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집으로 돌아 갑니다.

현경이가 이번에 대학원을 졸업 했습니다.

저의 영원한 강아지가.

무려 선생님이예요 ㅎㅎㅎ
스페니쉬로 영어를 가르치는 이중 언어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쟤는 8월에 자기 공부 더 하러 일년 간 콜롬비아를 간대요.
(뉴욕에 있는 대학 아니고 남미의 나라)


그래서 자기가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유학 길에 오르기 전에
한 달간 유럽 여행을 하려고 하는데
엄마, 이모들 같이 가지 않을래? 이렇게 시작이 된거죠.


저 집 엄마나 셋째 성이나
갑작스런 유럽 여행은 하는 일 때문에 먼 나라 이야기고 제가 덥썩 받았죠.


그런데 저는 여기 저기 짐 가방 들고 돌아 다닐 체력도 안되고
그런 마음의 에너지도 없고 해서

그럼 나는 한 달 살기를 해보겠다! 이렇게 된 거예요.


현경 양이 여행의 시작을 포르투갈로 한다길래

저는 다른 고민 안하고 바로 

리스본의 조용한 동네, 바다가 보이는 곳, 

그런데 현경이가 처음 일주일만 같이 있고

나머지는 나 혼자 있어야 하니

독채 보다는 다른 사람들도 있는 게 낫겠다 싶어서

지금 묵고 있는 이 집을 골랐어요.

리스본 베렝 지구에서 페리 타고 20분 걸리는

트라파리아 (Trafaria) 라는 정말 작고 조용한 항구 마을입니다.

큰 방은 게스트 룸 (총 6명)

작은 방은 화장실이 달린 제가 쓰고 있는 방.

게스트가 6명 까지도 될 수 있다는 건 미처 몰랐는데

결론적으로는 아주 좋았어요.

이 동네 자체가 아무 것도 없는 조용하기 그지 없는 

리스본 시내를 나가려면 강을 건너 가야 하는 곳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꽉 꽉 차지도 않고

7일 정도는 저 혼자만 있기도 했어요.

한 달 동안, 며칠씩 왔다 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보내고 이러다 보니

제가 이 집 주인 같기도 하고ㅎㅎㅎ

지난 연말 부터 남편하고의 사이가 파국으로 치닫았죠.

저의 평소 성질 머리에 갱년기 광증까지 더 해져서

점점 더 남편을 참을 수 없다, 이렇게 된 거예요.

남편은 방,

저는 거실 이렇게 따로 잔 지도 한참 되었고

아예 생활 공간 자체를 점점 더 분리해서

룸 메이트 처럼 지내고

제가 남편 밥도 안 해주기 시작 했고

저는 엄마를 보러 다니면서 일주일에 반은 밖에 나가 있었고

그러다 4월 한 달은 또 통째로 내쉬빌로 날라 가서 둘째 언니네 있었고

그러다 와서 한 2주 있다 

또 즉흥적으로 내쉬빌 가는 비행기 표를 끊어서 일주일 있다 오고

그러다 이렇게 6월 리스본 한 달 살기를 하러 왔습니다.

이 여행의 총평은, 오기를 잘 했다, 입니다.

가장 아쉬운 점은,

지난 연말부터 서서히 시작된 저의 식욕 부진으로 인해

제가 그리도 좋아 하는 해산물 요리를 그닥 많이 못 먹고 가는 점.

빵의 원조국에 와서 빵을 한 번도 안 먹은 것도 아쉽기는 해도

저는 빵은 원래 안 먹기 때문에 크게 아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해산물은 제가 좋아 하는데,

평생 먹을 문어를 한 달 동안 먹어 주고 오겠노라, 했는데

문어도 두 번 밖에 못 사 먹은 것이 가장 큰 아쉬움 입니다.

현경 양과 일주일을 함께 보내고

현경 양은 이태리로. 집에는 다른 게스트 없이 며칠을 보냈어요.

처음 혼자 시간을 갖게 되고

리스본 시내를 나가 보자, 하고 페리를 타고 강을 건넜습니다.


페리에서 내리니 낮 12시.

해는 쨍쨍.

많은 사람들.

목적지를 찍으니 걸어서 한 시간 반이라고 나오더라고요.

(목적지는 아시안 마켓 ㅋㅋㅋㅋㅋㅋ)

갈 때는 걸어서 가고

올 때는 우버를 타자, 이렇게 마음을 먹었어 가지고

일단 걸었어요.

좀 천천히 걸어서 두 시간 걸려 도착 했어요.

두 시간 중 처음 30분은 강변을 따라 쭉 걷는 거였는데

화장도 하고 

옷도 예쁜 원피스 입고

사진도 찍어야지 하고 셀카봉도 가방에 있고

강 바람 시원하고

경치도 좋고

한데,

그냥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 하대요.

그래서 그냥 울었어요.

30분 내내 손수건으로 눈물 찍으면서 걸었어요.

다음 날은

페리를 타고 다시 나갔어요.

페리가 내려 주는 곳이

유명한 에그 타르트 집이 있는 동네예요.  베렝.

수도원을 구경하고 에그 타르틀 사 먹자, 하는 목표로.

수도원에 같이 붙어 있는 성당에 들어 가서

기도를 하고.

저는 무교지만 성당을 들어 가면 꼭 나만의 기도는 하고 와요ㅎㅎ

1유로를 도네이션 하고 모두를 위한 촛불 하나도 밝히고

두 개 사서 한 개 먹고 남은 에그 타르트 하나 가방에 잘 챙겨서

다시 페리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마음이 한결 편하더라고요.

저 뒤로 2주 정도의 시간이 더 흘러 오늘이 되었는데,

그 동안 8일을

프랑스에서 온 스물 두 살 총각하고 집에 같이 있었고요.

첫 인사는 반갑게 나눴는데

보니까, 저 청년도 마음이 크게 아픈 상태더라고요.

담배 필 때랑 밥 먹을 때 말고는

방에 틀어 박혀서 나오지를 않더라고요.

사흘 쯤 저렇게 보내고 

마침내 페티오에 앉아 얘기를 나누게 됐는데

저는 불어를 전혀 못하고

저 청년은 영어를 거의 못하고

그래서 대화가 좀 많이 힘들긴 했지만

실연을 당하고 산티아고 길을 걸고 여기를 왔다고 하더라고요.

쉬고 싶어서.

이 집에 온 첫 날엔

게스트 방에 여자 분 두 명이 있었어요.


네덜란드에서 온 60대 분. 아줌마 1

독일에서 온 우크라이나 출신 30대 초반 분, 아줌마 2

뉴욕에서 온 50대 본인, 아줌마 3

이렇게 아줌마 세 명하고 아줌마3의 조카, 앞 날이 창창한 핵 인싸 20대 아가씨

이렇게 넷이 패티오에서 와인을 마셨는데

아주 아주 좋은 시간이었어요.

오래 오래 기억하고 싶은.

아줌마 1은 처음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고 살다 이혼하고 

재혼을 했는데, 재혼으로 10년을 살았는데

이 남편을 아주 많이 사랑 했었나 봐요.

몇 년 전에 남편을 병으로 잃었다고.

남편 얘기 하는데 아직도 사랑과 그리움이 절절하게 느껴 졌어요.

이 분 역시 산티아고 길을 걷고

이 집에 일주일 쉬러 왔다고 하더라고요.

말술을 잡숫고 골초.

엄청나게 활발하고 좌중을 시종 일관 유쾌하게 이끄는.

함께 하는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었어요.

저러고 다음 날 아침 새벽 부터 일어 나서 하이킹 하고.

저런 체력의 소유자는 말 술 먹고 담배 필 자격이 있죠.

남편 요구로 이혼 수속 시작 하면서 

셋째 성한테 이 청년도 상태 보니까 마음의 병이 깊어 보인다, 했더니

셋째 성이

야, 혹시 너한테 그런 사람들 끌어 들이는 나쁜 기운이 있는 거 아니야?

이럽디다.

애시당초 이 동네가 쉬는 거 말고는 할 게 없는 동네다.

쉬러 오고 싶은 사람들 마음 상태가 애시당초 어떻겠냐.

프랑스 청년이 보니까

밥은 꼬박 챙겨 먹는 스타일이길래

어느 날 저녁으로 호박 부침개를 한 장 해서

한 번 먹어 볼래냐고 했더니 먹겠대요.

한국 음식 먹어 봤냐고 물었더니 먹어 본 적 없대요.

그래서 제가 이 소스에 마늘도 많이 들어 가고

고추 가루도 많이 들어 갔다고

일단 조금만 얹어서 먹어 보라고 했는데

한 입 먹고 눈이 휘둥그레 지면서 너무 맛있대요, 양념 간장이.

제 시아버지보다 더 큰 양념 간장 팬이 생겼어요.

시아버지가 양념 간장을 정말 좋아 하셔서 '엑스터시 소스'라고 부르시거든요.

저 뒤로 가는 날 까지

저 청년이 제가 만들어 놓은 양념 간장을 다 먹었고요.

한 번 더 만들었고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씨리얼에 양념 간장을 얹어 먹더라고요. 우유 없이요.

셋째 성이,

제가 하는 말이 다 거짓말 같대요.

꾸며 내는 말 같다고.

그럼서 저 청년 갈 때 양념 간장 만들어서 좀 주라고.

만들어 줬습니다.

만드는 방법을 한 다섯 번쯤 물어 보고

양념들 사진 찍어 간다길래, 만드는 거 간단 하니까 보라고 하고요.

자 다진 마늘, 파, 여기다 간장 붓고, 고추 가루, 참기름, 깨소금.

쉽지? 한 다음에 집락에 고추가루랑 깨소금은 조금 담아서 보냈어요.

둘째 언니한테

한 달 동안 여기서 만났던 사람들과 시간들이

다 하나 하나 의미가 없는 게 없네.

저 상태 안 좋은 애기도 

운수가 터서 여기 와서 나를 만나서

양념 간장 테라피 받아 가네.

했더니 매우 좋아 합니다 ㅎㅎㅎ

저는 짐은 어제 저녁에 80% 정도  싸 놓았고요.

이제 아침 먹고 방/집 정리 좀 하고

그러고 설렁 설렁 쉬다 공항 가면 됩니다.

집에 돌아갈 생각 하니까 

또 이런 저런 많은 생각들이 드는데

여기 올 때 제 마음의 무게가 100톤 이었다면

지금은 2톤 정도로 줄었어요.

남은 2톤 정도는 일단은 안고 살아야 하겠지요.

이 갱년기 광증도 없어질 날이 오기도 할테고요.

저는 집으로 돌아 가서 인사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