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살았을 때는 나름 친하게 지냈지만 미국 오고 나서 거의 연락이 끊긴 친척 남동생이 있습니다. 근황이 궁금하긴 했지만 내 한국일정은 일주일 정도로 늘 빠듯했기에 그 동생까지 만날 틈이 없어 연락을 하지 못했습니다. 몇 년전, 내가 한국에 나가 있다는 소식을 어떻게 듣고는 동생이 먼저 연락을 했습니다.
 
30여 년 만에 호텔방에서 다시 만난 동생. 예전엔 서로 어려서  몰랐었는데  대화를 해보니 사고와 지식의 깊이가 남다릅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더니 다방면으로 내공이 쌓여있는 게 느껴지더군요. 동생 역시 말했습니다. 누나처럼 공감 잘하고 반응 잘하고 이해력이 뛰어난 사람은 처음 본다고.

점심시간을 넘겼지만 배 고픈 줄도 모르고 대화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런데요.  한국사회의 ‘특이점’에 대한 내 얘기를 듣던 동생이 갑자기 한쪽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어헝, 울음을 터트립니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흐느낍니다. 나는 당황 할밖에. 내가 한 얘기는 군에 간 장성한 아들을 둔, 머리카락이 허옇게 센 동생이 울음을 터트릴 만한 소재가 전혀 아니었거든요.

내가 머물던 호텔. 코로나 기간이라  리무진 버스가 다니지 않아 공항 근처에 잡은 호텔인데 제법 비싼 곳입니다. 용모가 아주 빼어난 직원 세 명이 상주하는. 카운터를 마주하고 엘레베이터가 있었는데요.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가 나갈 때마다 그 직원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고개를 90도로 숙이고 절을 하는 겁니다. 미국에 30년 넘게 살면서 그 누구로부터 ‘절’이라는 걸 받아 본 적 없는 나. 얼마나 어색하고 거북하고 미안하던지요. 그들에게 말했어요. 절 안 해도 된다고. 괜찮다고. 그러나 소용없습니다. 계속 합니다. 손님들에게 절을 하는 게 호텔의 지침인가 봅니다. 하루에도 수백 명이 엘레베이터에서 내릴 텐데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일으켜 절을 하는 일이 얼마나 비효율적입니까. 그리고 그냥 투숙객일 뿐인 내가 왜 그들로부터 절을 받아야합니까. 나중엔 절을 받기 싫어서 로비에 내려 갈 일이 있어도 참았다니까요.
 
독자님들께  자랑한 적 있지만 한국 경기도에서 발행하는 일간지에 칼럼을 썼습니다. 그 신문사의 내 담당기자랑 문자로 대화를 하는데 참 생경한 게 있었어요. 대화의 첫 마디를 무조건 ‘죄송합니다’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본인의 휴가로 다른 기자를 대체해 주면서도 죄송합니다, 내 칼럼이 게재되는 날짜가 공휴일이라 원고를 보내지 않았더니  그 전 날짜에 싣는 것으로 편집부에서 결정했다는 말을 전하면서도 죄송합니다, 내가 작은 시정을 부탁했더니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전혀 죄송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무조건 죄송합니다라고 사죄부터 하는 겁니다. 호텔 직원들과 신문사 직원의 예를 들어가며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동등한데  왜 한국은 특정인에게 필요 이상으로 저자세를  취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중이었어요. 그 얘기를 듣던 동생이 울음을 터트린 것입니다.

울음이 잦아들고 나서 동생이 털어놓은 사연은 참으로 경악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유명대학 나와 유명학원에서 수학강사로 일하던 동생은 나이에 떠밀려(당시 겨우 50세인데!)퇴직을 해야했습니다. 그 나이의 남자를 받아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고 몸이 약해 막노동은 할 수 없었던 동생이 어렵게 취직한 곳은 한 대형병원 원장의 자가용 기사. 그런데 그 원장이라는 작자의 ‘갑질’이 도를 넘는다는 것입니다. 개새끼, 병신같은 새끼, 바보 멍청이같은 놈, 니 에미가 그렇게밖에 못 가르치더냐는 등등 입에도 담지 못할 욕설과 폭언은 매일매일 소나기처럼 쏟아지고요. 급기야는 차에 있는 휴지, 구두주걱, 가방 등 물건까지 던진답니다. 구둣발로 차는 건 예사고요. 그럴 때마다  동생은 병원장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산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동생과 그 원장의 나이가 같답니다. 나이나 좀 많다면 어른이니까하고 참아보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퇴사를 하려해도 갈 데도 없고 매일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버티고 있는데 늘 죽고 싶답니다. 모멸감과 수치심과 굴욕감으로 불면과 불안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동생.  그러다가 내 앞에서 설움이 폭발한 것입니다.
 
월급 준다는 이유로 동갑인 남자에게, 한 집안의 가장인 사람에게 그런 갑질이 허용되는 한국사회. 미국에서라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 한국에서는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재벌’ ‘먹방’ ‘한(恨)’에 이어 서양권에서 소리나는대로 표기되는 낱말이 ‘갑질’이랍니다. 번역이 안 된답니다. 왜냐, 서양권에서는 기본적으로 남을 업신여기거나 깔보거나 무시하는 ‘갑질’이란 문화가 없기에 대체 할 낱말을 찾지 못했으므로.

나는 미국 와서 위축되거나 기가 죽어 본 적 없고 남의 눈치를 살펴본 적 없습니다. 청소일을 할 때도.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 살 때도. 차가 없어 먼 길을 걸어 다닐 때도. 내가 당당한 성격이어서가 아니라 미국인들은 키 작고 못생기고 영어 못하고 가난한 동양여자인 나를 한 인간으로 존중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버벅거리는 영어로 미국 직장에 들어갔을 때도요. 영어를 잘 못하니 당연히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저질렀겠지요. 그렇지만 20년 동안 한번도 윗사람으로부터 인격모독적인 발언을 들은 적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미국에는 직원이 아주 큰 실수를 했더라도 그 잘못만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할 뿐이지 사람 자체를 비하하거나 모욕하는 일은 없지요. 그래서 몸이 불편한 장애자도 가난한 사람도 못 배운 사람도 막일을 하는 사람도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사회 구성원으로 잘 살아갑니다.


가끔 미씨유에스에이에 미국보다 살기좋은 한국으로 역이민을 하겠다는 글이 올라옵니다. 나 역시 더 늙으면 혼자라도 한국에 나가 살아볼까 궁리를 한 적 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이 가야 뭐가 돌아가는 여기 미국 생활과 비교하면 한국은 ‘천국’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까. 돈만 있으면 전화 한 통으로 생활이 가능하니까. 하루도 안 걸려 ‘총알배송’으로 날아오는 갖가지 생필품들. 매일매일 메뉴를 바꾸어 먹어도 일년 내내 겹치지 않을 정도의 무궁무진한 식당 음식들. 미용실, 피부과 등을 예약 안 하고도 손쉽고 싸게 바로바로 이용할 수 있지요.

예에, 싸고 빠르고 편합니다. 한국은 정말 편합니다. 여기서라면 일 주일이 걸릴 바지단 줄임을 단 30분 만에, 그것도 이곳 미국의 5분의 1가격에 뚝딱 고쳐주는 한국 세탁소의 서비스에 나도 감탄한 적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밑에서, 뒤에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의 땀과 눈물과 한숨을 간과합니다. 혹한과 혹서에도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노동자들, 택배나 음식 배달원들의 고충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누리는 한국의  ‘편리함’인데. 이국종 교수가 그랬다지요. 팔다리가 절단되고  머리가 깨져 피를 철철 흘리며  목숨이 경각에 달려  응급실에 실려오는 환자들은 모두 힘들고 척박한 환경에서, 위험한 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라고요.

한때 나는 이 메마른 이민생활에 한 바가지의 샘물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적있습니다. 힘들고 지치고 좌절하고 싶은 이들의 한탄을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공감해 주겠다는. 그래서 온라인 카운셀러 강좌까지 마스터했었지요.
 
나이가 들면서 그 일이 나랑 맞지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정도는 냉정해야 하고 감성보다는 이성에 입각해야하는데 나는 감정이입을 너무 깊이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면 한동안 잠을 못잡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살면 안 됩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들이 가슴을 아프게 해서 말입니다.

작년, 한여름에  한국 대형 마트의 지하 주차장에서 하루 열 시간 이상 카트를 끌어 옮기는 일을 하던 한 젊은이가 탈진과 열사병으로 숨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수 천대의 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과 열기로  주차장 안 온도는 40도가 넘었답니다. 물론 환기는 안 되고. 그런 지옥같은 곳에서 물도 제대로 못 마시며 무거운 카트를 끌었답니다. 그가 걷는 거리는 하루 30키로 가까이. 정말로 노예도 아니고 혹사도 그런 혹사가 없습니다. 그 청년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서 나는 몇날 며칠 잠을 설쳤습니다.

세계 최고의 화려한 나라인 한국보다 한참 뒤쳐져서 느릿느릿, 세월아 네월아 기어 가고 있는 듯한 미국에서는 가슴이 아파 본적이 없습니다. 여름에 에어컨 없는 차로 우편물을 배달하는 우체부나 UPS직원들을 보면서도 그들을 안타깝거나 가엾다고 느끼지 않아요. 왜냐, 그들은 고생한 만큼, 땡볕에서 땀 흘린 만큼 충분한 보수와 보상을 받으니까요. 그 누구도 그들을 얕잡아 보거나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하는 일이 없으니까요.
 
한국에서 살지 못할 이유가 또 있습니다. 경조사를 통한 과시문화, 허세문화, 비교문화가 나랑 안 맞기 때문입니다. 남편 장례를 치르는 중이던 무당친구로부터 사진이 왔어요. 계숙아. 니 동생이 꽃을 보냈네. 화환이라곤 달랑 한 개라 내 남편은 가는 길마저 이렇게 초라한가 싶어 한이 될 지경이었는데  얼마나 고마운지…

사진 속엔  동생 이름이 쓰여진 화환과 옆에 희미하게 찍힌 화환 한 개가 보였습니다. 참으로 빈약하고 쓸쓸한 장례식장입니다. 한국은 결혼식, 장례식장에서 고인이나 가족의 사회적 위치가 드러난다고 하더니 진짜 그러네요. 친구는 무당이고 남편은 노동자였고 장남은 무당이 된 어머니가 보기 싫다고 외국에 나가 살고 딸은 ‘백수’입니다. 사회적인 지위가 낮으니 꽃이 없을 수밖에. 반면 올봄, 부산친구 아들의 결혼식장은 그야말로 화원을 통째로 옮겨놓은 것 같았어요. 어림짐작으로도 스무 개는 넘을 것 같은 화환들이 그렇잖아도 좁은 실내를 더욱 복잡하고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다 못들여놓아 보낸 이의 이름만 적힌 리본만도 벽에  수십개 붙어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는 유치원 원장에다 남편은 원자력 발전소 임원이었으니.  

‘하객 알바’가 성행하는 곳도 한국이 유일하다더니 무당친구와 부산친구가 받은 화환을 보니 이해가 되네요. 친구나 가족이 없으면 말지, 굳이 알바까지 써가며 식을 치러야 하냐고, 남의 눈을 의식하고 과시하는 문화가 팽배한 한국에만 있는, 미국에 사는 우리들은 이해가 안 되는 희한한 문화라고 생각했더니. 막상 내가 한국에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상대 집안은 뻑적지근해서 손님들이 넘쳐나는데 우리 측만 휑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위신을 살리기 위해 하객 알바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어느 동네의 어느 브랜드 아파트에 사느냐에 따라, 어느 회사의 명함을 가지고 다니냐에 따라,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느냐에 따라, 외모에 따라, 차림새에 따라, 학벌에 따라 사람의 등급이 매겨지고 대접이 달라지고 차별되는 한국.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한 조롱과 멸시가 일반화 된 것 같은 한국. 그래서 나는 미국에 살 겁니다. 미국에 천년만년 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