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한 한 식품점 자리에 한국식당이 새로 생겼다기에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일부러 간 건 아니고 지인이랑 플리마켓에 모자를 사러나갔다가 마침 점심시간이 되었기에.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점심시간인데도 식당 안은 한산합니다. 우리 테이블이랑 한 노년 부부가 있을 뿐. 식당안은 꽤 깨끗해요. 오랫동안 비어있던 건물을 식당으로 싹 리모델링 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일단 깨끗해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웨이츄레스가 와서 보리차를 갖다주면서 주문을 받습니다. 그 말투며 몸짓이 보통 공손한 게 아닙니다. 음식을 갖다 줄 때도, 뭐 더 필요한 거 없냐고 물을 때도 마찬가지. 한산해서 그렇다쳐도, 처음 오픈했다쳐도요. ‘내게는 너무나 친절한 당신‘이어서 황송할 지경입니다. 한국업소의 불친절에 익숙해져서 그 반대의 상황에는 오히려 거북하고 이상해요. 나중에 계산서를 가지고 왔을 때 물어봤어요. 이 식당 주인이냐고. 아니랍니다. 종업원이랍니다. 종업원인데도 이렇게 친절할 수 있구나. 나는 무척 놀랐습니다. 그리고 흡족했습니다. 팁을 40% 가까이 준 것도 모자라서 나오면서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길래 큰 소리로 말해주었습니다. 음식 맛도 맛이지만 웨이츄레스가 너무 친절해서 앞으로 자주 오겠다고.

어떻게 된 판인지 가면 갈수록 맛과 청결, 그리고 친절을 갖춘 한국식당 찾기가 힘듭니다. 나는 결벽증이 좀 있는지라 맛보다는 청결을 더 중요시하는 편인데 마음에 드는 곳이 거의 없다시피 해요. 식당의 기본은 청결인데도요.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한 한국식당에는 들어서는 순간부터 기분이 팍 상합니다. 왜 오래된 카펫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 있잖아요. 그 냄새가 나서요. 사람들의 발자국에 시커멓게 쩔은 카펫, 한 십년은 샴푸를 안 한 것 같아요. 한 식당은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처음 오픈할 때의 인테리어가 그대로입니다. 내가 기자일 할 때 그 식당 개업기사를 써서 잘 알아요. 인테리어를 바꾸기 싫으면 먼지나 좀 털고 닦든지. 무당집에나 있을 법한 울긋불긋한 조화 위에 수북수북 쌓여있는 먼지, 그리고 거미줄. 한 식당 화장실엔 더운 물이 아예 안 나옵니다. 한 식당 화장실 입구가 위치한 복도에는 주류박스랑 배추, 파 등 채소 무더기가 바닥에 그대로 쌓여있는 것도 봤습니다. 한 식당 종업원은 틈만 나면 뒷문쪽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는 것 같습니다. 담배 피우고 손이나 씻는지 궁금합니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이겁니다. 눈 딱 감고 밥만 먹고 나오면 되니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조리하는 것을 ‘안 보고’ 먹는 음식이란 말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웨이츄레스들, 어찌 그리도 무뚝뚝한지. 반찬 한가지 더 얻어먹으려면 눈치작전을 써야 해요. 행여나 눈이 마주칠까, 애타게 쳐다봐도 싹 외면하기 일쑤고. 체면불구하고 팔을 휘두르든지 큰 소리로 불러야 마지 못해 다가오는 웨이츄레스들. 내 돈 내고 밥 먹으러가면서 꼭 구걸하는 기분입니다. 정말이지 가급적이면 한국식당에는 안 가고 싶어요.

나는 또 한국마켓 가는 것도 안 좋아해요. 웬만해서는 안 갑니다. 그러면 필요한 것은 어떻게 조달하느냐, 마음씨 좋은 지인들이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한 지인으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한국마켓 가는 중인데 뭐 필요한 것 없냐고. 간장, 콩나물, 다시마 등 몇 가지의 목록을 문자로 보냈습니다. 왜 한국마켓 가는 걸 싫어하냐고요. 한국식당과 같은 이유입니다. 갈 때마다 짜증이 나니까요.

한국마켓은 도착해서, 파킹장에서부터 눈쌀이 찌푸려집니다.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널려져있는 카트때문이지요. 이건 단지 몇 걸음도 더 걷기 싫어 아무 데나 카트를 놓고 간 손님들의 잘못만은 아닌 것 같아요. 사람을 써서 제때제때 수거해가지 않은 마켓측의 게으름도 한 몫합니다. 왜냐면 미국마켓 파킹랏은 널부러진 카트 하나 없이 항상 깨끗하거든요.

카트를 피해 겨우 차를 대고 건물로 걸어갑니다. 입구에 놓인 쓰레기통. 아침 일찍 가도 그렇고 저녁 늦게 가도 그렇고 한국마켓 건물 앞에 놓인 쓰레기통은 항상 더러운 온갖 오물로 넘쳐나고 있어요. 쓰레기통 근처는 함부로 버린 음료와 침과 담배꽁초로 얼룩져있고요.

마켓 입구는 무가지들과 각 교회나 업소에서 갖다놓은 선전물들이 너저분합니다. 일부는 바람에 날려 바닥을 이리저리 덮고 있고. 벽은 또 어떻고요. 구인광고, 교회 안내, 렌트광고지가 어지럽습니다.

마켓 안으로 들어 가면 매장 복도에 잔뜩 쌓여있는 물건박스들이 또 눈에 거슬립니다. 길을 막고 있는 박스들과 물건정리하는 직원을 이리저리 피해서 다녀야 합니다. 아니, 문 닫는 아침 일찍이나 밤에 하면 될 걸 왜 하필이면 손님들이 붐빌 때입니까. 마켓 측의 무신경에 화가 치밉니다.

가끔 찾는 물건이 재고가 없는 건지 다른 장소로 이동했는지 예전 장소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앞치마를 차고 있는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한테 물어 봅니다. 한치도 다르지 않은 예상 답이 나옵니다.모른대요, 자기도. 어조가 퉁명스럽기 짝이 없어요.

겨우겨우 장보기를 마치고 계산대에 줄을 섭니다. 장보기에서 제일 기분이 별로일 때입니다. 계산원 중 미소 짓는 사람이 없어요. 항상 무표정. 물론 인사도 제대로 안 합니다. 꼭 내가 먼저 인사해야 해요. 참 웃기는 건요. 그들의 일손을 덜어주기 위해 스캔이 끝난 물건들을 종이 백이나 비닐백에다 넣고 있으면요(미국마켓엔 물건을 담아주는 사람이 따로 있어 일일이 내가 나설 필요조차 없지만 이해합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는 걸). 스캔을 마쳤으면 자기가 얼른 나서야 할 것 아닙니까. 그냥 멀뚱하게 보고만 있어요. 내가 물건을 다 담을 때까지. 분명 자기 일인데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불친절, 무신경, 불청결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전 업소에 만연한 것 같습니다. 몇 년전이었습니다. 새로 개업했다며 유난히 광고를 많이 하는 한 한국제과점에 지인들과 들렀습니다. 아무도 없는 매장안. 종업원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뒤돌아 서서 빵들을 정리하고 있어요. 띵동,하는 문 열리는 소리로 손님이 들어왔다는 걸 분명 알아차렸을 텐데 동작을 멈출 생각을 안 합니다. 등을 보인 채 여전히 빵정리를 할 뿐. 우리는 그녀가 하던 일을 다 마치고 아는 체를 해줄 때까지 멍청하게 서 있어야 했습니다.

몇 분을 그러고 서 있는데 빵정리를 다 마친 아가씨가 마침내, 이윽고, 드디어, finally, 우리 쪽으로 몸을 돌립니다. 아주 예쁘고 앳띤 아가씨. 우리랑 눈이 마주쳤는데도 기본적인 인사도 안 합니다. 인사는 고사하고 뭘 찾느냐고 묻지도 않아요. 그냥 마알간 얼굴로 우리를 쳐다만 봅니다. 우리가 먼저 말을 걸 때까지. 기분이 상한 내가 아가씨는 인사도 할 줄 몰라요하고 한 마디하려는데 옆에서 팔을 끌며 만류하는 지인.


예, 알아요, 알아. 내가 유별나다는 것. 그러려니 넘어가야 한다는 것. 한 할매는 나를 나무랍니다. 이것저것 상관말고 니 볼일만 마치고 오면 되지 왜 불평하고 참견을 하려 하냐고. 그렇지만 눈에 거슬리는 것을 어떡합니까. 한국처럼 지나친 친절은 거북하고 불편하지만 적어도 기본은 지켜야지요. 고객에게 인사 잘 하고 친절하게 대한다는 기본 말입니다.


칼럼을 닫겠다는 글에 많은 독자님들이 댓글을 달아 주셨는데요. 그 중에는 한 달에 두 번을 꼬박꼬박 빼먹지 않고 글을 올려줘서 고맙다는 언급이 많았습니다. 앞으로 마감 지키는 일이 힘에 부치면 날짜를 정하지말고 아무때나 글을 올려달라는 마음씨 고운 독자들도 더러 계셨습니다. 예에, 독자들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인 약속은 아니더라도요. 한 번 약속한 이상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일 외에는 반드시 지키는 게 사회생활의 기본질서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 임의로, 내 편리대로 왔다갔다 변경하는 일은 독자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도 하고요.

군인은 나라를 지키고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정치인은 나라를 잘 다스리고 교사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식당주인은 매장을 청결하게 유지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웨이츄레스는 친절하게 손님을 대하는 일은 사회적인 약속입니다. 미국은 비교적 이 약속이 잘 지켜진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유독 ‘한국’자가 들어가는 업소는 아닌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슬프게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