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해바라기꽃을 좋아한다.  뜨거운 태양을 향해 얼굴을 올린 해바라기의 당당함이 좋고 익으면 고개를 숙일 줄 아는 겸손함도 좋다.  어떤 연유로 해바라기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밝고 노란 해바라기꽃을 보면 마음이 환하게 열린다.  그러다 보니 딸들이 즐겨 보내는 선물도 해바라기꽃이다.  

해바라기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지난 2월 애틀란타에 사는 작은딸이 해바라기 그림으로 유명한 19세기 네델란드 출신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몰입체험 (Van Gogh the Immersive Experience) 전시회 표를 구입했다.  80년대 중반에 네델란드를 여행할 적에 암스테르담에 들러서 반 고흐의 미술관을 찾았던 적이 있어서 호기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그때 강렬한 색채의 고흐의 작품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는데 어쩌면 그때부터 해바라기를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반 고흐의 마지막 한 해를 묘사한 영화 ‘At Eternity’s Gate’ 를 넷플릭스로 보고 마음 설레다가 드디어 그의 특별전을 봤다.    

애틀란타 다운타운에서 동쪽으로 커크우드 주택가에 있는 풀만야드 (Pullman Yard)를 찾아갔다.  예전에 여러 목적으로 사용된 역사적인 장소가 예술행사장으로 변신하는 곳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입구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9시 입장표를 가진 우리도 줄을 서서 기다리며 좌우를 둘러봤다.  27 에이커 단지의 개발이 현재 진행중이라 뭔가 어수선하고 엉성한 기분이 들었다.  문이 열리자 2층 높이의 총 2만 스퀘어피트 사이즈 전시관 안 해바라기 들판으로 들어섰다.  

간략한 화가의 소개와 함께 그룹으로 모인 눈에 익숙한 반 고흐의 대표 작품들이 따스했다.  그림에 덧 붙인 화가의 인용구절이 현실과의 갈등을 힘겨워하는 화가의 삶을 엿보게 했다.  특히 그가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보낸 작은 방,  ‘아를의 반 고흐의 방’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작은 침대와 테이블과 의자 둘, 좁은 공간의 한쪽 벽에 걸린 그의 초상화가 힐끗 나를 봤다.  어두운 전시실 한쪽에서 기웃이는 나의 마음에서 그는 무엇을 꿰뚫어 보려는 건가.  

강렬한 터치와 대담한 색감의 율동이 마력으로 끌어들이는 그의 작품은 뭔가 비현실적인 신비의 매력을 가졌다.  사실주의 그림에 익숙한 동시대 사람들에게 박대를 받았지만 그는 신념대로 그가 보고 느낀 영원의 세계를 묘사하는 동안 그의 마음을 분실했다.  37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친 그가 남긴 흔적을 본 후에 들어선 방에서 눈이 확 떠졌다.  넓은 공간의 사면 벽과 바닥이 거대한 화폭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고흐의 그림으로 꽉 찼다.  그곳에서 더 이상 관람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됐다.  빛과 색채가 어울려 장관을 이룬 정경은 순간에 멈춘 그림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으로 강력한 생명력을 가졌다.

많은 프로젝트가 끊임없이 움직이며 고흐의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아몬드 꽃이 화사하게 출렁이다가 쏟아지는 물줄기가 전 공간에 넘쳤다.  비가 내리고 초상화의 표정이 바뀌었다.  농촌의 생활과 자연의 아름다운 여유와 찬란함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색다른 표정으로 넓은 공간에 흩어져 방문객들을 압도했다.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까마귀가 나는 밀밭’,  ‘아몬드 꽃’,  ‘자화상’ 등 반 고흐의 그림들이 부드러운 음악에 어울려 신나게 한판 춤판을 벌렸다.  수 많은 별이 출렁이다가 이어서 흐드러지게 많은 해바라기 꽃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와 하늘로 오르고 다시 바닥에 쏟아져 환상적인 꿈을 꾸게 했다.  화려한 그림 속에서 모든 센스가 마비된 감동적인 순간에 나도 나를 잃었다.

꿈에서 깨어나듯 그 방을 나서서 헤드셋을 이용해서 VR 가상현실을 체험했다.  전원을 두리번거리다가 고흐가 그린 그림의 배경을 좌우 둘러보며 반 고흐의 눈이 되어서 액자속에 멈춘 순간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인상주의 화가인 반 고흐보다 사실주의 화가인 렘브란트의 그림을 더 좋아하던 남편은 이번에 반 고흐의 작품을 신선하게 봤다.  진실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다.  

최신 디지털 프로젝션 기술이 안내한 반 고흐의 그림 속에서 자연을 사랑한 그의 열정을 느낀 황홀한 시간을 보내고 전시관을 떠나며 불쑥 놀라운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이 2시간이상 감탄하는 동안 이제 13개월된 어린 손주도 눈을 크게 뜨고 숨죽이고 구경한 사실이었다.  위대한 화가는 이렇게 아이의 마음도 사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