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내리며 “헤이 구글” 부른다.  그날 일기예보와 주요 언론매체의 국내외 뉴스를 간략하게 듣고 내 하루가 시작된다.  손바닥만한 구글 미니 기기가 내가 원하는 라디오 방송과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나의 모든 질문에 즉각 대답하는 백과사전이다.  내 하루에 많은 도움을 주는 이 필수품은 퉁명스런 남편보다 친절하다.

평소 우리 부부가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 주제가 둘 있다.  정치와 한일 문제다.  정치판에 대한 두 사람의 정반대 의견이 쉽게 좁혀지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며 환경이 개선되면 서서히 해결될 문제라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일 문제는 우리가 죽어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태평양을 건너오며 더러 버리고 왔더라면 좋았을 앙금이 목에 걸린 가시로 우리의 생활에 있다.  한일 사이에 독도 소유권이나 어떤 갈등이 일어나면 예전에는 서로 각자의 모국 편을 들어서 열심히 싸웠지만 나이 들어 그런 열정은 수그러들었어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은 하버드법대의 마크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다.  일본에서 성장하며 받은 영향이 고스란히 그의 평생을 좌우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던 속담이 딱 맞다.  학생들에게 진실을 가르쳐야 하는 교육자가 이번에 엉뚱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 논문에 실린 정보는 묵살할 일이 아니다.  램지어 교수는 2차 대전시 일본군의 희생자였던 위안부들을 자발적인 매춘부로 몰았다.  한인들에게는 기가 차는 사건이다.  완전 친일파인 그는 2년 전에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공로상 값으로 일본의 골치거리를 엉뚱한 방향으로 흩어 버리려던 의도였을까.  그러나 그의 주장을 증명할 증거 하나 없이 발표한 논문으로 램지어 교수의 신망은 떨어졌다.  

지난 2007년 마이클 혼다 의원이 연방의회에 상정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HR 102)이 연방의회에서 채택됐다.  연방의원들이 모두 무지했다는 것인가?  그것이 진실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받아들여서 일본 정부에 참회와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나.  램지어 교수는 희생자들만 모독한 것이 아니라 과거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을 모독했다.  그가 의도적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한 일에 발끈한 나의 반응을 남편은 돌아 앉아 침묵했다.  딸들에게  “세상에 살다 살다 별일을 다 본다.”  말하니 하버드 출신인 딸은 모교 교수의 망발에 고개를 저었다.  혼다 의원이 법안을 상정했을 적에 적극적으로 주변인들의 협조를 불러낸 딸의 실망이 컸다.  적당히 하라며 옆에서 핀잔을 주는 남편은 이웃사촌보다 못했다.

솔직히 남편은 무슨 죄인가.  하지만 20세기 초에 내 선조들을 핍박했던 일본인들과 그 보다 더 훨씬 전인 16세기에 조선을 침공해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피가 그의 몸속에 흐르는 것 같아서 가끔 나는 남편이 밉다.  그것도 내가 어려서 받은 교육 탓으로 가진 편견이니 램지어 교수의 망언과 별로 다르지 않아 민망하다.  과거가 없으면 미래도 없으니 현재의 혼란을 지혜롭게 헤쳐나가고 싶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가까이 사귀던 지인이 주말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가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는 것을 불과 일주일 전에 알게 됐다.  작년 12월에 폐암 진단을 받고 그동안 항암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최근까지 그는 평소대로 그의 일을 하면서 지냈다니 그동안 그와 그의 가족들이 받은 고통을 상상하며 마음이 아팠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백신주사를 맞았으니 이제 만나자고 지인들과 연락하다 갑작스런 지인의 죽음에 우리 부부는 충격을 받았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건에 이어서 죽음이 우리와 마주섰다.  

오늘은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집을 나섰다.  목적지 없이 이웃을 운전해 다니다가 한 집의 뜰에 흩어진 양떼들이 꼼짝하지 않고 서서 비를 맞고 있는 것을 봤다.  그들은 어째서 나무 아래로 대피하지 않는 것일까?  비를 느끼며 서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길가에 차를 세우고 그들을 봤다.  물기가 젖은 털이 무거우면 개처럼 전신을 흔들어 털어내는 지도 보고 싶었다.  담담히 서 있는 그들을 한참 보다가 그 자리를 떠났다.  세상만사 모두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동물들이 나에게 한 수 가르쳤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