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다가 후다닥 일어났다. 조금 떨어진 캐비넷위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가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집안에서 감시를 받다니. 사무실에서 심심풀이로 나를 엿보는 남편은 키득대고 웃을것이라 카메라 앞에 서서 씩 웃고 렌즈를 옆으로 돌렸다. 내가 커피를 많이 마신다며 불평한 남편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여행중 집안에 설치된 방범 설비의 경보가 여러번 울린 사고가 났었다. 가구위를 뛰어다닌 고양이 소행이 경찰을 번거롭게 했고 매번 방문한 경찰은 친절하게 외부에는 이상이 없다는 메모를 남겼다. 그후 집안 몇 곳에 장착된 동작 탐지기도 몸무게 40파운드 이상을 적발하도록 변경시켰지만 경보가 또 울렸다. 특히 집안밖에 설치된 스피커가 동시에 울리면 귀청이 터질 듯이 소리가 크서 이웃이 모두 놀란다.

그러자 남편은 감시 카메라를 구입했다. 우리가 집을 비울적에 고양이의 행동을 보려는 의도였다. 거실에 설치한 카메라는 흥미난 장면을 보여줬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소파에 팔자로 늘어져서 잠자는 고양이를 보며 웃었다. 재미가 있어서 주인없어도 집안을 어슬렁이며 변함없는 일상을 보내는 고양이를 수시로 엿봤다. 하지만 고양이가 아니라 고의적으로 나를 관찰 대상으로 삼은 남편이 괘씸해서 그날 남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는 요즈음 집을 나서기 전에 카메라를 숨기듯 자리를 바꿔놓는다. 그러나 상상력이 부족한 남편이 숨긴 카메라를 찾고 렌즈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불과 1분도 안걸린다.

수 십년을 함께 사는 의뭉스런 남편의 마음을 읽자니 손가락에 침을 묻혀 문창호지에 조그만 구멍을 내었던 기억이 난다. 어릴적 어른들이 무엇인가 의논하거나 손님이 찾아오면 아이들을 내보내고 방문을 닫았다.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던 어른들의 대화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긴장이 감돌던 방안의 정경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어른들 세계의 비밀이 궁금해서 나도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구멍으로 방안을 들여다 보는 일은 골목에서 아이들과 조약돌로 공기놀이 하는 것과는 달랐다. 금지된 장난이 더 재미있었다.  

엿보던 재미는 뷰마스터로 이어졌다. 가만히 생각해도 뷰마스터를 처음 본적이 언제였는지 분명하지 않다. 아마 초등학교 시절였던것 같다. 뷰마스터는 프리즘보다 더 신기했던 장난감이었다. 투박한 플라스틱 기기에 손톱만한 필름이 둥글게 박혀있던 얇은 마분지 같은 카드를 끼워넣은 후 눈에 대고 옆에 붙은 버튼을 누르면 필름이 돌아가면서 영상이 보인다. 신비로운 먼 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며 감탄했고 실제로 찾아가 보는 꿈을 꿨다. 문방구에서 동화같은 그림과 관광지의 소개까지 닥치는 대로 뷰마스터 카드를 구해서 친구들과 돌려가며 즐겼다. 그러나 몰래 보는 것과 공개적으로 보는 재미는 시대따라 변했다.

작년 여름 근 10년 가졌던 네이버 블로그가 해킹당한 후 블로그의 주인인 나는 콘트롤을 잃었다. 얼굴없는 누군가에게 주권을 뺏겼다. 그처럼 어쩌다보니 보물을 숨길 곳이 없어지면서 보물찾기 놀이가 시들해졌다. 더구나 개인과 기업에 정부까지 나서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니 남편이 나의 일상을 엿본 그까짓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수 있다. 아무리 소시얼 미디어가 사람들의 생활을 장악한 시대에 살아도 나는 자유롭게 살길 원하는데 바로 내 집안에서 나의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는 사실에 화를 낸다. 하지만 오늘은 남편의 장단에 맞추어서 춤을 추느라 나의 활동 영역으로 맞춰진 감시 카메라를 그대로 뒀다. 짓궂은 남편에게 보복하는 방안을 궁리하니 웃음거리가 생긴다.

카메라를 의식하며 잠시 ‘진짜 나’와 ‘가짜 나’를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하며, 무엇을 가졌으며, 남의 눈에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 모두 진정한 나 자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외면적인 것을 나에게서 거둬내면 그 뒤에 또 한사람의 내가 숨쉬고 있다. 하지만 진실로 내가 어떤 사람이며, 어디로 가는지 또는 어떻게 그곳에 가야하는지를 찾는 것은 죽을때까지 내가 풀어가는 의문이다. 그 과정에서 나의 행동이 그저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하는지로 신중하게 고민하지만 지금은 남편이 엿보는 감시 카메라 앞에서 광대노릇을 멋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