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비, 비, 아 지겨~~~~~~~~~~~~
머나 먼 타주로 이사를 간 후 대학생이 되어 첫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겨울 방학 동안 뉴욕 방문 중인 저희 집 공주님은 어찌나 바쁘신지
오신 지가 일주일이 넘어서야 겨우 저녁 대접해 드렸습니다.
그 아이만 바빴던 건 아니고
남편도 요즘 많이 바쁘긴 했어요.
여튼 시간은 제일 많고
체력은 제일 저질인 이쁜 아짐이
바쁜 두 냥반과 겨우 시간 만들어서
집 코 앞에 있는 식당가서 이른 저녁을 먹고 왔습니다.
저한테야 뭐 항상
보기만 해도 아까운 아이라
저는 꼭 그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옆에 앉혀 놓고 있으니
그것 만으로도 마음이 꽉 찼어요.
이 이쁜 것이
여기 이렇게 지금 내 옆에 앉아 있네.
수다의 황제인 남편이 대화를 이끌어 가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현경양이 남편과 얘기를 재밌게 잘해서
저는 놀라움 두 배 뿌듯함 두 배였고요.
이제는 대학생이라고 남편이 현경이 대하는 말투가
어른이 아이랑 대화하듯 하지 않고
그냥 뭐 자기 친구들이랑 얘기하듯 주책 바가지 식으로 말하는데
현경이가 그런 식의 대화가 더 편한지 말 잘 하더라고요.
남편도 저녁 후에 만족도가 아주 높았어요.
마음을 활짝 열고 얘기해서
남편 역시 놀라움 두 배 그래서 즐거움 두 배 였다고.
기숙사 생활 얘기 하면서
못되 쳐먹은 룸메이트도
우리 부부한테는 얘기 안 할 줄 알았더니 (저는 아이 엄마한테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음)
남편한테 하면서
복수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치가 없다, 다음 학기에는 같이 방을 쓰지 않아도 되니 그걸로 됐다,
이렇게 말하고
남편이
아주 옳은 생각이라고 맞장구 쳐주고.
대학 생활에서 첫 번째 학기는 언제나 최악이라고
두 번째 학기는 더 나을 거라고 격려해 주고.
제가 끼어 들어서
뭐 아침으로 맥주에 시리얼 말아 먹고 그러는거는 두번째 학기부터 하는 건가?
했더니
아뇨. 가끔 시리얼 파트는 생략하기도 해요.
현경 양이 깔깔깔.
나는 한 평생 날나리의 아이콘으로 살아 왔지만
이게 또 조카가 되다 보니
조카는 안 그랬으면 하고
남편 역시 현경양은 남자애들이 쳐다 보는 것도 싫다고 하는데
그래도 우리는 저녁 먹으면서 저런 얘기를 하고 웃었어요.
첫 학기 학점이 어땠는지 물로 궁금은 했지마 저는 물어 보지 않고 있었는데
얘기를 하다 보니
자기가 말하더군요.
남편이 첫 학기 학점이 그 정도면 아주 괜찮은 거라고 또 하이 파이브를 하고
나는 나름대로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와 거리감을 좁혀 본다고
틴에이져들 읽는다는
트와일라잇에 헝거 게임에 언와인드 시리즈 다 읽으면서도
그런 얘기 이 아이랑 별로 하지도 않았었는데
그냥 주책맞게 아무 얘기나 싸지르는 남편의 대학 생활 이야기에
아이는 더 즐거워 하고 마음 편해하고
아 뭔가 억울해요...
나는 아이를 이모로써 대하고
남편은 아이와 눈높이 대화를 한다는 차이인 것 뿐인지.
음악 얘기하는데
또 둘이 취향이 너무나 잘 맞는 거예요.
전 이 아이가 재즈를 즐겨 듣는 다는 거, 알지도 못했어요.
전 알지도 못하는 재즈 뮤지션들 얘기 하면서 아주 또 흥이 올라서리.
그런데
얘 일곱살 때 쯤 우리 집에서 일주일 데리고 있으면서
저녁으로 돈까스 차려 주고 마일즈 데이비스 씨디 틀어주긴 했었어요.
모 나도 쪼끔은 아는구나.
음악 얘기에 끼어 들고 싶어서
이모가 노래를 조금만 잘했으면 참 좋았을텐데
이모가 노래를 너무 못해 가지고..
어제 이모부가 진짜 뷰티풀한 크리스마스 송을 기타로 쳐 줬는데 이모가 노래로 망쳤어.
무슨 노래냐길래
The Christmas Song
이라니까
오 아이 러브 댓 송!
아니 너가 냇킹 콜 노래꺼정 알아???
클래식이 괜히 클래식은 아니지만..
이모부가 기타로 그 노래 치는거 진짜 좋다. 너가 꼭 들어 봐야 하는데...
그리고
아주 옛날 일인데 너 여덟 살 때쯤인가...우리 노래방 갔을 때
이모가 부른 노래 너가 따라 불러서 이모가 깜짝 놀랐던 거 있는데.
이모부가 이모 노래 부르고 싶을 때 그거 쳐준다. 어제도 불렀어.
한글 읽을 줄 아는 거야 알고는 있었지만 그 노래를 알고 있더라고요.
제가 마이크 잡고 부르기 시작하니까
옆에 있는 마이크 집어 들고 자기도 부르는데 노래도 알고 부르는 거더라고요.
화면에 가사 읽어 가면서.
한국에 사촌 언니가 씨디를 셋째 성한테 선물했더랬는데
셋째 성 집에 가서 그걸 들어 보고 아는 거였는지.
암튼지 저는 깜짝 놀랐어요.
어찌나 잘 따라 부르던지.
노래는
박혜경의 '주문을 걸어'
아이가 무슨 소린가...하다가 제가 노래 조금 불러 주니까
아 그거!!
비가 많이 오던 날
저희 동네에서의 저녁은 좋은 분위기로 잘 마무리 했고
어제는 셋째 성과 함께 드디어 갈비를!!!
너무나 바쁘셔서 이모들을 30분씩이나 기다리게 하는 바람에
저희는그 동안 메이시스 가서..
셋째 성이 옷 하나 리턴 한다고.
그래서 저는 세상에서 제일 하기 싫은 일 중 하나인
줄 서기.
줄 서는 이유가 뭐가 됐던지 간에요.
셋째 성이 저를 줄에다 박다 놓고 다른 칫수 옷 찾으러 가버려서
언제나 그렇듯이 아수라장 같은 메이시스 안에서
너무나 명백히 자기 앞에 서 있던 내 앞으로 끊임 없이 끼어 들려던
나쁜 성품의 중국 여자와
말싸움 없이 내 차례는 뺏기지 않기 하면서
(요즘 이런 상황에서 말싸움 할 기운이 없어요.
그래서 싸우지는 않고
그래도 내 밥그릇은 챙겨야 하니
끼어 들려고 할 때 마다 그냥 다리 쭉 뻗어서 막기)
저는 30분 동안 줄 서 있는 동안...
그냥 영혼이 탈탈탈 다 털린 기분이었어요.
마침내
갈비와 냉면을 먹고.
셋째 성이 쉬크하게 계산하고 화장실 간 동안
공주님께 나머지 저녁 스케줄 물어 보니
30분 정도 시간 있대서
모닝 글로리 들러서 현경 양 필통 하나 사 주고
바쁘신 공주님은 친구분들 만나시라 보내 드리고
늙고 지친 이모들은
또 리턴하러 역시나 아수라장인 올드 네이비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힘든 하루였어요.
그래도 갈비와 냉면을 뱃 속에 넣고 집에 오는 길엔
빈 가방이었던 큰 가방에
성님이 남편 주라고 한국 빵집에서 사 준 모닝크림빵에 (심지어 밤도 들어가 있음)
타겟에서 산 아몬드 들어 간 다크 초콜렛
그리고 또 절대 리턴만 안되고 뭔가를 꼭 사게 되는 쇼핑의 법칙에 따라 사게 된
3불 짜리 팥죽색 탱크 탑
그리고 2불 짜리 장갑.
힘들었지만
보람찬 하루였어요. 하하하!
아이는 이틀 후 다시 자기 집으로 가는데
호스팅 중인 셋째 성은 어차피 다 써 버려야 할 휴가라고
내일하고 모레 다 출근 안 하기로 했고
저는 저대로
애 보내는 짐을 어찌할까도 궁리해야 하고
하루는 슬립 오버를 그 쪽에서 해야 할 것도 같고
(이번엔 몸 상태가 영 아니어서
밥 아줌마로 그 집에서 같이 숙식도 못 했음요)
언제나 그렇듯
늙은 이모들만 절차 부심에 바빠요.
딱 세 번 얼굴 본 동안
볼 때 마다 하고 있던 옷차림 꼬라지 보고
한 마디 하고 싶었던 잔소리 세 번 다 삼켰던 저의 인내심에 박수를 보내며
제 자신을 세뇌합니다.
잔소리를 삼켜야
저 아이가 앞으로 나를 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아 진짜 더럽고 치사해.
다 크고 나니 내가 지 눈치를 보네!
어릴 땐 내가 그리도 무서운 이모였구만!
셋째 성 말이
그래도 제가 저 나이 때 하고 다녔던 꼬라지 보다는 낫다고
ㅋㅋㅋㅋㅋㅋ
하고 싶은 잔소리 한 번 입 안에서 삼키면 되는 것이 어른 유세 집어 치우는 것인데
모 어려울 것도 없어요.
내가 저 나이 때 난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랬던 내가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한다고ㅋㅋㅋ
그저 남은 이틀
공주님 잘 보필 해야지.
이렇게 세월은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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