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한국에 사는 언니와 조카네 가족이 왔었다. 그들은 고향 맛을 전해주려고 엿가락을 잔뜩 가져왔다. 애틀란타에 모였던 미국에 사는 가족들이 옛추억을 회상하며 나누었는데 내 몫을 집에 가져와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잊고 지내다가 얼마전에 우연히 발견해서 요즈음 조금씩 먹는다. 

녹아서 뭉쳐버린 엿 덩어리에 칼끝을 대고 조각을 내며 어릴 적을 회상하니 동네 골목을 다니던 엿장수의 무쇠 가위가 내던 쩔렁쩔렁 요란한 소리가 부엌을 채웠다. 우르르 몰려서 엿장수의 구루마를 둘러서서 침을 흘리던 시절이 생각났다. 엿장수가 엿가락을 길게 또는 짧게 진정 ‘엿장수 마음대로’ 가위질을 해서 주는 것을 신기해하며 엿을 탐내던 아이들의 얼굴은 온통 반짝이는 눈동자였다. 돈만 아니라 고물도 받아주던 엿장수에게 주려고 양은 냄비를 달라고 엄마에게 매달렸던 기억이 떠올랐고 웬지 그때 그 시절 늙수그레한 엿장수의 탁한 음성이 그리워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부엌 카운터 톱을 어지럽히니 남편이 “무엇이냐?” 물었다. 한국산 태피라 했더니 슬쩍 보기만 했다. 하긴 다양한 과즙 색소를 섞어 만든 태피를 새끼손가락 사이즈로 잘라서 하나씩 탐스럽게 포장한 미국산 태피에 비하면 모양은 별로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고향음식이라 흩어진 조각을 모두 그릇에 담았다. 현재 나에게 엿은 그것이 몰고 온 아름다운 추억이다. 엿조각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니 소식없이 지내는 지인들이 생각나서 그들과 전화로 근황을 나누기도 했고 더러 만나기도 했다.

내가 할머니가 되었듯이 모두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지인들에게도 변화는 있었다. 오랫동안 살았던 몽고메리를 떠나 낯선 곳으로 거주지를 옮긴 지인과는 긴 통화 후에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은 것을 감사했고 퇴직한 줄 알았는데 아파 드러누울 때까지 일하겠다며 70이 지나도 여전히 직장을 다니는 지인에게는 박수를 보냈다. 그녀는 직장에서 생활의 활력을 얻고 외로움을 잊고 산다. 갈수록 업무가 많지만 씩씩하게 잘 버틴다는 지인은 30년 전에 봤던 밝은 인상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지인의 이야기나 손주들 보느라 병든 지인들의 근황을 나눌 적에 우리는 세월의 흐름을 인식했다. 

앨라배마 의회에 진출하려다 예비선거에서 탈락한 지인은 격려해 줬더니 나에게 성경구절, 탈출기14:14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주실 터이니, 너희는 잠자코 있기만 하여라) 로 답하며 용기를 잃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2년만에 본 지인은 예전과 달리 활기차고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서 물었더니 바람을 피운 남편과 이혼하고 마음의 평안을 찾아 행복하다고 했다. 남편은 잃었지만 돈을 많이 얻었으니 세상 나들이 맘껏 한다며 깔깔 웃었다.

끈끈하게 이빨에 붙었다가 슬그머니 녹아서 사라진 향긋한 엿 맛이 입안에 머물고 있다. 밭에 활짝 핀 도라지 꽃을 보며 엿으로 떠올린 옛추억 덕분에 좋은 지인들과 다시 연결된 것에 감사하고 세상의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사람의 향기임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