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메리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늘었다는 뉴스에 움칫해서 문을 연 미용실 방문을 주춤였다.   3월에 들렀어야 하는 것을 이런 저런 핑계로 가지 않다가 그만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자 머리 짜르는 것을 포기 했었다.   그까짓 머리가 길어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으니 그런대로 살지 했다.   머리가 길어서 어깨에 닿아 불편하자 숱도 별로 없는 약한 머리카락을 뒤로 모아서 밴드로 묶었다.   마치 새꼬리 같았지만 그런대로 목이 시원해서 좋았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에 세수를 하는데 긴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어서 짜증이 났다.   서랍에서 남편 머리를 깎아주는 가위를 꺼내서 거울 앞에 섰다.   머리 한쪽부터 손으로 잡고 귀 아래로 싹둑 자르기 시작하니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아주 오래전에 이렇게 거울 앞에 서서 억센 가위를 잡고 내 머리를 직접 자른 일이 생각났다.

꼭 42년 전 이맘때다.   텍사스에 있는 공군훈련소에서 신병훈련을 받을 적이었다.   훈련병은 머리카락이 훈련복 컬러에 닿지 않아야 했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으로 시작하는 바쁜 일정에 긴 생머리까지 틀어 올려야 했는데 그것이 도전이었다.   헤어핀을 잔뜩 사용해도 오후가 되면 머리카락 몇 올은 삐죽 빠져나와 교관의 트집거리가 됐다.   교관들은 심지어 치약뚜껑에 치약이 살짝 묻은 것에도 벌점을 줄 정도로 단체생활하는 병영에서 모든 소유물까지 철저히 검열됐다.   그때 내 벌점이 올라가는 것은 늘 머리카락 탓이었다. 

삐쳐나온 머리카락으로 다시 벌점을 받은 날 저녁에 공동 화장실의 작은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사무용 가위를 들고 내 머리를 귀 바로 아래로 자르기 시작했다.   그땐 숱이 많아서 뒷머리를 자르느라 혼자 허덕이니 옆의 싱크에서 양치를 치던 동료가 가위를 잡아서 도와줬다.   손거울도 없던 때라 뒷모습이 어떠했는지 몰랐고 솔직히 관심도 없었다.   그저 앞으로 벌점을 받을 소지를 없앴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다음날 어수선한 내 머리를 본 교관이 주말에 미용실에 가라는 조언을 줬다.   그때부터 여자는 나이 들수록 머리 길이가 짧아져 간다는 통설처럼 지금까지 한번도 머리를 길러 본 적이 없다. 

머리를 다 짜르고 손거울을 들고 어떻게 됐나 보니 뒷머리가 예상보다 단정했다.   그리고 머리가 가벼워서 기분도 가뿐했다.   그런데 새꼬리를 없애고 찰랑거리는 단발머리인 내가 아침을 준비하고 식탁에 마주 앉았을 적이나 하루 종일 가까이서 봤어도 남편은 내 머리 스타일이 달라진 것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하룻밤을 자고 난 후에나  “어 언제 어디서 머리 잘랐어?”  하고 물었다.   허긴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다니며 사는 일상에 나만 아니라 남편도 익숙한 탓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사람을 피하니 모두가 투명인간이 된 비정상이 당연한 정상인 생활에서 매일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듯 비틀거리며 사니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단순하고 이상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와중에도 기쁨이 있다.   땅위에 펼쳐지는 계절의 아름다움과 구름과 석양과 무지개 등 순간을 멈추는 하늘의 그림을 보는 일이다.    그리고 워싱턴DC와 조지아주 메이컨에 사는 손자들과 페이스타임으로 만나는 일도 즐겁다.  아이들은 멀고도 가까이 있다.

7주된 아이는 옹알옹알 한다.   머리를 들어 방향을 바꾸며 하루가 빠르게 성장한다.   곧 뒤집을 것이고 기다가 걸으려고 뒤뚱거리며 발을 떼어놓을 것을 생각하면 신이 난다.   그리고 이제 3살이 된 손자는 좁은 집안에 태풍을 몰고 다닌다.   장난감이나 살림살이 닥치는대로 흩어서 혼돈 속의 질서를 만든다.   매일 번복되는 태풍 놀이에 지치지 않는 아이는 노래도 많이 부른다.   그 나이에 어울리는 동요가 아니라 자기 아버지 취향에 따라 유행가를 좋아한다.   작은 손으로 기타를 튕기며 부르는 노래는 롤링 스톤즈의  ‘루비 튜즈데이’와 지미 헨드릭스의 ‘엔젤’ 인데 최근에 프린스의 ‘퍼플 레인’ 이 더 보태졌다. 

자기 아빠가 기타를 치는 것을 주의해서 본 후 이제는 제법 흉내를 잘 낸다.   포즈나 움직임은 앙징스런 아이의 모습이 아니라 전문음악인의 자세다.   더구나 3살이라 믿기 어렵도록 전신을 흔들며 열창하는 아이의 표정은 진지하다.   손주가 공연을 보여주면 예전에 좋아하지 않았던 노래지만 나도 손자따라  “굳바이, 루비 튜즈데이… 난 널 그리워할거야”  부른다.   언젠가는 이 혼란스런 세상이 안정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