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생활하다가 한국어로 글을 쓸 적에는 내 머리 속에서 영어와 한국어가 줄다리기를 한다.  미국서 산 세월이 거의 반세기가 되어가지만 그 긴 시간들과 조금도 뒤지지않고 맞서는 것은 태어나고 자라며 배운 모국어다.  하지만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관점을 전달하는 표현방식이 다른 한인들이 사용하는 방식과 조금 달라서 솔직히 단어 선택이 어렵다. 

하지만 매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는 자세로 밀어부쳐 글을 쓰면서 생각하는 단어는 우습게도 고사성어가 많다.  지혜가 함축되어 있는 적절한 말을 궁리하면 아주 오래전 한국에서 어린시절 한문을 배운 교실이 생각난다.  그때 60명이 넘는 여자애들이 다닥다닥 붙은 책상에 앉아 키득거리며 한자의 획을 하나씩 배웠다.  한자를 가르치던 중년의 선생님은 마치 세상을 다 살아본 듯한 깊은 혜안으로 한자 풀이를 재미있게 가르쳐줬다. 

사람은 혼자 살 수가 없고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하기때문에 두 획을 기대어 놓은 것이 사람 인 자를 만든다고 했고 열 가족의 입을 부양하는 파워를 가진 것이 남자의 남 이라는 한자를 배우면서 너무 재미있었다.  한자는 형상을 본뜬 상형문자로 머리속에 각인이 되어서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분명하게 기억하게 됐다.  그리고 영어는 서양에 대한 호기심에 끌려서 공부했지만 한자는 순전히 필요해서 배웠다.  그렇게 한문 공부를 해서 신문에 한글과 함께 섞여 프린트된 한자의 의미를 알게되자 성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어릴적 배운 흥미롭던 사자성어들이 영어의 이디움 관용구와 손을 맞추어서 내가 어떤 상황에 마주서면 저절로 고개를 내민다.  견물생심,  자업자득,  감언이설,  사면초가,  새옹지마,  화룡점정,  맹모삼천,  대기만성,  유명무실,  거두절미,  금지옥엽,  노심초사,  동분서주,  배은망덕,  속수무책,  산전수전 등 줄줄이다.  깨우침을 주면서 동시에 동화같은 흥미로운 스토리를 가진 사자성어에 관심을 가지니 내 취미가 조금 바뀌었다.  서양의 고금 시인들의 시를 읽다가 요즈음 한국의 현대시를 즐겨 읽는다. 

암튼 독서삼도에 푹 빠졌다.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고 마음으로 해독한다.  더불어 신문학 이후의 작품들을 통해서 현대시 문학사의 흐름을 파악하고 사회상의 변천도 따른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시기의 시 한편 한편의 언어가 모두 아름답고 정겹다.  특히 올 봄에 세상을 떠난 문덕수 시인의 ‘꽃과 언어’ 도 좋다.  “언어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다… 어떤 언어는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된다.”  얼마나 근사한 연결인가.

더불어 이제는 중국과 일본으로 시선이 간다.  코넬대학에서 중국학을 공부한 데이비드 힌톤이 중국 당나라 시대 시인 이백 (701-762)의 시를 영어로 번역한 것을 읽다 보니 중국어로 읽고 싶어서 한문 공부를 하고 싶다.  원어로 읽으면서 시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서 앞으로 한문을 공부해야겠다고 벼른다.  그리고 일본 시인 사이교 호시 (1118-1190) 의 시를 버턴 왓슨이 번역한 ‘Poems of a Mountain Home’ 를 읽으며 간결한 문체와 감정의 정갈함에 감탄한다.  20세기에 일본에서 한창 활기를 띄웠던 5행의 짧은 시 Tanka 도 좋다.  마치 벚꽃이 활짝 핀 나무 아래에 앉아서 티 세레모니에 동참하는 기분이 든다. 

동양과 서양의 표현 방식이 내 속에 녹아서 이런 저런 시를 읽으면서 기쁨을 얻는다.  삶을 사는 자세나 사물의 참모습을 찾아 관조하는 동서양 시인들은 모두 철학가들이다.  그들은 감정과 이성의 조화도 완벽한 언어로 찾아낸다.  비록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지만 인터넷으로 지구 곳곳의 문화와 자유롭게 소통이 되어서 만리동풍, 천하가 통일되어 온세상의 풍속이 같다는 고사성어가 실감된다.  더 신나는 일은 좋은 시로 코비19 팬테믹 사태를 견디는 건강한 정신을 지키는 것이다.  

더 솔직히 내가 동양으로 목을 길게 뽑는 이유는 여우가 죽을 때는 제 집 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죽는다며 고향을 잊지 않고 그리워한다는 수구초심인지도 모르겠다.  왠지 이런 노년기의 여유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