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메리 미술관에서 열린 두 특별전의 리셉션에 갔다가 과거와 현재가 재미있게 얽혔음을 봤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영혼이 오늘 미국 남부 앨라배마의 소도시를 방문한다면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셰익스피어 사후 그의 친구와 배우 동료들이 그가 남긴 희비극 모든 작품들을 모아 인쇄, 1623년에 발간한 책을 ‘퍼스트 폴리오 (First Folio)’라 부른다. 그 책 덕분에 후세 사람들이 셰익스피어를 알게됐으니 퍼스트 폴리오가 가진 영향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당시 총 750권쯤 인쇄한 것으로 알려진 퍼스트 폴리오는 현재 235권이 남아 있고 그중 82권을 워싱턴DC에 있는 ‘폴저 셰익스피어 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다. 폴저 셰익스피어 기념관은 셰익스피어의 서거 4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전국 50주에 한권씩 빌려줘서 전시하도록 주선했다. 풍성한 계절 가을에 전국에 셰익스피어 열풍을 일으켰다. 이곳에 전시된 퍼스트 폴리오를 찬찬히 살펴봤다. 완벽하게 보전되어 왔음이 놀랍다. 펼쳐진 페이지에 햄릿의 명언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또렷하게 인쇄된 글씨체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시대를 초월하고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구절의 막강한 파워를 느끼며 동시에 400년 전에 발전한 영국의 인쇄술에 감탄했다.

유리상자 안에 전시된 퍼스트 폴리오는 사면 벽에 그 장서가 소개한 셰익스피어 작품을 공연한 포스트로 둘러싸여 있다. 유명 연기인들이 작가가 묘사한 불변하는 사람살이를 열연하며 관객들을 웃기고 울린 흔적들이다. 공연을 볼적마다 감동을 준 낯익은 작품들을 따르니 마치 나도 무대위에 선 배우같았다. 더욱 미술관 가까이 있는 앨라배마 주립극장, ‘앨라배마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서 ‘햄릿’을 공연했을 적에 배우들이 입었던 무대의상들을 함께 전시해서 사랑과 증오에 휘말렸던 비극 작품을 강조했다. 특별히 주립극장의 감독인 영국인 제프리 셔먼이 작품소개와 햄릿의 유명한 구절을 읽자 좁은 전시공간에 빼곡히 들어선 손님들은 셰익스피어의 마력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퍼스트 폴리오와 더불어 18세기 후반, 런던의 ‘보이델 셰익스피어 갤러리’에서 화가들이 그린 작품 공연의 여러 장면을 판화로 만들어서 보전한 소품들이 전시됐다. 미세한 표현을 자세히 보려고 액자 가까이 다가섰다. 풍자적으로 묘사한 성격표현이 절묘했다. 이렇게 셰익스피어 희비극 내용들이 인간의 심성을 예리하게 뚫어서 컬러풀한 개성들로 세월의 흐름을 잊는 고전이라면 바로 옆에 전시된 콜롬비아출신 미국 예술가, Frederico Uribe의 ‘Transformart’는 신나는 한바탕 무대를 펼친다. 현대판 화려한 감정표현이다.

마이애미에 있는 창고의 작업실에서 창조한 작품들을 운송해 와서 일주일 걸려서 미술관에 설치했다는 그는 연필이나 책, 고무줄, 운동화, 전깃줄, 타이어, 총알, 테니스 공, 자전거 등 평범하고 흔한 자료를 아름다운 형상으로 변신시켰다. 기발난 아이디어에 마음이 사로잡혀서 초상화와 꽃, 다양한 동물들과 밀림의 풍경이 안내하는 순수한 동화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생동감을 주는 기린의 긴 얼룩무늬 목아지가 온통 연필로 만들어졌음에 탄복하다가 전시장 중앙에 우뚝 선 거대한 나무에서 들리는 새소리를 따랐다. 앙징스런 팬더곰을 따라 나무에 올라 가지에 치렁치렁 매달린 초록의 양말들과 신발들 사이로 숨바꼭질 하다가 맞은편 밀림에서 길을 잃었다. 여기저기 흰 벽에 스케치된 그림은 전시품들과 어울려 상상의 날개를 달아줬다.

더불어 그가 직접 디자인한 재미난 셔츠와 양복을 입고 움직이는 전시품으로 그 자신을 작품들속에 섞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 그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미술관 오디토리움에 모여 앉은 사람들에게 그는 그의 작품을 스크린으로 보여줬다. 각 작품을 구상하고 표현하는데 그의 어릴적 성장기와 해학적인 신념이 섞였음을 설명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는 그는 주변 환경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사람들에게 미소를 선사했다. 또한 아이러니컬하게 책을 위해 나무를 죽였듯, 그는 책을 죽여서 멋진 책나무를 창조했다.

엉뚱하듯 진지한 그의 작품을 보다가 셰익스피어의 퍼스트 폴리오가 전시된 방을 다시 찾았다. 400년의 세월을 잊은 천재의 영혼이 현대판 유머스런 창조품을 흘겨보면서 그가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에서 소개한 팔스타프를 떠올리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는 착각이 들었다. 예술가들은 우리의 삶도 각자 창조하는 예술이며 한판 연극인 것을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