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살았던 집이 팔린 날, 그녀는 펑펑 울었다. 아쉬움 보다는 더 큰 외로움과 서러움에 북받친 감정이 마침내 폭발했다. 그녀를 멀찍이서 지켜보며 조마조마 했던 내 마음도 내려앉았다. 몇 년째 팔리지 않던 집이 팔렸으니 기뻐해야 하는데 그녀와 친구들은 기쁨보다 슬픔에 빠졌다. 피할 수 없는 이별이 다가옴이다. 

처음 집을 판다고 내 놓았을 적에 그녀는 찾아오는 손님을 관찰했다. 구매자의 인상과 언행을 보고 거부할 핑계를 만들었다. 집을 사랑하고 잘 돌보지 못할 사람이라 싶으면 “이 집은 당신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집” 이라며 돌려 보냈다. 그런 일이 계속되자 우리는 주인이 까다롭게 굴면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며 그녀를 달랬다. 그리고 남편과 수 십년을 알콩달콩 산 추억이 많은 집을 그녀가 진실로 팔고 싶지 않음을 이해했다.

그녀는 허술하게 집을 넘겨주고 싶지 않다며 조사관을 고용해서 넓은 집안밖을 체크하도록 했다. 전기나 배관 등 구조물의 안전상태까지 전문가들이 며칠 집안을 온통 뒤집고 다니며 자잘한 것들까지 모두 12 페이지가 넘는 항목들을 적은 보고서를 그녀에게 줬다. 그녀는 순서대로 하나씩 보수하고 교체했다. 그리고 방마다 산뜻하게 페인트칠을 다시 하고 카펫을 바꿨다. 마치 자신이 평생을 살 것처럼 정성을 들여서 집을 돌봤다.

40년 전, 처음 집을 보러 와서 그녀의 남편은 내부를 보지도 않고 바로 “이집 살 거야”결정했다. 나즈막한 언덕 위에 캘리포니아 스타일로 지어진 L형 집의 넓은 거실의 벽은 온통 유리다. 집안에 햇빛이 잘들고 오픈 디자인의 건물 뒤쪽으로 넓은 발코니가 이어져 있다. 숲이 울창한 뒤뜰 멀리로 몽고메리의 다운타운이 가물거리고 저녁마다 아름다운 석양이 집안을 채우는 멋진 집이다.

그녀 남편의 아내 사랑은 특별했다. 그림을 그리는 아내를 위해서 옆에 독립된 팔각정 화실을 아내의 생일선물로 건축해 줬고 차고 위를 개조해서 아내가 좋아하는 일본식 목욕탕을 가진 동양식 별채를 만들어 줬다. 그녀는 그곳에서 퀼트를 하고 책을 읽었다. 어번대학 생물학 교수였던 그녀의 남편이 퇴직한 후로 그들은 해마다 서너 번 세계 곳곳을 여행 다녔다. 사진촬영이 취미인 남편 덕분에 세상 구경을 골고루 잘했다는 그녀의 목소리가 테이블 한쪽에 있는 남편의 사진을 보며 흐릿하게 흩어졌다.

그녀의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사전계획에 따라 고향인 일본 홋카이도에 작은 콘도를 구입해서 귀국 준비를 했다. 일부 이삿짐을 보낸 후 이곳의 집을 판매로 내놓고 일년의 반은 일본에서 나머지 반은 이곳에서 지냈다. 그동안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을 여러가지 핑계로 툇짜를 놓고 팔리거나 말거나 하며 8년을 견뎌왔다. 그러나 작년 가을 일본에서 돌아온 후 장거리 여행에 이제는 쉽게 지친다며 곧 85세가 되니 몸이 예전처럼 두 나라를 오가며 사는 생활이 힘이 든다고 실토했다.

이번에는 진짜 팔려고 마음 먹고 집안밖을 다시 완벽하게 체크한 후에 가격을 팍 내렸다.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관심을 보였지만 그녀는 여전히 집을 넘겨주길 주춤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젊은 부부가 찾아왔다. 임신한 여자는 집안에 들어서자 마자 “이집 살 거야”단번에 결정했다. 40년 전 그녀의 남편이 한 말과 똑같은 말을 한 여자에게 그녀는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집을 내주었다.

‘집은 임자가 있다’더니 이렇게 적임자가 나타나며 그녀의 앨라배마 생활을 끝내줬다. 그녀는 이민자의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일본인이 된다. 가방 2개에 옷가지만 챙기고 일본에 보내지 않았던 다른 살림살이는 젊은 부부에게 몽땅 넘겨주고 그녀는 집을 나왔다. 아직 홋카이도는 추우니 일단 도쿄에 있는 여동생 집에서 몇 달 머물다가 날씨가 풀리면 자신의 집으로 갈 계획이라며 꼭 찾아오라는 그녀의 당부에 나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그녀 옆에서 나도 눈가를 닦으며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어느 시구절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