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화사하고 나뭇잎들이 싱싱한 부활절 일요일, 독일 중부의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환상적인 체험을 했다.  12세기에 건립된 성 토마스 루터란 교회에서 바로크 음악의 대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1685-1750)를 만났다. 

성전 옆의 좀 어둑한 전시실에 멈춰있는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악기들과 작곡한 악보 등에서 그는 침묵했지만 막상 성전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는 그는 영원히 깨어서 방문객을 맞았다.  죽는 날까지 27년간 이 교회에서 지휘자로 활약하며 음악생도들을 교육한 바흐의 체취가 그대로 보존된 교회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다가 중앙부의 의자에 앉아서 영혼을 사로잡는 바흐의 신에 바친 음악에 전신을 맡겼다.  신의 위대함과 신이 내린 축복에 감사함이 가슴을 꽉 채웠다. 

바흐가 즐겨 찾았다는 교회 가까이 있는 ‘카페 바움’ 앞에 섰다.  1711년부터 커피를 팔았다는 카페 앞에서 2019년은 무색했다.  이 카페에서 나의 정서적 영웅들인 바흐,  슈만,  바그너,  멘델스존,  리스트,  쇼팽,  괴테,  실러,  안데르센 등이 커피를 마시며 예술과 인생을 논했다.  그들이 앉았던 자리에서 그들이 숨 쉬었던 공기를 심호흡으로 들이마시니 나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준 그들의 존재는 어쩐지 비현실적이었다.

그들이 다녔던 시가지의 중심가이며 6월에 열리는 ‘바흐 페스티벌’의 중심 무대인 마르크트 광장으로 갔다.  1556년에 건축된 구 시청사의 아름다운 건물 앞 광장에서 페스티벌이 열려서 사람들이 흥청거렸다.  봄의 기운이 사람들의 마음에 활기를 줬다.  간이무대에서 전통 복장 연예인들의 공연을 보며 언어보다 감정으로 다가온 느낌에 마치 나도 그들과 같은 의복을 입은듯한 착각에 스카프를 풀고 열심히 박수를 쳤다.  텐트 마다 다소곳한 향토 상품들에 시선을 주다가 맛있게 구워진 소시지를 사먹었다.  소시지와 맥주에 행복한 남편이 무대 공연에 몰입한 사이 나는 거리를 다니며 구경했다. 

괴테의 ‘파우스트’ 장면에 나온 브루어리 앞에 선 조각상들에 괴테가 이곳에 머물었던 200년 전의 시간은 굳어 있었고 눈부신 건축물이나 거리 곳곳에는 세월의 흐름을 잊은 평안이 있었다.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공원의 벤치나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둘러앉아 느긋한 사람들이 나의 영웅들처럼 낯설지 않았다.  그러다가 현대판 영웅들도 만났다.  1165년에 건설된 성 니콜라스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평화를 위한 기도회를 가지던 교인들이 1989년 10월 시작한 비폭력 시위는 공산체제와 베를린 장벽의 붕괴, 그리고 독일을 통일시킨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주로 대학과 교회를 중심으로 18-19세기 고전음악의 전성기를 가졌던 이곳에는 1693년에 창설된 오페라단이 아직도 건재하고,  펠릭스 멘델스존이 지휘자로 활약한 1743년에 창단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또한 많은 음악인을 배출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교향악단 중의 하나인 이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고 감동한 15세의 리하르트 바그너는 작곡가로 변신했다.  훗날 바그너와 그의 장인 프란츠 리스트는 이곳에서 낭만주의 음악을 승화시켰다.  로베르트 슈만의 피아노 교사였던 프리드리히 비크의 딸 클라라도 이곳에서 태어나 9세때 이 오케스트라를 통해서 데뷔했고 훗날 슈만과 사랑에 빠져서 아버지의 강한 반대도 무릅쓰고 슈만과 결혼해서 음악계의 큰 별이 됐다. 

독일 중부에 흐르는 3 강을 끼고 있는 인구 59만의 소도시 라이프치히는 유럽의 동서와 남북이 교차하는 지역에 위치해서 신성 로마 제국 시대부터 무역도시로 형성됐다.  1015년부터 기록된 도시의 문헌에 의하면 점차 문화와 교육도시로 번성해서 단연 유럽의 경제와 출판과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그리고 법과 출판산업의 원리에 강한 1409년에 설립된 라이프치히 대학 덕분에 독일 연방최고행정법원과 독일어로 발간된 모든 책이 소장된 국립도서관이 수도가 아닌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2차 대전 후 구 동독의 지배하에서도 문화의 도심지였다가 통일 후에 빠르게 활기를 되찾았다.  현재는 신흥 도시로 포르쉐와 BMW 자동차 공장이 들어서 있고 ‘2019년 올해의 유럽 도시’로 선정됐다.

한나절을 보내도 더 머물고 싶은 라이프치히를 아쉽게 떠나는 나에게 1813년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서 세운 유럽에서 가장 큰 전투기념비가 멀리서 가로수 잎 사이로 손수건처럼 흔들거렸다.  바흐의 칸타타 29번, ‘We thank you, God, we thank you’ 가 강력한 음악도시 라이프치히는 이제 내 가슴에 영원히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