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캐년을 떠나 89번 국도를 따라 북으로 갔다. 유타주에 있는 브라이스캐년을 가는 길은 건조하고 한적했다. 가는 길에 신생도시 페이지에 잠시 들렀다. 레이크 파웰로 인해서 한창 부흥하는 도시는 젊은 에너지로 후끈했다. 황야의 무법자는 사라지고 번영하는 현대판 서부 개척지는 깔끔했다. 해가 지니 세상은 어둠에 묻혔다. 갑자기 어린 사슴이 도로위로 뛰어 올랐고 이어서 어미 사슴이 뒤따랐다. 운전하던 큰딸만 아니라 온가족이 놀라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는 야생지를 지나고 있었다.

그랜드캐년을 떠난 지 6시간 후 브라이스캐년 근처 숙소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 방문자 센터에서 캐년의 형성을 설명하는 비디오를 본 후 선라이즈 포인트로 갔다. 갑자기 시야에 분홍과 오랜지빛이 섞인 사암 기둥, 후두 (Hoodoos)가 쭉 늘어선 신비로운 자연의 무대가 열렸다. 확 터인 공간에 줄지어선 후두의 얼굴은 아침 햇살에 찬란하게 빛났다. 빅토리아 여왕의 가든을 찾아가는 트레일을 따라 내려가며 아기자기한 형상에 이름을 붙이니 재미있었다. 런던의 빅토리아 여왕 조각상을 그대로 닮은 돌기둥 형상은 놀라웠다. 자연의 손길이 창조한 신비다. 어딘가에 우리를 닮은 형상이 있을것 같아 나바호 트레일로 들어서며 두리번 거렸다. 신성한 소나무와 숲길을 지나 협곡의 좁은 통로를 지났다. 그리고 지그재그 올라가는 트레일에 어지러워 무조건 앞만 보고 발을 옮겼다. 보호장치 없이 끊임없이 어어진 가파른 비탈길은 도전이었다.

로지 카페에서 점심을 먹은 후 캐년의 림을 따라 이어진 17 마일 도로를 운전해서 레인보우 포인트를 찾았다. 해발 9115 피트에서 내려다본 절경은 어지러운 사람살이와 동떨어진 평화를 품고 있었다. 그곳에서 캐년을 지키던 큰까마귀의 털은 유난히 검었다. 중간중간 멈추어서 특출한 돌기둥의 형상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평원을 차지한 대가족 사슴떼를 만났다. 귀여운 야생동물들이 캐년을 차지했다. 안내소에 다시 들러서 걸으면서 본 표지판의 금빛 서클을 찍은 사진을 증명으로 보여주고 기념 스티커를 받았다. 우리는 영원한 어른아이들이다.

다음날 아침 모험심이 강한 큰사위와 작은딸이 ATV바이크 타러 떠난 후 큰딸과 나는 들판을 걸었다. 온통 노란색 들꽃들로 화사한 광야를 누비며 우리는 행복해서 Born Free로 춤을 췄다. 서로 털어놓은 마음속 이야기는 푸른 하늘에 흩어졌고, 우리는 단단하게 결속을 다졌다. 하지만 잠시 후 냉정한 현실로 돌아왔다. 600파운드의 ATV바이크가 전복되어 튕겨 흙길에 던져진 큰사위와 작은딸이 다쳤다. 40마일 속도로 달리다 경사진 들판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에 헬멧이 머리는 보호했지만 전신은 노출됐다. 다친 사람만 아니라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다. 온통 흙먼지를 뒤집어쓴 두 사람은 어거정어거정 걸어와 우리를 안심시켰다.

큰 부상이 아니라 천만다행이라 여기며 다음 목적지인 자이언캐년으로 갔다. 브라이스캐년이 여성다운 아기자기함을 가졌다면 이곳은 남성적인 근육형 암석들로 가득찼다. 9번 도로로 기암절벽과 웅대한 암벽 사이를 구비구비 지나고 긴 터널을 나서며 본 주름진 돌산은 참으로 신비로웠다. 그러나 큰사위가 가슴의 통증으로 불편해서 바로 스프링데일에 있는 숙소로 갔다. 의료품과 진통제를 사갖고 온 딸들이 상처를 치료했고 사위 뜻대로 하룻밤 쉬고나면 상황이 호전되길 빌었다. 멋진 캐년을 눈앞에 두고 다친 가족들에 대한 걱정으로 어수선했다.

다음날 아침, 소도시 세인트조지로 가서 병원을 찾았다. 응급실에서 큰사위와 작은딸이 검사를 받는 동안 남편은 TV로 앨라배마대학의 풋볼게임을 보고 나는 대기실 벽에 걸린 자이언캐년 사진을 보며 발이 아니라 가슴으로 사진속을 걸었다. 덩치 큰 사위가 바닥에 튕겼을 적에 심하게 부딪혀 갈비뼈를 다쳤다. 강한 진통제를 받고 절대 휴식을 취하라는 진단을 받았고 작은딸은 그만한 것이 다행이라는 진단을 받아 무조건 감사했다.

그랜드캐년은 곳곳의 전망대에서 내려봤고, 브라이스캐년은 위에서 보고 트레일을 걸으면서 가까이서 봤다. 하지만 자이언캐년은 캐년을 관통하는 9번도로를 지나면서 슬쩍 봤다. 물과 어울린 오묘한 암석의 비경을 보려던 계획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서부의 소문난 3대 캐년과 자연환경 모두가 엄청난 규모와 절경으로 우리를 매료했지만 ATV바이크 사고가 났던 이번 여행은 우리 가족에겐 잊지못할 추억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