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케이트 스페이드의 자살 소식에 약간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그야말로 잘 나가는 명품 메이커가 아닌가. 그녀의 이름을 가진 산뜻하고 화사한 상품에서 전혀 느끼지 못한 한 여자의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와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이 됐다. 무엇이 그녀를 목매게 했을까? 이유가 궁금하던 차에 이번에는 정말 ‘아닌 밤중에 홍두깨’ 속담처럼 또 한 사람의 자살 뉴스가 나에게 충격을 줬다. 앤서니 보데인. 나는 그의 팬이다. 그가 보여준 세상의 맛과 멋에 푹 빠져있는데 그가 자살하다니 이게 웬 벼락인가.

오래전 프랑스 요리를 맛깔스럽게 만들며 구수한 입담으로 맛있는 음식을 즐기게 해준 TV 프로그램, ‘줄리아 차일드의 부엌’을 즐겨 봤다. 키가 훌쩍 큰 줄리아 차일드가 요리하는 과정에서 음식의 향을 솔솔 느꼈고 그녀가 스푼으로 음식을 맛보면 나도 맛을 보는듯 했다. 그녀가 소개하던 음식에 흠뻑 반해서 프랑스를 방문했을 적에 양파 수프를 먹었고 바로 모든 프랑스 음식을 사랑하게 됐다. 그후 프랑스를 들릴 적마다 양파 수프를 즐겼지만 미국에 있는 어떤 식당에서도 프랑스에서 먹은 맛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그녀의 프로그램이 종결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Food Network에서 그녀처럼 키가 크고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앤서니 보데인을 만나서 그가 낯선 지역에서 보여주는 음식과 풍물을 즐겼다. 그가 CNN 채널의 ‘Parts Unknown’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적에는 본격적으로 세계 지도를 펴 놓고 그가 찾아가는 곳을 흥미롭게 따랐다. 세상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자연풍경이나 사회환경을 소개하며 거리낌없이 지역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특이한 재료에 대한 거부감보다 호기심을 보였고 지역인들과 허심탄회하게 술잔을 들고 별미를 나누며 재미난 스토리를 풀었다. 그가 낯선 이국인들과 인간애를 나누는 모습에는 따스함이 있었다.

언젠가 그는 한국을 방문했다. 포장마차에 앉아서 넉살스럽게 소주잔을 들이키는 피곤한 모습은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그는 관광지보다 서민들의 중심을 파고들어서 한국의 사회상을 살폈다. 그가 보여준 한국의 단면은 나에게 친근하면서도 낯선 상황이 많았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어시장과 야시장에서 생동감을 느꼈고 또한 친구끼리 식당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는 모습은 흐릿한 추억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직장인들의 퇴근 후 회식의 음주 풍습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노래방 문화는 나에게 좀 낯설었다. 더구나 전자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것이 사회 놀이문화로 자리잡은 사실에 문화적 충격을 받았었다. 나와 모국 사이에는 태평양이 있었다. 

그렇게 한국 소개를 보고 가진 진솔한 느낌으로 나는 그가 세상 곳곳을 종횡무진 다니며 안내하는 토속 음식과 재미난 사람살이를 보며 낯선 사람들과 낯선 문화를 스스럼없이 즐겼다. 그가 방문한 세계80 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그는 스타 셰프보다 훨씬 더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문화 소개와 여행가이드 였으며 나아가 민간 외교관이었다. 피부색이나 언어가 무엇이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사람들의 지혜와 관습에서 모두가 공통으로 가진 인간성을 찾아내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그는 전문 스토리 텔러였다. 무엇보다 그의 프로그램은 세상사람들이 하나임을 일깨워준 업적을 남겼다. 

지구가 좁다고 자유롭게 누비고 다니며 천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고 맛있는 토속 요리를 맛보며 세상의 부와 영예를 가진 그의 삶은 늙고 병든 사람들이나 생활의 무거운 짐을 지고 생존 현장에 묶여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멋진 인생이었다. 당당하던 그의 삶에 드리웠던 어두운 그림자는 무엇이었일까?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진 군중 속의 고독을 유명인인 케이트 스페이드나 앤서니 보데인은 더욱 민감하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온갖 사람들과 소탈하게 섞여서 지역의 화장기 없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던 그의 프로그램은 끊어진 필름이 됐다. 

한 인간을 죽음으로 밀어부친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질환은 묵비권을 행사하는 괴한 같다. 그런 무자비한 괴한에게 앤서니 보데인을 잃은 것이 안타깝다. 그의 죽음 소식은 마치 한편의 비극을 본 것 같다. 더구나 자살은 목숨을 끊는 사람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의 재를 뿌린다. 마치 미세먼지처럼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앞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갖으면서 자살을 예방하고 정신질환을 치유하도록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