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 세계일주 여행을 떠난 지인 부부가 부러워 잠을 설친다. 나이 들어 삐그덕하는 몸이 완전히 고장 나기 전에 실천한다며 약을 가방에 한보따리씩 넣고 떠난 그들은 2017년을 멋지게 시작한다. 125일 동안 력셔리한 크루즈 여행으로 지구를 도는 그들이 지나갈 항로가 표시된 지도가 눈에 어른거리고 그들이 멈출 세상 곳곳의 낯선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일정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한다. 보고 즐기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수시로 이메일로 알려주겠다던 그들의 소식을 기다린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연말에 연락없어 궁금하던 일본친구가 메일을 보냈다. 지구 남반부를 도는 크루즈 여행중인데 위성 접속이 좋지 않아 연락을 못했다며 그의 홈페이지를 알려줬다. 그가 4개월 배를 타고 다니는 동안 보는 낯선 풍물을 올린다는 그의 홈페이지에서 아프리카 남동쪽 인도양에 있는 섬,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해서 바오밥 나무 아래서 찍은 셀피에 “진정한 행복을 재는 줄자는 무엇일까?” 라 첨부된 질문을 읽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는 집에 두고 혼자 세상 구경 나선 그가 가진 질문이 흥미롭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아무튼 그는 대단히 용감한 남자다.

서울 사는 여고시절 친구가 조지아 소도시에 사는 딸네를 찾아왔다는 소식에 텍사스에 사는 친구와 함께 “애틀란타에서 만나자” 했다. 오페라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우나 하고 호텔에서 밤새워 놀기로 했다. 간식으로 오징어와 땅콩에 라면까지 들먹이며 흥분했는데 우리가 만나기로 한 주말이 하필이면 기온이 뚝 떨어지고 눈발이 내린다는 일기예보였다. 빙판길에 운전하는 것이 두려워도 ‘친구찾아 애틀란타’ 했는데 주의 경보가 나와서 계획이 무산됐다. 세상구경하는 지인들과 견주어 나의 나들이 운은 불쌍했다.

두문불출 하라는 자연의 뜻 덕분에 집에서 색다른 여행을 했다. 영국에서 코미디언, 배우, 작가, 방송인 등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는 스티븐 프라이가 미국 50주를 여행하며 촬영한 TV쇼, ‘Stephen Fry in America’로 미국여행을 했다. 그는 휴 로리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영국배우다. 영국에서 가져온 뭉툭한 런던 택시를 운전해서 가장 북동쪽에 있는 메인 주에서부터 전국 50주를 찾아가서 미국의 진목면을 본 그의 여정은 6부로 2008년에 BBC로 방영됐다.

그가 동부지역을 거치고 남부로 내려와 조지아와 플로리다를 거쳐 앨라배마를 찾았을 적에 나의 호기심은 극에 달했다. 과연 그는 이곳의 어떤 특색을 찾아볼 지 궁금했다. 놀랍게도 그는 ‘앨라배마 사면과 가석방 위원회 (Pardons and Paroles Board)’ 현장을 찾아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의 증언을 듣고 어번대학의 경기장을 찾아 앨라배마 두 대학의 연례행사인 ‘아이언 볼 게임’을 목격했다. 포화상태인 교도소로 고민하는 이곳 현실에 앨라배미안들의 심장을 사로잡는 앨라배마 대학과 어번대학의 풋볼게임에서 미국에서나 가능한 놀라운 생활상을 봤다. 그는 정확히 앨라배마를 봤지만 어쩐지 미흡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 좋은 인상의 털털한 그는 각 주를 구불구불 찾아다니며 보는 소감을 구수하게 설명했다. 그의 뛰어난 유머감각에 잡힌 미국의 자연환경과 다문화 사회는 미국의 저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지역인들은 재미나게 그에게 지역의 역사와 현실을 설명하고 그가 직접 색다른 풍습을 체험하도록 도왔다. 그는 미국의 빛과 그림자, 진수를 골고루 맛보며 진정한 미국을 발견했다.

50번째 주인 하와이를 마지막으로 본 후 그는 미국을 가늠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는 미국을 발견했다며 다양하고 아름다우며 에너지와 생명력이 강렬한 미국을 봤다고 증언했다. 덕분에 나도 미국 전역의 자연을 봤고 멋진 미국인들을 많이 만났다. 나의 버킷리스트에 미국 50주를 찾아보기가 있다. 내가 찾아가 봤던 곳들의 특색이 그로 인해서 새롭게 부각되었고 아직 들리지 못한 9 주는 올해 꼭 찾아보고 싶다.

죽기 전에 세상을 보려는 지인들의 여정에 순풍이 불고 그들이 맘껏 즐기고 행복하다가 건강하게 돌아오길 빈다. 지금은 지인들과 스티븐 프라이 덕분에 하는 간접 여행으로 만족한다. 진정한 행복을 재는 줄자를 생각하며 뜻이 있으니 언젠가 내 앞에 길이 열릴 때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