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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딕시의 남부생활

시간을 병 속에 담을 수 있다면 Young Gray (madamdixie) 2020-5-27  08:33:46

 

 

병원에서 태어나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보드라운 빰을 만지니 그 촉감이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입안에 사르르 녹는 맛난 음식처럼 가슴에 짜릿한 감동을 주는 생명의 신비에 새삼 감탄한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아이가 변하면서 매일 색다른 표정과 모습을 보여주니  시간을 병 속에 담을 수 있다면 (Time in a bottle)’ 라던 짐 크로스 (Jim Croce)의 노래가 생각났다.  아이가 환경에 적응하는 모든 아름다운 순간을 병 속에 담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요즈음 애틀랜타에서 한 70마일 남쪽에 있는 작은 도시 메이컨에 머물고 있다.  함께 와서 2주 아파트에 갇혀 지내던 남편은 친구들과 골프 친다며 앨라배마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산모인 둘째 딸의 몸조리를 해주면서 화창한 날씨에 끌려서 외출을 자주한다.  잠시지만 혼자서 가지는 소중한 시간에 낯선 거리를 운전하고 다니며 메이컨과 사귀는 재미가 쏠쏠하다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도 살았던 19세기 미국의 시인 시드니 러니어 (Sidney Lanier)가 태어나 성장한 이곳의 환경은 시인이 살았던 시절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대로만 벗어나면 전세기의 여유를 보여주는 한적한 분위기가 차분하고 정겹다.  일정한 목적지없이 그저 구비구비 휘어진 뒷길에서 맑은 하늘과 싱싱한 푸름의 기운을 즐기니 나 사는 동네처럼 마음 편하다.  덕분에 이 소도시에서 참으로 멋진 곳들을 많이 발견했다

 

다른 주 보다 먼저 비지니스 정상화를 시킨 조지아주지사의 결정으로 이제 많은 가게들이 문을 열었다.  선뜻 내키지 않지만 오늘은 이곳 저곳 들러서 기웃거리며 비현실적인 기분에 몰렸다.  지난 두 달 마스크를 쓰고 일회용 장갑을 갖고 다니며 식품점과 약국에만 들렸으니 다양한 물건이 전시된 쇼핑센터에서 무엇을 봐도 생필품이 아니면 눈길이 가지 않았다.  모처럼만에 문을 연 가게에서 무엇인가 팔아주고 싶어서 두리번거렸지만 이상하게 갖고 싶은 충동이 일지 않았다.  더구나 마스크를 쓰지 않고 6피트 거리 두기도 제대로 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나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솔직히 싫었다.  사람을 피해서 가게를 나서며 차라리 마음 편하게 시골길을 달리고 싶었다.  

 

원래 나에게는 한번 나서면 지칠 줄 모르고 오랜 시간 쇼핑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남편은 내가 쇼핑간다면 아예 나설 생각조차 하지않고 딸들조차 나를 따라 나서지 않도록 나는 줄기차게 다니며 무엇이든 직접 만져보고 느낌을 받는 물건을 샀다.  어쩌면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껴서 느낌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상황 탓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나의 쇼핑 버릇을 코로나바이러스가 짧은 시일에 바꿨다.  

 

사람을 피하고 물건을 외면하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를 보며 짐 크로스의 노래에 내 나름의 가사를 지어서 흥얼거렸다.  아이의 축복을 비는 주문같은 기도를 시작으로 나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내 기억 창고의 제일 바닥에 있는 어렴풋한 순간들부터 줄줄이 기억하니 아프고 슬펐던 일은 별로 없고 기쁘고 좋았던 사건들이 수두룩했다.  사람의 기억은 세월과 환경에 따라 줄곧 수정된다고 했는데 지금 이 순간 내가 회상하는 일들은 마치 병 속에 간직한 듯이 생생하다.  크고 작은 아름다운 추억들이 내 삶을 엮어 왔으니 코로나바이러스로 뒤범벅이 된 현실도 훗날 그 속에 씨줄과 날줄로 섞이리라.   

 

이집 주인인 딸을 낳아 성인이 되도록 키우니 제 짝을 만나서 데려왔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장래 확실한 계획이 없던 무직자 두 사람은 결혼하고 싶어했다.  집도 직장도 없는 아이들의 결혼을 남편은 반대했지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을 들먹이며 나는 지원했다.  그리고 결혼한 그들이 자립하는 것을 지켜보며 한시름 놓았다가 이제 아이를 낳아서 책임을 지는 부모로 성숙해서 기쁘다

 

먹고 싸고 자고,  빠르게 성장하는 신생아처럼 나도 단순한 일상에 몰입한다.  미역국을 열심히 끓이고 모유를 촉진하는 락태션 쿠키를 부지런히 굽는다.  산모에게 좋다는 동양과 서양의 음식을 골고루 마련해 주면서 삶의 순환을 인식한다.  내 임무가 끝나가는 과정이며 동시에 내 삶의 최고의 순간인 지금을 병 속에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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