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한국의 삼겹살을 소개한 재미난 다큐,  ‘삼겹살 랩소디’를 봤다.  백종원씨가 삼겹살의 유래와 어떻게 삼겹살이 국민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는지 구수하게 소개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삼겹살은 그저 돼지고기의 한 부분이 아니라 온갖 요리방식으로 서민들에게 정감어린 분위기를 마련해주는 근원이고 한국 음식문화의 정수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야말로 삼겹살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안내했는데 한 사람이  “삼겹살의 기름 에너지로 한국이 고속성장 했다”  는 선언 또한 그럴듯했다.  한인들의 유별난 입맛 탓에 지난 30년 장족의 발전을 해서 독특한 맛의 세계를 가졌다는 삼겹살에 관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아무튼 돼지의 모든 부위가 나름의 특성대로 연구되고 식용으로 개발된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잘 익은 삼겹살이나 돼지고기 음식을 감탄하며 먹는 것을 보면서 나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미안했다.     

내가 한국을 떠난 지 반 세기가 되어간다.  그동안 모국의 많은 환경이 변했다.  그 중에 특히 삼겹살 먹는 것과 노래방 문화에 나는 낯설다.  고혈압을 가진 아버지가 싫어하신 탓에 집에서 전혀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자랐다.  대학시절에 친구들과 돼지 곱창을 먹는 기회도 피했고 이민 와서 동료들이 돼지갈비 바비큐를 먹는 행사도 참여하지 않았다.  결혼 후에 집에서 돼지고기 음식을 만들지 않았고 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베이컨을 직접 구워 먹었다. 

그런데 20년 전 현대자동차가 나 사는 지역에 공장을 지으면서 내 생활에 변화가 있었다.  이사온 한인들이 새로운 모국의 문화를 소개했다.  몇 여인들이 공원에서 가진 피크닉에 나를 불렀다.  그릴에 죽 늘어선 삼겹살을 보고 속으로  “아차”  했지만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노릿한 빛을 품고 잘 구워진 도톰한 삼겹살이 가득 담긴 접시를 중앙에 두고 모두 둘러 앉아서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서 나도 그들의 권유에 따라 삼겹살 한 조각을 상추에 말아서 입에 넣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삼겹살이었고 정작 그 맛을 제대로 몰라서 서둘러 삼켰다.  

그후 미시시피에 사는 동생네에서 삼겹살 파티가 열렸을 적에 남편은 삼겹살을 처음 맛보고 무척 행복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식구들을 위해서 동생이 삼겹살을 굽던 모습은 세상의 어떤 그림보다 아름다웠다.  사랑과 정성을 담아서 잘 구운 삼겹살 조각을 가족들의 접시에 농담을 보태서 얹어주던 동생은 은근히 흩어졌던 가족들을 뭉쳤다.  그날 삼겹살에 완전히 반한 남편은 가끔 삼겹살 타령을 한다.  몇 번 집에서 구워주다가 냄새가 싫어서 한식당에 가서 삼겹살을 구워 준다.  그리고 사위들은 삼겹살을 쉽게 받아들였지만 고기에 섞인 작은 기름기조차 수술하듯이 다 떼어내고 살코기만 먹는 나와 딸들은 아직 삼겹살과 친해지지 못했다.

삼겹살처럼 나는 노래방 문화에도 어색하다.  모국을 방문했을 적에 지인들따라 노래방을 갔었다.  여러명이 어둑한 좁은 공간에서 목청껏 쏟아내는 노래들은 즐겁기보다는 차라리 한에 맺힌 고함소리로 들렸다.  무엇엔가 쌓이고 쌓인 온갖 감정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을 나는 한쪽 귀퉁이에 앉아서 지켜 봤다.  술에 적당히 취하고 감정에 완전히 만취된 지인들은 자신들의 분위기에 빠져서 나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았다. 

복잡한 교통과 인파들이 땅을 차지하고 고층건물들이 반쯤 가린 하늘에서 맑은 별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던 서울의 중심가 침침한 노래방 공간에서 나는 남부의 확 터인 들판과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 만발한 야생화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들판에 흩어져 여유롭던 소떼들을 생각했다.  아무리 시선을 지인들에게 돌려도 내 눈에는 사람이 아니라 들판이 보였다.  지인들이 내 팔을 잡고 그들 사이에 끼워도 나는 함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고 물위에 뜬 기름이었다. 민망했던 체험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애틀란타에 옛 친구가 왔을 적에 몇 지인들이 만나서 노래방을 갔었다.  노래방에 익숙한 지인들이 동요를 부르고 70년도에 인기였던 노래를 부르면서 향수를 달래는 모습에 내 마음이 짠했다.  애틀란타에서 체험한 노래방은 한국과는 조금 달랐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이국적이었다.  어쩌다 나는 이렇게 달라져 버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