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계기로 온 집안을 들쑤셔서
엄청 난 정리를 했어요.
이 작은 원베드 아파트에서 지금껏 30갤런 짜리 쓰레기 봉투로
열 다섯 개가 나갔고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옷,가방,신발,책, 모든 살림 전반을 싹 다 정리 하는 중이요.
쓰던 책상 버리고 새 책상 들여 왔어요.
저 책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친구가 쓰던 것 받아 와서 저한테서만 거진 20년.
책상은 몇 년 전 부터 바꿔야지 바꿔야지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냉장고가 모든 것의 시작이 된 거예요.
남편이야 물론,
책상이 두 개로 쪼개진 것도 아니고
다리 하나가 부러진 것도 아닌데
저 사람 기준에는 당연히 새 책상도 필요가 없는 거죠.
새 물건이란
쓰던 물건이 아주 아작이 나서 못쓰게 되었을 때나 들이는 것이다, 가
저 사람을 낳고 키우고 해주신 부모님들의 가치관이라.
물질을 쫒는 인간이 된 김에
이참에 확실히 하는 거죠.
난 새 책상 원하고 그래서 바꿀거야.
저기 전자렌지 놓은 카트 (물론 이것도 어디선가 얻어 온 것)
새로 살거야. 저거 버리고.
양념들 놓은 선반 (네. 그렇습니다. 이것도 어디서 가져온 것)
새로 살거야.
저것들이 망가지지 않았는데 왜 내가 새로 사려고 하는 거냐면,
그러고 싶어서.
차분하게 얘기하고 남편 얼굴 쳐다 봤어요.
남편은 제가 꿱꿱 소리 지르는 거보다 목소리 깔고 얘기하면 더 무서워 해요.
뭐 다른 이유 더 필요해?
아니요.
새 거 주문할 때 사진 보여 주고 가격 얘기해 줘?
아니요. 알아서 주문 하세요.
더 살 거 있으면 뭐 살 건지 얘기해 줘?
아니요. 그냥 알아서 사세요.
참 나, 진짜 내가 무슨 사치라도 하고 살았으면
이렇게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진 않았을텐데 말이죠.
큰 살림 하나 언니가 사준다 하면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으로 받고 감사 인사나 하면 됐을 것을
어디다 대고 물질적인 인간 어쩌고 저쩌고.
살림살이 얻어다 쓰는 거 저 좋아하고 그렇게 오래 살았다 말이죠.
친구가 그릇 준다하면 받아다 쓰고.
누군가에겐 싫증이 난 그릇도 나한테는 새 그릇이고
누군가에겐 쓸모가 없어진 살림도 나한테는 요긴할 수 있거든요.
그런 거 다 고맙게 받아 와 쓰고 가져다 쓰고
그렇게 잘 살았죠.
하지만 저도 새로 사고 싶은 것도 있잖아요.
나도 새 물건 고를 줄 알고
새 물건 살 줄 안다고요.
집에서 전철로 두 정거장 쯤 떨어져 있는 곳에
자그마한 한국 식당이 있는 걸 얼마 전에 알게 됐어요.
남편이랑 지나가다 보고
아, 여기가 그 때 누가 말해 준 한국 식당이구나.
우리 동네도 한국 식당 있다고 그 때 누가 얘기해 줬거든~
앞에 서서
문 앞에 붙은 음식 사진들 봤어요.
메뉴가 어떤 게 있나 좀 볼까~ 하면서.
순두부
부인이 잘 하시는 거네요.
갈비
아 그것도 부인이 잘 하시는 거네요.
잡채
역시 부인이 잘 하시는 거.
떡볶이
그것도 부인이
그만!!!
나 떡볶이 맛있게 잘 못해.
그리고, 내가 할 수 있고 잘 하면 뭐.
나도 남이 해 준 음식 먹을 줄 알거든?
외식을 내가 하지 못하는 음식이라서만 하는 건 줄 알아?
나도 남이 나 먹으라고 만들어서
나 먹으라고 갖다 주고
다 먹은 다음에는 치워주는 거 가끔은 하고 싶거든?
저 때도 빈정 제대로 상했었지만
그냥 저 정도로 하고 넘어 갔었어요.
이번 냉장고 사건은 그냥 넘어 갈 수가 없어서
제대로 난리를 쳤죠?
너네 아빠처럼 한 평생 무능력하게 살아도 행복해 할
너네 엄마 같은 여자를 찾아서 살아라,로 결론까지 완벽하게 내 주고.
그러고는
남편이 혼자 시골 부모님 집에 갔어요.
지금 하와이 있는 막내 시누 빼고
나머지 셋이 돌아 가며 부모님 집에 가서 부모님 돌보고 있는 중인데
이번에 남편이 저 없이 혼자 갔다 왔어요.
제가 마지막 갔던 것이
크리스마스 전 부터 새 해 초까지 2주 정도.
그 때
몸이 힘든 건, 기본이죠.
두 노인 내외 낮 동안 시중 들기 더하기 밤에는 치매 시어머니 집중 마크.
당연히 몸 힘들고,
가족 모두에게 힘든 상황인데
저는 시아버지로 부터의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받기 시작했어요.
시어머니 아프시고 부터
말로는 고맙다, 고맙다 하시죠 항상.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받아야 할 마땅한 존중이 없어 지더라고요?
그게 몇 달 동안 쌓이다 지난 번 다녀 왔을 때 최고조에 달해서
제가 시누들한테 이메일을 썼어요.
내가 작년 5월에 이런 방식으로 어머님, 아버님 돌보자고 했을 때
현실적으로 보다 긴 대책을 강구하는게 좋겠다고 제안 했었고
나는 연말까지는 최선을 다해 보겠다, 그 이후로는 나도 장담을 못하겠다, 고 했던 것처럼
난 그 말을 지켰고
앞으로 계속 한다는 약속 못한다.
사랑하는 어머님 보살펴 드리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아버님 비위 맞추는 것은 못 하겠고
아버님이 나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이 내 마음을 상하게 한다,
라고 보냈어요.
그러고 나서 남편 혼자 갔다 왔죠.
니 동생들 남편들이 나 만큼 하더냐,
너는 아들인데 니가 할 일 내가 대신 하고 있지 않냐,
이런 얘기,
다 필요 없어요.
저는 어머님과의 정이 깊어서 어머님 보고 싶어서 건 거였거든요.
아버님하고 남편,
저 찌질이 부자는 어머님 믿고 저러는 건지.
제가 남편한테 그랬어요.
어머니가 돌봐 줄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 아니어도 효녀 셋이 있어.
내가 어머니 마음에 걸려서 당신이랑 당신 아버지 참아 줄거라고 생각하지 마.
나는 아무 죄책감 없어.
나는 어머니 건강 하실 때도 어머니 아프시고도
어머니 충분히 사랑했어.
어머니가 항상 나를 충분히 사랑해 주신 것 처럼.
당신 아버지가 말로는 고맙다 고맙다 하시면 나한테 이렇게 하시는 거,
당신이 말로는 사랑한다 사랑한다 하면서 나한테 이러는 거,
진절머리 나.
그런 말을 하지를 마. 열 받으니까.
지난 번 갔었을 때 일이예요.
어머니 주무시러 가시기 전, 화장실에서 그날의 마무리.
바지 젖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기저귀 갈아 드리고
양치하고 손 씻고
이게 어머님 기분에 따라 굉장히 오래 걸릴 때도 있고
쉽게 부드럽게 진행될 때도 있고.
저 날 밤은
제가 시골 가기 전에 제 친정 엄마랑 큰 일 치른 것도 있고
시아버지 땜에 마음 상하고 있던 것도 있었고
마음이 많이 안 좋았었어요.
어머님이 저 날 저녁, 기분이 좋으신 날이었어요.
마음이 많이 지쳤던 날 밤에
어머님이 다 좋게 좋게 웃으시면서 제가 하자는 대로 쉽게 쉽게 하셔 가지고.
어머니, 감사해요.
항상 저한테 스윗 하셔서.
했더니,
너도 항상 나한테 스윗 하잖니? 하시더니,
방으로 향하시던 걸음을 멈추시고
저를 빤히 쳐다 보시는 거예요.
어머님 건강 하셨을 때 눈빛 같았어요 그 순간.
저를 몇 초쯤 빤히 쳐다 보시다 천천히 한 손으로 제 한 손을 잡으시더니,
얘, 누가 너 힘들게 하니?
저는 갑자기 저 말 듣고 깜짝 놀랐어요.
저 이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한 마디 했을 뿐인데
이제는 대소변도 다 도와 드려야 할 정도로
아무 정신이 없는 것 같은 어머니가
걸음을 멈추시고
나를 보시고
누가 나를 힘들게 하냐고.
물어 보셔서.
이뻐해 주셔서 감사 하다는 말을 들으시고
어떻게, 저 말을 하시지??
누가 너 힘들게 하면 나한테 말해라.
우리 다같이 모여서 얘기하면 돼.
너 힘들게 하는게 딸 중에 누구인지는 굳이 말 할 필요 없어.
(어머님 생각에 남편 쌍둥이 여동생이 저를 괴롭힌다고 생각 하신 듯요.
걔가 너한테 그런거지? 내가 다 안다는 듯한 늬앙스.
그런데 저 쌍둥이 시누는 크레이지긴 한데 저를 힘들게 하지는 않아요.
저 빼고 다른 식구들 전부 다를 힘들게 해요 ㅋㅋㅋ)
얘기하면 돼.
너 힘들게 하는 사람이 누군지 나한테 말하면 된다.
이러고 저를 꼬옥 안아 주셔서
제가
어머니 감사해요, 사랑해요.
했어요. 한 동안 어머니 안고 울었어요.
어머니가 계속 제 등을 쓰다 듬어 주시고.
하와이 사는 막내 시누는
원래 계획대로는 4월 초에 뉴욕에 다시 오기로 했었는데
지금 상황이 좀 안 좋으니까
한 달 빨리 3월 8일에 오는 걸로 비행기 표 끊었다 하더라고요.
제가 노 여사 하고도 큰 일이 있은 게 한 2년 쯤 돼요?
항상 하시던 대로 본인 성질 대로
하고픈 말, 온갖 악담을 다 쏟아내고,
저는 자기 자식한테 저렇게 악담을 퍼붓는 부모를, 아니 뭐 제 개인적으로는 저 분 밖에 못 봤고
어디엔가 또 존재 하겠죠.
그러더니, 당분간 보지 말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오케이 한 거예요.
물론 전화 상으로 오케이~~~ 이렇게 말 한 건 아니고요.
엄마 마음 알았다고 알았으니까 없던 얘기로 하자고 죄송 하다고 했는데
그 때 말했을 때는 안한다 하더니 이제와서 속을 뒤집고
로 시작을 해서
다다다다 다다다다
자식한테 하고 싶은 악담 다 하시더니
당분간 보지 말자, 전화도 하지 마라, 해서.
전 그래서 이걸 끝이라고 생각해야 겠다, 한건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서 본인 마음 풀리니까
이제는 미안하다,
나는 그 때 너한테 그런 말 한 적이 없다.
남편은
정리 하자고 하면
제가 그냥 짐 싸서 어디로 가던가 하면 그만 인데요,
스물 여섯에 만나 사귀기 시작하고
같이 살고
결혼하고
그러고 20년 쯤 되면서
그 집 식구들.
100% 개새끼면 지금까지 끌고 오지도 않았을 거고
일말의 장점도 가진 사람인 건 맞아요.
노 여사가 저를 힘들게 하는 건
천륜이라 끊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내 선택으로 이런 집안에 태어 나진 않았지만
태어나 보니
운 나쁜 부모 밑이었는데
그래도 포지션이
5남매 중 막내.
맨 위에 못돼 쳐먹은 첫째 빼고
나머지 넷이 우애가 좋은 편이예요.
이런 집에 태어나 자라서 사느라고 다들 힘든 건 마찬 가지 였는데
오빠랑 언니들은
노 여사를 이해하는 폭이 저랑은 비교도 할 수 없이 넓고요,
그리고 동생이라고
다들 제 말에 꼼짝을 못해요.
감사하게 생각해요.
나는 모두에게 사랑 받을 필요는 없어요.
모두가 나를 사랑해야 할 이유도 없고요.
그리고 나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할 의무가 없어요.
나는
나를 좋아하고 나를 귀히 여기고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들한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노력해서 해주고
그렇게 살고 싶단 말이죠.
그리고 사람은
다 행동이예요.
마음이 가고 그러면 행동이 가고.
주댕이로 하는 거 아무 의미 없죠.
고맙다, 고맙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다 자기들 위주로 하는 말들이지 내 입장은 그게 아닌데?
시부모님 문제는 다음 달 초에 막내 시누가 뉴욕 오면
아마 큰 문제들 해결 될 거 같아요.
어머님 널싱홈 가시는 거, 아버님은 둘째 시누네로 가서 함께 사시는 거,
지금 살고 계신 집 문제.
남편은 앞으로도 계속 자기 하던대로 살거 고요.
제가 어디로 도망 가거나 하지 않는 한 제 옆에 딱 붙어서.
노 여사는 돌아 가시는 그 날 까지
계속 본인 하고 싶은대로 하실 거고요
저는,
역시 저대로
제 기분 내키면 하고 아니면 말고 이럼서
속상하다고 징징 거리면 친구들어 주고 걱정해 주고
오빠, 언니들이 돈 주고.
제가 냉장고 문제로 남편이랑 뒤짚어 엎고 싸우고
열 받고 울고
난리를 쳤더니
둘째 언니는, 갱년기가 오면 그럴 수 있어.
나도 그랬어.
너무 화가 나고 주체가 안돼서 형부한테 막 욕 하고.
그럴 수 있어.
내가 기도 빡씨게 할 거니까,
지나 갈거야. 괜찮아 질거야.
셋째 성은,
저 혼자 이름으로 은행 어카운트를 만들면,
돈을 넣어 줄 테니
너 쓰고 싶은 데에 아무 데나 쓰라고.
그 아파트는 너가 얻어서 리스도 너 이름으로 돼 있으니까
너가 킵하고 폴을 내 보내고
새 인생 시작해.
얼마 안되는 렌트비 얼마 되지도 않는 생활비 폴이 낸다고 그러고 살지 말고.
셋째 성도 빡친 거예요.
남편이 돼가지고 요리 열심히 하는 내 동생 주방이 저런데
아무 것도 해 줄 생각 없이 사는 거 답답해서 자기가 해주겠다 한건데
물질적인 인간 어쩌고 한 거.
그리고 저도 다음 달 부터는 일해서 수입도 생길 거고요.
다음 주에 캐피탈 원에 가서 구좌 오픈하려고요.
용돈이라고 치기에는 액수가 좀 큰데...
셋째 성이, 저거는 그냥 순수하게 저한테 주는 용돈이고요.
뭐 해보고 싶은 게 있음 말하래요.
주식 공부해서 투자하고 싶음 하고.
버리는 돈이라고 치고 씨드 머니 줄 수 있다고.
저는 주식도 하면 왠지 잘 할 수도 있을 것도 같긴 한데
그냥 아무 생각없이 막 던지다 얻어 걸리는 거 이런 거요.
공부를 하긴 싫고요.
그래서 주식 하겠다는 말은 안 했어요.
다음 달 부터 일은 할 거예요.
쉬운 일이고 적은 돈이지만
암튼 제가 뭘 해서 돈을 벌 계획이 있습니다.
저도 마냥 기생충처럼 살지 만은 않아요.
한심하게 사는 인간도
다 나름 내면으로 고민도 하고 궁리도 하고.
오늘 하루.
모두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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