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별한 사이인 부산친구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러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가을의 한국 방문이 유독 몸에 부쳐서 당분간 비행기를 탈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늘 변수가 생기는 게 인생인가 봅니다. 늘 그렇듯이 내 방문기간은 짧디 짧습니다. 가는 날 오는 날 제외하고 한국서 머무는 기간은 9일. 그래도 이번엔 며칠이 더 늘었습니다. 무당친구가 소개해 준 한의원에서 침을 더 맞으려고.

한국에서의 일정은 항상 같습니다. 동생들 및 친구들과 만나 식사하고,대중목욕탕 가고, 연변교포가 운영하는 마사지 업소에 가고. 또한 어릴때 자라던 마을에 한 번 가보고. 지난 번에와 같이 이번에도 종국이랑 같이 고향마을에 갔었습니다.

살다보면 당시엔 그냥 예사로 흘려버린 이야기들이 나중에서야 바짝 궁금해지는 일이 있습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지난번에 종국이가 옛집에 관한 일을 이야기해 주었을 땐 그냥 대충 흘려 들었더랬어요. 아무것도 묻지도 않았었고. 글의 소재가 되리란 예상을 못했기에. 너무 옛날 일, 그러니까 40년이 지난 일이라서 말이지요. 그런데 우연하게 속풀이방에 올라온 ‘무서운 집터’에 관한 사연을 읽고 그에 관련된 글을 두 편이나 연달아 쓰게 되면서 종국이의 옛집이 속속들이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종국이에게 물어봤습니다. 그집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일을 겪었었는지.

종국이가 군에 있는 동안 가족들이 이사 들어갔던 그 집. 흉사가 끊기지 않았던 그 집. 키가 장대같이 큰 대나무들이 집 옆과 뒤에 가득 둘러쳐져 있어 늘 스스스하는 소리가 났던 그 집. 종국이가 제대한 후 대문에 들어서는데 소름이 쫙 끼쳤던 그 집. 그 집은 오래된 세월 만큼 빽빽한 대나무 외에도 크고 굵은 나무들도 많아서 가지와 잎들이 집 전체를 뒤덮고 있었대요. 나무그늘 때문에 낮이나 밤이나 어두컴컴하고 눅눅하고 습했고 혼자 있을땐 누가 뒤에 서 있는 듯 항상 뒷덜미 쪽이 서늘했었대요. 비오는 날은 더 섬��섬��한 기분이 들었다고 해요. 특히 종국이 방은 본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 방이 그렇게 귀기(鬼氣)가 가득했답니다. 그 방에 가려면 늘 머리끝이 쭈볏쭈볏했고 캄캄한 방안에 누가 앉아있는 것같아서 방문을 열기가 주저되었다고.

하루는 종국이가 아버지한테 물었답니다. 아무래도 집에 사람 아닌 무엇이 사는 것같은 기분이 든다고. 그제서야 아버지가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더랍니다. 이사 첫날부터 아버지가 그 집에서 무엇을 보았다고요.
“옛날 집이라 부엌문이랑 뒤안으로 나가는 문이 트여있었거든. 아버지가 뒤안 쪽으로 허연 비닐같은 것이 지나가는 걸 수차례 보았다고 했어. 놀라서 뛰어가 보면 아무것도 없고. 엄마도 몇 번 본 모양이야. 보통 뒤안에는 장독대랑 쓰지 않는 살림살이들을 보관해 두는데 엄마가 무섭다면서 뒤안으로 나가는 걸 아주 꺼려했다네. 그래서 뒤안으로 나갈 일이 생기면 반드시 아버지를 불러서 같이 나갔다고 하더군. 그러던 어느날…”

비 오는 어느 날. 또 허연 물체를 목격한 종국이 아버지가 작정을 하고 뒤안으로 곡괭이를 들고 나갔답니다. 도대체 뒤안에 어떤 것이 살고 있길래 자꾸 눈에 보이는지 실체를 확인하려고. 비를 맞으며 대나무들이 우거진 뒤안의 곳곳을 파보았다고 해요. 그랬더니. 나온 것은 수십개의 작은 관들과 삭아가는 해골과 뼈무더기였답니다. 그집 뒷편이 애장터였던 거지요. 그렇지만 종국이네는 그 집에서 곳장 이사를 나올 수는 없었다고 해요. 동네에서 제일 좋았다는 그집을 구입하느라 가진 돈을 다 써버렸기에.

그집에서 형님이 세상을 떠났답니다. 무슨 병이 있었는데 일부러 목숨을 끊으려고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한 달간이나 복용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매일매일 복용해야하는 약을. 그리고 정확하게 16일 이후 장남의 죽음을 자책하며 비통해 하다가 아버지마저 형의 뒤를 따랐다고 합니다. 종국이가 말했습니다. 그집으로 이사가지 않았더라면 형님과 아버지가 더 오래 살 수 있었는데 사악한 집의 기운이 죽음으로 몰고간 것같다고.

종국이가 말했습니다. 그 집은 무당마저 무서워했던 집이었다고. 종국이네에 이어 두 가족이 더 이사를 들어갔다가 혼비백산해 나간 후 한동안 비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한 무당이 그집을 보고는 자기한테 안성맞춤이라고 좋아했는데 무슨 일인지 얼마 안 살고 이사나갔다고 합니다. 나중에 다른 무당이 터를 잡았는데 소문에 의하면 첫 번째 무당도 무서워서 살지 못하고 자기보다 신기(神氣)가 더 쎈 무당에게 그 집을 양도한 거라고요. 그러니까 그집은 웬만한 무당은 배겨내지 못하는 집터였던 것입니다. 얼마나 집 터가 셌으면?! 그 센 집터가 궁금하시지요, 독자 여러분? 나도 무척 궁금해서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종국이가 그 근처도 가보길 꺼려하는 바람에 무산되었습니다. 특히 우리가 간 날이 석가탄신일이라 등을 달려는(부처님과 무당집이 무슨 연관이 있다고?)사람들도 넘쳐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간다 해도 제대로 집구경을 못할 거라고 종국이가 말렸습니다. 그랬는데요. 정말로 센 터에 위치한 집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무당인 내 친구도 고개를 흔드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친구집(친구는 수술후 항암치료를 다 끝내고 요양하고 있습니다. 크게 걱정할 상태는 아닌 것같아요)근처 호텔에서 사흘을 머물며 침을맞았습니다. 그리고 부산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한 후 고향에 며칠 있다가 서울로 올라가 같은 호텔에 머물면서 목, 금, 토요일, 사흘간 침을 더 맞았습니다. 문제는 일요일. 내 출국일은 월요일이었는데 일요일에 방이 없답니다. 돈을 더 내겠다고 해도 없는 방을 만들어 줄 수가 없다네요. 그 동네에서 가장 깨끗한 호텔이라 젊은이들이 일요일에 ‘호캉스’를 많이 하기 때문이랍니다. 천상 다른 호텔로 가야 할 형편. 그런데 근처를 다 살펴봤는데 낙후된 동네이어서인지 ‘모텔’은 많은데 호텔은 없어요. 모텔이 뭐하는 뎁니까? 참 난감했습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정 그러면 우리집에서 자. 불편하겠지만 하룻밤 정도야 견딜 수 있지 않아?”

아이고. 말은 고맙지만 울긋불긋, 세상의 현란한 색이란 색은 다 모여있는 듯한 요란스럽고 정신사나운 신단(神壇)이 차려진 집입니다. 더구나 나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새벽에 한 번은 꼭 일어나는 버릇이 있는데요. 사실 속으로는 모험을 한 번 강행해 봐?하는생각도 없진 않았어요. 바로 독자님들을 위해서. ‘무당집에서 하룻밤’을 쓰려면 직접 겪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렇지만 무서웠습니다. 대낮인데도 열린 문 사이로 신단이 보이고 향 냄새가 새어나오면 오싹한 기분이 드는데 그집에서 잔다고요? 자다가 진짜로 귀신이라도 목격하면 어째요.

말 나온 김에 물어봤습니다. 진짜 귀신을 본 적 있냐고요. 그리고 남의 집에 갔을 때, 그 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떤 악한 기운을 느낀 적 있냐고요. 친구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습니다. 귀신을 모시고 사는 사람한테 귀신을 본 적 있냐고 물어보면 어떡하냐고. 귀신의 형체(우리가 생각하는 머리길고 소복입은)를 또록또록하게 목격한 적은 없지만 영가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대요. 또한 간혹 점사를 보러 오는 사람 중 등이나 머리에 귀신이 타고 앉아 있는 것같은 느낌이 있어 물어보면 백발백중 맞답니다. 꿈에 죽은 사람들이 자꾸 나오고 등이 아프고 머리가 늘 묵직하게 뭐에 눌리는 것 같은 증상이 있다고 한대요.

악한 기운이 서려있는 집도 강하게 그 기운을 느낀답니다. 목덜미에 얼음물을 들이붓는 듯한 차가운 기분을 들면서 온몸이 아파온대요. 특히 아주 좋지 않는 기운이 서려 있는 곳에 가면 머리가 많이 아프고 토할 것 같다고 합니다. 예전 우리 부모가 살던 집도 그런 나쁜 기운이 있는 집 중 하나였는데 안방 말고 뒷방 두 개가 더욱 더 그런 기운이 강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태규가 말했습니다. 바로 지금 옆집이 그런 음습한 기운을 가진 집이라고. 옆집이라고?! 나는 친구 곁으로 무릎을 바싹 당겨 앉았습니다.

친구가 살고 있는 집은 전세입니다. 이층으로 된 집인데 밑에는 가내수공업을 하는 사람들의 작업실이 있어요. 밤에 그들이 퇴근하고 나면 컴컴하기 그지 없는 곳으로 변하고요. 이층에 친구 네가 살고 있는데 무당집이라는 선입견때문인지는 몰라도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창으로 햇빛이 가득 들어오고 있는데도 뭐가 을씨년스럽고 썰렁합니다. 친구도 자기집이 습하고 춥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옆집이 친구네랑 구조가 똑같다네요. 옆집 역시 위아래층 전세, 월세에 입주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입주자들이 사흘들이로 바뀐답니다. 그러다가 1 년전부터는 위 아래층이 다 비었대요,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아서. 골치가 아픈 주인은 싸게라도 그 집을 팔려하는데 임자가 나서지 않아 그냥 빈집으로 방치해놓고 있다고 합니다.

친구가 어느 날 그 빈 집에 갈 일이 생겼답니다. 분명 ‘배달종료’라고 뜬 택배가오지 않아 확인해 보니 옆집으로 잘못 배달이 되어서. 대문이 잠겨있지 않아(그래서 택배도 배달되었겠지만)집안으로 들어갔는데 한겨울의 냉한 기운이 친구의 온몸을 휩싸더랍니다. 친구 네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그 집 마당과 마루의 일부분이 보이는데 음습하고 음침한 기운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강한지는 몰랐대요. 얼른 택배상자를 집어들고 대충 훑어봤는데 구석구석 곳곳에 영가가 드글드글하더래요. 그 영가들이 친구에게 오려고 시도를 하길래 호통을 친 후 얼른 돌아나왔다고 합니다. 친구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흉가야, 흉가. 사람들이 오래 못살고 자꾸 이사를 나간 덴 이유가 있었어…

무당도 고개를 흔드는 집이라. 나는 얼른 나가서 그 집을 기웃거려봤습니다. 친구집을 수차례 들락거렸으나 나뭇가지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아 옆에 집이 있는 줄도 몰랐었습니다. 친구집 올라가는 계단에 서서 보니 마당과 집의 앞부분이 보이더군요. 벽과 마당에 검은 이끼가 가득했어요. 빈집이라서 그럴까요. 친구로부터 귀신(?)이 살고 있다는 얘기를 미리 들어서 그럴까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으시시했습니다. 환한 대낮인데도요. 금방이라도 흑단같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자가 히죽거리며 걸어나올 것같이. 그런 무서운 집을 옆에 두고 친구가족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고 있습니다. 죽어도 친구집에서 자지 못할 이유가 또 생겼습니다. 할 수 없이 일산에 살고 있는 사촌한테 하룻밤 신세를 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호텔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일요일 예약을 취소한 손님이 생겼다고. 나는 일요일까지 호텔에서 잘 묵고 월요일에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 친구네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보이는 옆집. 사진으로만 봐도 무시무시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