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차 밝혔지만  외출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고향에가서도 집 밖을 잘 안 나갑니다. 나간다 해도 동선이 항상 같습니다. 공중목욕탕, 그리고 마사지샵.  아니면 동네 시장과 이모, 고모네. 다 걸어서 다닙니다. 내 고향은 인구  10만 남짓한 소도시라 택시 기본요금으로 어디든 다 갈 수 있지만 뭐 시간을 다투는 급한 볼일도 아니어서 거리 구경, 사람구경하면서 슬슬. 올케가 신다가 처박아놓은 운동화나 쿠션이 두꺼운 슬리퍼에  영국에 유학 간 조카놈의 트레이닝바지와 후드티를 입고요. 조카놈이 덩치가 큰 지라 포대를 뒤집어 쓴 것처럼 크고 헐렁하지만 개의치 않았더랬습니다. 대충하고 다녀도 그 누가 눈길 주며 뭐라고 흉보는 사람이 없는, 차림새에 자유로운 미국생활에 익숙해진 탓도 있었지만 원래부터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나였기에요. 친구나 동생의 차를 타고 유명식당을 갈 때는 좀 차려입었지만 걸어다닐 땐 편한 게 최고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한국은 미국하고 달랐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었습니다. 가끔 이 사이트에  올라오는 글, 그러니까 ‘한국을 곧 나가는데 ‘미국거지’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어떻게 입어야 할까요?’라는 글을  읽으면서도 무심히 넘겼던 나는 한국에서 옷차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습니다. 옷차림때문에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단 생각은 꿈에도 못했습니다.
 
재작년 가을, 냉증이 재발했을 때. 어떻게든 나아보려고 올케가 소개해 준  뜸집을 찾아갔을 때. 이 뜸집이 산 속에 위치해 있기에 동생집에서 좀 멉니다. 시내를 지나 한적한 마을 두 개를 통과해 얕은 야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빠른 내 걸음으로도 한 시간 삼십분 정도. 오후엔 서울로 올라 가야했기에 마음이 좀 급하긴 했지만 택시를 타는 대신 걸어서 갔습니다. 언제 한 번 글에 썼을 겁니다. 오픈한 시간에 맞추어 가서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원장이란 사람이 용변을 보고는 손도 안 씻고 바로 뜸술에 들어가더라고. 예, 맞습니다. 바로 거기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꽤 먼길을 걸어야했기에 내 차림새는 여전히 간편했습니다. 아니, 간편을 넘어서 초라하고 남루했다고 해야 옳겠지요. 그때의 내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참 가관이긴 했어요. 다떨어진 운동화에 무릎나온 회색 트레이닝바지와 윗도리. 위에 말했지만 조카 옷이라 내 몸에 엄청 큽니다. 품도, 소매도, 길이도. 또한 워낙 몸에 차고 다는 걸 안 좋아하는지라 손목에는 시계 하나 뿐, 그 어떤 장신구도 걸치지 않았고 선블럭만 달랑 바른 못생긴 맨얼굴입니다. 그마저도 흘러내린 땀으로 얼룩져 형편 없었고요. 정말 볼품없는 아줌마의 모습입니다. 두메산골에서 밭 매다가 금방 온 차림새. 그래서 그런 것 같았어요. 원장과 몇몇 도우미가 표나게 불친절한 겁니다. 부당한 대우를 해도 항의를 하지 못할 것같아 보이는, 돈도 없고 빽도 없고 무식해 보이는 사람한테는 막 대하는 걸로 묵시적 약속을 한 사람들 같이요. 산길을 올라가서 목이 탔는데  물통 옆에 종이컵이 비치되어 있지 않았어요. 지나가는 도우미에게 종이컵을 달라고 했더니 대꾸도 않고 턱으로 한쪽 코너를 쓰윽 가리킵니다. 내 차례까지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냐고 물어보자 짜증 난 목소리로 말합니다. 몰라요. 기다려 보세요.

원장이란 사람 또한 내가 증상을 설명하는데도 전혀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아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냥 지가 알아서 여기저기 뜸을 뜹니다. 아무것도 묻지도 않습니다. 침과 뜸의 대가(大家)라는 명성을 듣긴했지만, 그래서 밤낮없이 환자들이 밀려든다고는 하지만 태도가  참 오만불손합니다. 환자의 증상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어떻게  낫게 하겠다고. 오후에 기차를 타야 했기에 뜸 뜬 후에 바로 샤워를 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알아서 하시지 뭐 그런 것까지 묻냐고 면박을 줍니다. 퉁명스럽기 그지없는 목소리와 얼굴로. 그러다가 40만 원이나 하는 뜸기기를 소개할 땐 세상 살갑게 굴더니 구입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자 금방 원래의 뚱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바뀝니다.

나한테만 그렇게 티 나게 함부로 했습니다. 타 지역에서 온 중년여성들이 서너 명 있었는데 그들한테는 웃기도 하고 농담도 하는 등 아주 다정하고 상냥했어요. 물과 커피를 권해주기도하고. 압권은 호칭이었습니다. 그녀들에 대한 호칭은 ‘사모님’. 나를 부를 때는 ‘아줌마’. 그녀들의 차림새는 그야말로 사모님처럼 부티가 좔좔 났거든요. 목에 귀에 손가락에 손목에 금붙이들이 번쩍번쩍 빛을 내고 있었고요. 옷들도 울긋불긋 화려했습니다. 뜸 뜨는 방의 통창으로 주차장이 곧바로 보였는데 그들이 타고 온 차들은 모두 독일제였어요. 나 혼자만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 올라간 거지요.

그리고 지난 해 가을. 입술위 주름 수술을 하느라 병원 바로 옆에 위치한 호텔을 예약했습니다. 홍대 거리를 관광온 중국인들이 주고객인 호텔입니다. 수술 하루 전날 저녁. 고향에서 올라가 호텔로 찾아갔습니다.  낮은 카운터에 젊은 청년이 혼자 있습니다. 내가 가까이 가는 기척을 느꼈을 텐데도 그는  먼저 아는 체를 안 합니다.  나는 어서 오세요, 뭘 도와 드릴까요라고 인사해주기를 잠시 기다렸습니다. 2, 3분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는 잠자코 있습니다. 참다못해 내가 안녕하세요했더니 그때서야 고개를 옆으로 쓱 내밀어요. 인사도 없이 잠자코. 잡상인 내지 거지 취급입니다. 여기 호텔 예약했다고 했더니 흠칫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귀찮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면서 컴퓨터로 눈을 향합니다. 가능하면 높은 층으로, 거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층의 방을 달라고 부탁하는데도 대꾸조차 하지 않습니다.  다 됐어요하고 키를 내주는데 목소리가  무뚝뚝하기 짝이 없습니다. 교육으로 훈련된 가식적인 친절조차 담겨져 있지 않아요.

높은 층을 달라고 했는데  겨우 3층입니다. 방에 들어가  창문의 커튼을 열다가 나는 허허 웃었습니다. 옆 빌딩의 컴컴한 시멘트벽이 바로 딱 보이는 겁니다. 30센티나 떨어졌을까. 너무 붙어서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아요. 내 요청을 완전히 묵살해버린 카운터 청년.  그런 방밖에 남은 게 없으면 ‘죄송합니다만 손님이 원하는 방을 드릴 수 없습니다’하고  양해를 구하는 게 순서지요. 내 차림새 때문일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느라 그랬는지 그날 엄청 추웠습니다. 비도 오고요. 미국에서 가져간 옷이 다 얇은 것뿐이었던지라  조카옷 위에 올케가 버린다고 내놓은 스웨터로 무장을 했습니다. 하도 오래 입어서 원래의 제 색깔과 보온기능을 잃은, 보프라기가 잔뜩 일어난 옷입니다. 길에 내놔도 아무도 안 주워 갈. 호텔 방 안 전신거울에 비추어보니  6.25전쟁 때 남하한 피난민같습니다. 그런 거지꼴로 기차를 탔고 서울로 올라갔던 겁니다. 무시를 당해도 할 말 없습니다.

일단 샤워를 하고  화장을 했습니다. 서울에 사는 두 친구가 호텔로 오기로 했거든요. 꽃단장을 마친 후 친구들 도착 시간에 맞추어 로비로 내려갔습니다. 친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밖을 내다보며 서성거리고 있는데 카운터에서 뭘 도와 드릴까요하고 친절이 담뿍 담긴 목소리로 누가 묻습니다. 아까 그 청년입니다. 만면에 미소를 띄고 있습니다. 요청사항은 뭐든지 들어주겠다는 만반의 태세를 갖춘 얼굴 표정. 조금 전의 나를 전혀 기억 못하는 눈치입니다.
 
여기 쓴 에피소드는 일부분입니다. 나는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도, 한의원에서도, 혼자 들른 식당에서도 사람들이 옷차림으로 차등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잘 차려 입었을 때와 못차려 입었을 때  대우가 달라요.  멋지게 차려입지 않은 자격지심에서 오는 혼자의 착각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겁니다.  나는 안 그렇던데라고 말할 사람도 분명 있을 건데요. 나는 여기서  8대 2이론에 대해서 말합니다. 열에 여덟이 그랬다면 그건 확연한 거지요.

지금은 그런 경우가 많이 없지만 예전에 남편이 미국인이라고 하면 으레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조금은 측은해하고 조금은 동정하는 듯한 얼굴로 하는 말. 대화는 잘 통해? 아무리 영어를 잘 한다고해도 언어와 문화의 미묘한 차이가 있을 텐데.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합니다. 같은 한국말을 쓰는 당신 부부는 대화가 무지 잘 통하나요?그러면 달라지는 그들의 얼굴색. 그렇습니다. 미국에서 받는 인종차별이야(운이 좋았던지 캘리포니아에 살아선지 지금까지 그런 경험은 전혀 없습니다)감수한다치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내 모국에서 입고 있는 옷차림에 따라 차별대우를 받는 기분, 그 기분은  참 더럽습니다. 내가 보기에 한국에는 인종차별보다 더 지독한 빈부차별이 있습니다.



- 올봄, 종국이와 함께 고향마을을 찾았을 때 동네 당산나무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