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그리고 새벽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무섭습니다. 시차를 가늠 못한 한국에서 걸려오는 전화인데 내용도 전부 나쁜 것들 뿐이거든요. 오래전, 집 전화를 통해 아버지와 동생의 사망소식을, 그리고 엄마가 시한부라는 소식을 들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전화들이 모두 새벽, 아니면 늦은 밤에 걸려왔더랬습니다. 그 뒤로부터는 밤늦게나 새벽에 들리는 전화벨 소리에 몸과 마음이 딱 경직되어 버리는 증상이 생겼습니다. 벨이 울리고 끊어지기를 서너 번 반복할 때까지 전화 옆으로 가지 못하는 증상이 생겼습니다. 그만큼 전화로 듣는 가족의 사망소식은 충격이 컸었지요.

‘스마트폰’을 가지게 되었을 때. ‘카카오톡’ 전화로 한국에서 오는 소식도 다 나쁜 것들 뿐이었습니다. 현아와 부산친구와 무당친구의 암 발병 소식이었지요. 그 전화들을 받고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지요.  울고 또 울었지요. 그 뒤부터는 카카오톡 전화음 소리에도 트라우마가 생겨버렸어요. 띵디딩띠 띵, 띵디딩띠 띵하는 카카오톡 전화음 소리만 들리면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심장병이 생길 지경입니다. 가끔 전화번호를 찾기 싫은 여기 지인들이 손쉬운 카카오톡으로 전화를 몇 번 했는데 나는 부탁했습니다. 가급적이면 그냥 일반 전화를 하라고.

얼마 전 새벽이었습니다.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온 후 잠이 오지 않아 거실 소파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하고 있는데 부엌 카운터에서  ‘부르르륵, 부르르륵’ 소리가 납니다.  소리를 죽여 놓은 전화기벨의 진동이었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면서 반사적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봤습니다. 희미한 여명 속에서 야광으로 빛나는 시계바늘은 새벽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어요. 그 이른 새벽의 전화는 백 프로, 한국입니다. 나는 무당친구에게 무슨 변이 일어났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췌장암 3기였던 친구는 수술을 잘 마쳤습니다만 살이 급격하게 빠지고 독한 항암제로 인해  온갖 부작용을 겪고 있었습니다. 입맛이 아예 없지만 죽지 않기 위해 겨우 먹은 소량의 음식도 소화를 못하고 변비 설사가 반복되면서 기력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온몸의 색깔이 까맣게 변했어요. 특히 손가락들이. 걸핏하면 간수치가 치솟고 경련이 일어나고 황달이 생겨서 응급실에 실려갔습니다. 그러니까 언제 어떻게 무슨일이 터질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에 놓여있는 걸 보고 왔으니 나는 늘 긴장해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잘못되었다는 전화가 걸려올까 봐요.

쿵쾅거리는 가슴으로  전화기를 집어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친구의 이름입니다. 친구 딸이 전화를 한 것으로 나는 짐작을 했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기어이 올 것이 왔구나…

그러나 뜻밖에도 친구의 목소리입니다. 나는 일단 안심을 했습니다. 웬일이야, 이 새벽에? 가시나야. 전화하려거든 미국 시간부터 확인 좀 하고. 그나저나 몸은 좀 어때? 밥은 잘 먹나? 짐짓 명랑한 목소리로 친구의 안부를 물었는데요. 내 안부에는 대답도 않고 친구는 기가 딱 막히는 소식을 전합니다. 계숙아. ㅇㅇ 아빠가 오늘 아침에  하늘나라로  영영 떠났다....

무슨 소리냐고 다그치는 내게 친구가 전한 말은 충격과 안타까움, 그 자체였습니다. 한낮 기온이 38도까지 치솟고 습도가 100% 가까운 날, 일하러 나갔다가 쓰러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즘 한국날씨가 기록을 매일 갈아치울 정도로 더운데(어느 네티즌의 표현에 의하면 두꺼운 패딩입고 털 부츠 신고 습식 사우나에 들어가 앉아 있는 듯한 더위랍니다)그 한증막같은 공사현장에서 일하다가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것입니다.  올 여름, 온열질환자가 23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사망자는 스무 명이 넘는다고 하더니 거기에 친구 남편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숨질 당시 친구남편의  체온이 42도였답니다.

친구남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가다’입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나름 기술자라서 일감이 있기만하면 돈을 제법 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있어 현장에서 잘 부르지를 않는다고 해요. 올해 일흔 하나. 그가 숨지던 날 새벽. 거의 반년만에 생긴, 진짜 오랜만에 생긴 일감이라면서 들떠있었다고 합니다. 밝은 목소리로 ‘ 내 돈 많이 벌어 올께’ 하며 도시락을 들고(주위에 식당이 없는 아파트 공사현장이라서)집을 나갔다고 했습니다. 남편을 보내놓고  친구가 텔레비젼을 틀었더니 연일 이어진 폭염으로 쓰러져 숨지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더랍니다. 마음이 안 좋아진 친구가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길 빌면서 시계만 수백 번 보고 있었는데  정오 쯤  공사현장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더랍니다.
 
사실 친구는 그날따라 예감이 이상했답니다. 오랜만에 일감이 생겼다고 좋아하는 남편을 보는데 전혀 기쁘지가 않고 그냥 불안하더래요. 나가면  다시는 못 돌아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 일 나가는 것을 말렸는데 더 강력하게 말리지 못한 후회로 가슴을 쳤습니다. 그런데 딸로부터 사연을  들어보니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작년 겨울, 친구남편이 지붕의 낙엽을 제거하러 올라갔다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층집 옥상이니 굉장히 높은 위치였대요. 목숨을 보전한 것만도 다행일 정도로 중상을 입었는데  몇 달 재활치료를 마치고 그나마 최근에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해요. 운전도 할 수 있고.

친구의 암 발병에다 남편도 그런 형편이니 간병인이 필요했겠지요. 전문대학 졸업 후 중소기업에서 경리로 일하던 딸이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니 병원비랑 약값은 천정부지로 들어가는데 돈 나올 구멍은 단 한군 데도 없는 겁니다.  

지난 봄, 부산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키 위해 한국에 나갔을 때,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 먼저  서울 방학동의 무당친구집부터 들렀어요. 마침 그날이 음력으로 초하루였다고합니다. 신당에 손님이 있고 거실에도 중년 여성 둘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지요,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다는 사람이 자리보전을 하지 않고 ‘일’을 하고 있어서. 말을 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친구가 일을 해야만 목구멍에 풀칠을 할 수 있었던 형편이었던 겁니다. 카드는 모두 한도까지 꽉 차있고.
 
생전 내가 먼저 전화를 안 하는 편이지만 망연자실하고 있을 친구를 생각하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몇 번 전화를 했어요. 넋두리라도 들어주려고. 같이 울어주려고. 장례를 치른 후. 회사측에서 CCTV에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 남아 있으니 볼 테면 보라고 하더랍니다. 친구는 크게 후회했습니다.
“차라리 보지 말 걸. 그냥 별 고통없이 편안하게  숨을 거두었을 거라고 상상만 하고 있을 걸. 고통스러워 하던 모습이 눈에 밟혀 견딜 수가 없어…”

CCTV속의 남편은 더위때문에 아주 괴로워하는 모습이더랍니다. 온 대지를 태울 듯 이글거리는 해 아래서 무방비 상태로 일하는 모습이었답니다. 그는 온 몸에 비오듯 흐르는 땀을 어깨에 걸친 수건으로 연신 닦아내면서(특히 눈을 자주 닦아내더래요. 눈으로 들어간 땀으로 따가워서였겠지요)계속 움직이더랍니다. 시멘트 부대를 옮기고 벽돌을 들어서 지정자리에 놓고 무거운 공구들을 들었다가 놨다가. 한참동안 앉아서 갠 시멘트를 벽에 바르던 남편이  천천히 일어나더랍니다. 물을 마시려는 듯 멀리 있는 물병 쪽으로 두어발자욱 옮기다가 갑자기 픽 쓰러졌대요. 쓰러진 채 팔다리를 버둥거리다가 숨이 막혀 오는지 두 손으로 목을 감싸더래요. 문제는 친구남편이 일하는 곳이 벽이 가려진 데다 주위에 사람들이 몇 있었는데 모두 자기 일에 몰두하느라 아무도 그가 쓰러진 것을 인지 못했다는 겁니다. 친구남편은 그 사람잡는 더위속에 한 시간 이상 방치되어 있다가 숨을 거둔 거지요.
 
친구는 계속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한탄했습니다. 고생만 하다가 갔다고. 일곱 형제의 장남으로 단 하루도 맘껏 쉬어보지 못하고 이날 이때까지 일만 하고 돈 걱정만 했던 불쌍한 사람이었다고. 차라리 병이라도 나서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서  갔다면 덜 원통하고 덜 미안할 텐데  가만 앉아만 있어도 숨이 막히고 땀이 줄줄 흐르는 야외의 땡볕 아래 노동일을 하다가 갔다고. 그럴까요. ‘차라리 병이라도 나서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서  갔다면’ 덜 원통하고 덜 미안할까요. 우리 마음이 좀 편할까요.

친구남편이 세상 떠나기 며칠 전, 이곳 한 지인의 남편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폐암 4기 진단을 받은지  2주만입니다. 그는 병원에서 의료진들의 보살핌 아래 아무 고통없이,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아내와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편안한 침대’에서 ‘편안하게’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그랬는데도 아내는 미칩니다. 잘못해 준 일만 생각나서.

그렇습니다. 편안하게 떠났든 고통스럽게  떠났든  남은 배우자는 애통합니다. 힘듭니다. 인간의 스트레스 수치 중 배우자와의 사별이 가장 높다는 조사결과가 있듯이 배우자의 죽음은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충격이지요. 지금까지 이어지던 일상이 곤두박질을 치는 충격.

얼굴만 봐도 짜증이 솟구치는 우리의 남편도 어느날 갑자기 내 곁을 떠날지도 모릅니다. 예고도 없이 작별인사도 없이 어느 날 홀연히. 연기처럼. 그런 때를 대비해서라도 지금 한 번 더 웃어주고 한 번 더 어깨를 감싸주고 맛있는 거라도 해 줘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