다는 것을. 나야말로 못생겼지요. 맨얼굴을 보이는 것은 민폐이니 신문지를 덮고 다니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내가 못생긴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A는 내 못생긴 것과는 비교가 안 돼요. 나는 피부라도 좋지요. 요즘은 기미때문에 쑥들어갔습니다만 한때는 피부 하나는 백만불 짜리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고 비만이었으나 매일 운동한 덕분에 날씬한 편입니다. 하루 삼시 세끼를 밥, 아니면 국수, 라면이 주식이라 아랫배가 좀 나오긴 했으나 옷으로 잘 커버하면 그런대로 봐줄만 합니다.

이 A는 아무리 눈을 씻고봐도 예쁜 데가 없어요. 여성치고 키가 엄청 큽니다. 6피트가 가까울 거예요. 게다가 엄청 뚱뚱해요. 모르긴해도 250파운드는 넘을 겁니다. 산처럼 거대한 몸집입니다. 키는 큰데 목은 짧고 다리도 짧습니다. 팔 또한 짧고 굵어서 보통사람 허벅지같습니다. 머리통은 또 얼마나 큰지. 큰 머리통에 따라 얼굴도 넓고. 신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위에 묘사한 외모에다 A는 피부까지 안 좋으니까요. 어릴 때부터 났다는 여드름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얼굴전체를 울긋불긋 뒤덮고 있습니다. 어릴 때 여드름때문에 속을 썩어봐서 그 심정을 잘 아는 내가 몇 개의 연고를 A에게 사주어봤습니다만 부지런히 잘 바르지 않아서인지 효과가 전혀 없는 것 같아요.

그녀를 못생기게 하는 요소는 또 있습니다. 왼쪽 어금니가 아래 위로 한 개씩 달아난 겁니다. 하루벌어 하루 먹고사는 살림에 새 치아를 해넣을 수가 없었겠지요. 오랫동안 치아가 받쳐주지 못한 왼쪽 뺨은 노파처럼 움푹 패였습니다. 머리카락은 얼마나 무성한지. 웬만한 사람 두 배입니다. 고무줄이 늘 끊어져 나갈 정도. 하지만 윤기나는 부드러운 모발이 아니예요. 타다 만 나이론같은 거친 반곱슬. 하여튼 총체적난국입니다.

맏이인 그녀는 엄마와 세 남동생들이랑 한 집에서 같이 삽니다. 누가 못키우겠다고 준 ‘쇼팽’이라는 이름의 강아지도 한 마리 있습니다. 아버지는 A가 어릴 때 집을 나가 지금까지 생사가 불분명 하다고 해요. 엄마는 멕시코식당 매니저인인데 말만 매니저인지 온갖 잡일, 궂은 일을 다한다고 합니다. 또한 급료가 썩 많지 않아서 엄마가 벌어오는 돈으로는 집세를 내기도 빠듯하고 A랑 동생들이 얼마씩 보태서 살림을 꾸려나간다고 합니다.

직장을 다닌다하나 A역시 궁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컴퓨터만 좀 할 줄 알면 되기에 급료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다 떼고나면 정말로정말로 쥐꼬리만한 액수가 남아요. A의 처지에 차는 사치겠지요. 차로는 20분밖에 안 걸리는 거리를 전철과 버스를 번갈아 갈아타면서 두 시간이나 걸려서 직장에 출퇴근했습니다. 비바람치고 추운 날, 흠뻑 젖어서 사무실로 들어오는 A를 보고 마음이 얼마나 아파야지. 그런 악조건에도 일을 하러 오는 A가 기특해서 가끔 내가 점심도 사주고 먹을 것을 갖다주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사놓기만 하고 입지 않는 옷이나 신발을 남동생 주라고 갖다주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그녀는 친절하게 내 일을 많이 도와주었어요. 아무래도 내가 저보다는 영어가 딸리니까 그녀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가 생기지요.

가만보니 외모는 그렇게 생겼어도 심성은 착한 여자같습니다. 없는 살림에도 자기 책상에 사탕을 떨어트리지 않고 갖다놓습니다. 한 달에 두 번, 월급날이면 우버를 타고 나가서 꼭 몇 봉지의 사탕을 사가지고 와요. 온사무실 사람들이 입이 심심하면 그녀의 책상에서 사탕을 집어갑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늘 생각한 게 있습니다. 저런 외모로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아니,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라도 한 번 할 수 있을까. 평생 남자냄새도 맡아보지 못하고 일생을 마치는 건 아닐까. 외모를 보지않고 심성을 우선으로 하는 남자가 나타나면 참 좋을 텐데.

어느날입니다. 놀랍게도 A가 화장을 시작했습니다. 화운데이션을 바르고 립스틱을 칠하고 머리에는 꽂핀을 꼽고. 전철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 남자에게 잘보이려고 치장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미안한 말이지만 A의 치장은 그녀를 돋보이게 하지 않았습니다. 생전 처음하는 화장이니 제대로 할리가 있었겠습니까. 피부색과 맞지않은 화운데이션은 허옇게 들떴고 시퍼런 아이새도우가 발라진 눈두덩이와 시뻘건 입술은 기괴합니다. 꽃핀과 그녀의 거대한 몸집은 따로 놉니다. 꼭 남자가 여장을 한 것 같아요. 어쩌다 사무실 모퉁이에서 마주치면 헉, 하고 뒤로 한 발 물러설 정도로 희한하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와 그 전철남자가 잘 되기를 빌었습니다. A의 가슴에도 사랑이라는 꽃이 피기를.

내 바람과는 달리 남자와의 인연은 지속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일 주일 쯤 지나자 A가 치장하기를 멈추더군요. 나중에 들으니 전철남자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냥 미소를 지어준 것뿐인데 A혼자 착각을.

그러다가 재작년 3월, 코비드 19라는 몹쓸 전염병이 돌면서 우리는 재택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자연히 A를 포함한 동료들과의 관계가 끊어졌지요. 간간히 미팅을 하기는 하나 일에 관계된 주제만 가지고 말하기 바빠서 A의 신상에 대해서 물어볼 기회가 없었지요. 서로 얼굴을 못본다하나 A는 여전히 나를 잘 도와주었습니다. 슈퍼바이저는 바빠서 대답 잘 못하는 문제를 A에게 문의하면 즉각 해결해 주었어요.

재작년 크리스마스 때,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을 사주려고 예약을 했습니다. 나를 많이 도와준 A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서. 그런데 하루 전에 A가 올 수 없다는 문자를 보냈어요. 우버를 타고라도 오겠다고 하더니 마음이 변했어요. 하긴 밥 한 끼 얻어먹자고 우버까지 타고 오기엔 좀 그랬나봐요. 그녀 집에까지 운전해가서 픽업해 올 주제는 못되는 나는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A를 위해 이것저것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A의 쇼팽을 위해 견형이랑 개껌이랑 뼉다귀 등도 샀습니다. 마침 크리스마스 이브가 회사공휴일로 지정되어서 그녀 집에 선물을 갖다 줄 수 있었어요. A로부터 주소를 받아서 남편과 함께 그녀의 집을 향했습니다. 우리집에서 40분 가까이 걸리는 거리더군요. 30분 정도 고속도로를 타고 가서 빈민가같은 동네를 한참이나 지나서야 그녀가 사는 집이 나타났습니다. 방 두 개의 듀플렉스. 창문이 두 개 있었는데 창문 한 쪽이 깨어져서 합판으로 막아놓은 게 보입니다. 하나 남은 창문에 처져있는 커튼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낡아서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요.

그녀가 밖에서 강아지와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거의 2년만에 보는 A입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러나 그녀의 모습은 더 못생기게 변해있었습니다. 몸은 더 불어있었고 손질하지 않은 머리는 잡초처럼 제멋대로 자라 봉두난발입니다. 세상에, 아래 위로 하나씩 없던 왼쪽 치아는 서너개가 더 빠졌습니다. 웃는데 보니 왼쪽 입안이 휑합니다. 얼굴의 여드름은 더 심해져있어요. 진물까지 나서 엉망입니다. 집안에 있던 차림 그대로 나온 건지 보풀이 다 일어나고 여기저기 솔기가 터져 속살이 보이는 얼룩덜룩한 스웨터와 파자마를 입고 있는 A. 사람의 행색이 아닌 것 같습니다.

길에서 만나도 한 번 더 쳐다볼 외모와 차림새의 A와는 다르게 강아지, 쇼팽은 귀엽네요. 할 말이 없으니 하릴없이 쇼팽만 자꾸 쓰다듬게 되더군요. 선물을 건네주고 돌아오는데 참 마음이 안 좋습니다.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한 마디합니다. I feel so sorry for her… 언젠가 글에 한 번 썼지요. 남편은 절대 남의 외모에 관해서 나쁜 평을 하지 않는다고요. 그런 남편이 가엾은 여자라고 말 할 정도였으니 그녀가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었는지 짐작이 가지요?

A를 보면서 늘 들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결혼을 할 수 있을까. 결혼은 차치하더라도 연애는 한 번 해 볼 수 있을까. 결혼과 연애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자로 태어났다면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이라는 걸 해보는 게 좋지않겠습니까. 뜨거운 가슴을 한 번 느껴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물론 A는 나름대로 자기 생활에 만족하면서 즐겁게 사는지도 모릅니다. 남의 인생을 내 방식대로 함부로 짐작하고 재단하는 일은 아주 건방진 일이고 옳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내가 평생을 못생겨봐서 압니다. 못생긴 여자의 비애와 슬픔을. 거울을 볼 때마다 얼마나 비관적일지, 죽고 싶은 마음이 들지 못생겨봤던 나는 잘 압니다.

나는 차창밖으로 보이는 겨울하늘을 향해 간절히 빌었습니다. 신이 있다면 A에게 축복을 내려 주기를. 제발 얼굴의 여드름이라도 좀 낫게 해 주기를.

-사진은 우리 룰루와 최근 한국에서 온 크림이와 A의 강아지에게 주려고 샀던 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