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가 누구인지 아세요?”  “몰라”  “실러는?”  “몰라”  “그럼 카프카는?”  “도무지 그들이 누구인데?”  “미국 교육 완전 부실하네”  지난달 유럽 여행중에 남편과 나눈 대화다.  미국에서 60년 이상 산 일본계 이민자인 엔지니어 남편은 문학에 취미가 없다.  오래전 학생시절에 의무적으로 읽었던 책들도 분명 건성으로 읽었을거다.  독일 문학을 전공한 나와 흥미 분야가 전혀 다르다.  그러니 우리 부부가 아무리 오랫동안 함께 살아도 불협화음을 이룰 수 밖에. 

어딜 가든지 내 삶에 막대한 영향을 준 작가들의 흔적을 찾는 나와 달리 남편은 맛있는 지역 음식과 포도주나 맥주를 찾는다.  내가 보고 느끼는 것들을 남편과 함께 공감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남편이 바에서 즐기는 동안 혼자 자유롭게 다니며 내 감성에 불을 지핀 작가들을 가까이서 만나는 기쁨을 즐긴다.  이번 유럽 여행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래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대성당이 있는 뢰머 광장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1832)의 생가를 방문했고 또한 네카어강 연변의 소도시 마르바흐에 있는 프리드리히 실러 (1759-1805)의 생가를 찾아갔었다.  그들이 먹고 자며 일상을 보낸 장소에서 그들이 읽었던 책이나 글을 썼던 책상을 목격했던 그땐 내 가슴에 불길이 솟았고 흥분했었다.  나에게 깊은 감명을 준 작가들을 작품속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환경에서 만났던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지나갔지만 이번여행에서 본 그들의 흔적은 다시 나에게 그때의 불꽃을 상기시켜줬다. 

장수하며 주옥같은 작품을 많이 쓴 고전주의 작가 괴테는 독일문학의 거장이다.  그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심장이 뛰었던 사춘기 시절부터 그가 60년에 걸려서 완성한 대작 ‘파우스트’ 까지 나는 그의 작품에 몰두해서 인간의 참모습을 질문했고 믿음의 근본에 회의를 가졌었다.  45세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실러 역시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다.  그가 살았던 스튜트가르트 중심가에 1839년에 그의 동상이 세워진 실러광장이 있다.  예전에 그곳에 살면서 즐겨 찾았고 동상 앞에서 그의 시를 읽기도 했는데 이번에 실러 동상 앞에서 “글로벌 마리화나 자유화”를 외치던 데모대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옛 동독의 중심가에 있는 호텔에 묵었다.  호텔 맞은편에 우아한 조각상을 가진 고전주의 건물들이 궁금해서 나섰다가 독일대성당과 프랑스대성당을 좌우로 거느리고 중앙에 자리잡은 웅장한 콘체르트 하우스 앞에 1871년에 세워진 실러 동상을 봤다.  넓고 한적한 아름다운 광장에 서서 그의 시에 감동한 베토벤이 곡을 보탠 ‘환희의 송가’를 오랫동안 들었다. 

괴테와 실러가 서로에게 충동과 격려가 되어 창작열을 불태웠던 바이마르는 음악도시 라이프치히에서 남서쪽으로 80 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두 작가는18-19세기 독일 정신문화의 절정기를 이루며 살았던 도시에 함께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작곡가 리스트와 철학자 니체도 인연이 깊은 바이마르는 언젠가 꼭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또 한사람의 작가를 만났다.  프란츠 카프카 (1883-1924).  부드러운 문학에 푹 빠진 소녀였던 나의 의식에 찬물을 끼얹어 성인으로 만든 작가다.  그가 살았던 집 앞에서 주춤거렸지만 워낙 중심가여서 그의 흔적은 많은 관광객들의 발자국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가 성장하며 본 프라하의 중심가를 돌면서 그의 작품에 깔린 암울한 배경을 찾았지만 오늘의 프라하는 밝은 기운으로 흥청거렸다.  폭이 크게 넓지 않고 소박한 블타바 강변 산책길을 걸어서 그의 기념관을 찾아가면서 괴테와 실러를 모르는 남편에게 카프카를 소개했다.  하지만 무리여서 곧 포기했다. 부조리한 인간의 존재를 추구한 카프카는 남편에게 외계인이었다. 

카프카의 기념관은 그의 작품세계로의 여정이었다.  전반적으로 어둑한 분위기가 기를 잡았고 전시된 흑백 사진들은 그가 자란 환경과 성장과정,  그리고 그의 작품 활동을 더듬게 했다.  더불어 그가 사랑했던 4명 여인들의 그림자 뒤로 그의 작품속 인물들이 죽 늘어선 검은 캐비넷들 간간이 반쯤 열린 도어에서 극적으로 넘나들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섰다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기념관을 나와 입구 옆의 벤치에 앉아 얌전히 잠들어 있는 남편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베르테르의 열정을 모르고 카프카의 불안을 모르는 남편의 여유는 올 여름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를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