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지금 시골에서 버스타고 시내로 돌아 오는 중이고요,

 

 

큰 조카양하고는 진정

퀄러티 타임 제대로 잘하고 왔어요.

다섯 시 반에 만나서 아홉 시 반에 바이바이 하기까지 네 시간 동안

저희 동네서 나름 업스케일인 식당으로 데려 갔더니

대접 받는 기분이 드는지 좋아 하더라고요.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돈이 들어요.

카드 빚에 허덕이는 이 이모는 오늘도 긁는다...

 

 

자기 엄마 흉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지 않는 선에서

저와 큰언니의 관계를 설명하느라고 많이 조심스러웠고

저와 둘째 언니의 관계를 설명할 때에는

저 아이 눈시울이 뜨거워 지고

 

 

왕이모는 정말 너무 착해 빠졌어...

 

 

이럼서.

 

 

엄마들 관계를 떠나서

저와 조카들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에선

제가 불쉿 안하고 딱 잘라 솔직하게 말하겠다고 하고 인정했어요.

너와 네 남동생이 느끼는 그것, 이모 뭔지 잘 안다고.

 

 

 

현경이 현영이는

이모가 애기 때 부터 그 애들 똥 기저귀 빨아 주면서

이모가 함께 키운 아이들이고

 

 

너희들은

자라는 것도 못 보고

커서 뉴욕 와서도 한 동안 너희 엄마 때문에

왕래를 안했기 때문에

너희와 이모가 이렇게 친밀하게 관계를 맺기 시작한게 3-4년 밖에 안된 그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지난 3-4년 동안

이모는 너희와 함께 하면서

이제는 너희 엄마와 이모와의 관계와는 또 다르게

너희는 너희대로 이미 이모한테는 의미있는 존재들이 되었고

앞으로 우리는 같이 할 날이 많기 때문에

너희와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너희 엄마와 나의 관계는 너희와는 따로 놓고 갈 계획이라고 했어요.

 

 

 

그 동안 우리 소정이 이모한테 얼마나 서운했었을까...

미안해...

이모가 많이 미안해...

 

 

 

머리 쓰담쓰담 해 줬어요.

 

 

네 시간 함께 하는 동안

이 아이가 한 열댓번은 울먹 울먹한 것 같아요.

 

 

이 아이

성인 인정을 전제로 나누었던 지난 이야기들 다 끝내고

성인 인정 해 준 김에

보나스로다

제 비밀 얘기도 하나 해 주고.

 

 

별건 아니고

지난 3년간 빨래 안 했다는 얘기요.

그러다

지난 10월 결혼 기념일에 3년여 만에

이모부한테 결혼 기념일 선물로 빨래 해 줬다고.

 

 

헐...

그럼 그 동안 이모부가 계속 빨래 했다는 거야?

 

 

 

응..

 

 

이모 너무 무기력하게 살아서

이모는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즐거운 일도 없고

밥 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안 했어.

이모는 있잖아

밖에 나가서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일들이 너무 힘들어.

일 하느라고 세상에 나가서 부딪히는게 너무 힘들어.

내가 내가 아닌듯이 억지 연극하는게 정말 힘들어.

이모는 남들이 얼핏 보고 성격이 좋은 것 같다고 하고 친화력이 좋은 것 같아 보이지만

이모는 사람들하고 억지로 어울리는게 사실 제일 괴로워.

이모는 지하철 타는 것도 싫고

그냥 집에만 있는게 좋아.

이모는 생활비 걱정없으면

맨날 이렇게 집에서

김치나 해서 식구들 주고

맛있는거 해서 같이 나눠 먹고

이런거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

그런데 이모가 일을 안하고 살 수는 없고

일을 잡기도 어렵지만 일을 또 잡는다고 해도 오래 못하고 금방 그만두고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거니까

이모가 치료를 받으려고 해.

 

 

 

새해 다짐이

적극적으로 마음 치료를 전문가한테 받아 보자, 라고

남편하고만 나누었던 계획을 얘기해 줬어요.

 

 

 

자기도 이모가 밥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대요.

이모가 해 준 음식들 받아 먹을 때마다

보살핌 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정말 좋대요.

 

 

 

 

이모가 이번에 배추 한 박스 혼자 김치 담글 때

소금물에 배추 다 담가 놓고

양념도 다 만들어 놓고

다음 날 일어나서 버무리는 것도 혼자 하고 있으니까

버무리는 건 언니들 불러서 같이 한다더니 이것도 혼자 다 하고 있냐고

이모부가 깜짝 놀라서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고는

이모 퍼질러 앉아서 배추에 열심히 양념 버무리는 모습 한참 쳐다 보다가 나직한 소리로 그러더라.

김장 아이디어 제안해 준 왕이모 고맙다고.

 

 

 

 

맨날 축 늘어져 있다가 배추 한 박스 들여 놓고 부터

눈썹이 휘날리게 신이 나서 왔다 갔다 하는 이모 활기찬  모습이 좋았던 거야 이모부는.

이모는

자기 식구들 먹인다고 음식 만드는 걸 굉장히 행복해 하는 사람인 걸 이모부가 알아서

장보는 값이 많이 들어도

이모부는 싫은 내색 절대 안 해.

그거 하는게 이모가  유일하게 신바람나서 하는 일인거 알아서.

장 보는 값 많이 들고 이모 몸 힘드는 거 알아도

이모부는 싫은 소리 한 마디도 안 해.

이모더러 앞으로도 배추 한 박스 정기적으로 사서 김치하래.

이럴 때나 이모 밝은 모습 본다고.

 

 

 

만두소 만들 때도

왔다 갔다 하면서 자기가 뭐 하면 좋겠냐고 묻는데

제가 됐다고 걱정말고 들어가 축구나 보라고 하고

혼자 다 해서

 

 

내가 두고 먹을 것, 둘째 언니네랑 먹을 것

자리 잡고 앉아서

다 싸가지고

 

 

제가 끼니마다 다른 메뉴 해 먹는 사람이고

같은 음식 이어서 두 끼는 절대 안 먹는 사람인데

김치 만두는 하루 세 번도 먹거든요.

저한테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김치 만두는 딱 두 종류예요.

내가 만든거나

남이 만든 것 사먹는 거나

딱 둘 중 하나예요.

맛있는 김치 만두 아니면 조금 덜 맛있는 김치 만두.

맛없는 김치 만두란 존재하지 않아요.

 

 

 

만두 다 싸 놓았더니

그 다음 날 친구 만날 계획이 있어서

스무 개, 남편하고 단촐히 사는 친구 잠깐 볼 일이 있어서 그 친구 걸로 싸 놓고

쇼핑 같이 하기로 한 친구 걸로 서른 개.

 

 

서른 개 해서 준 친구는

시어머니가 주중에 아이들 봐 주시는데

넉넉하지 않은 갯수라 제가 친구한테 미리 말했어요.

 

 

 

맛이나 보시라고 친구가 어머님 드리라고 줬다고.

 

 

어차피 다같이 먹을 테지만

어른 계시는 집이니까 기왕이면 명목은 어른 드시라고 드리는게

그나마 생색이 날 것 같아서

제가 친구한테 시어머님한테 할 대사까지 정해 줬어요.

 

 

 

어머님 드시라고 하는 김에

그럼 만든 사람이 직접 한 말씀 드리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

종이에 대충 쪽지쓰듯 간단히 편지를 썼어요.

 

 

야, 이 안에 내가 직접 쪽지도 썼으니까 어머님한테 잘 전해 드려라.

내가 너 편하게 이쁨받고 살라고

이런 수고를 다 한다.

 

 

쪽지에는

 

 

본인 한 몸 돌보시기에도 힘든 연세에

손주들 봐 주시느라 많이 힘드시죠,

그래도 제 친구 ㅇㅇ가 착해서

좋은 남편, 좋은 시부모님 복을 받은 것 같아요.

없는 솜씨지만 오랜 만에 집에서 담근 김치로 만든 만두인데

맛이나 보시라고 조금 보내 드려요.

입에 맞으셨으면 좋겠어요.

추운데 건강 조심하세요.

 

 

대충 이렇게 썼어요.

 

 

 

친구가

오늘 전화가 와서는

 

 

진작 전화 했어야 했는데 미안하다고 하면서

만두도 맛있었고

친구 시어머님이 제 편지 보고 너무 너무 좋아 하셨대요.

니가 왜 시부모님들한테 이쁨받고 사는지 알 것 같다고.

 

 

 

그래서 제가

 

 

내가 원래 잔머리에 강하잖냐.

같은 만두 30개라도 생색을 내려면 이런 잔머리를 굴려야 하느니라.

 

 

 

제가 같이 골라 준 옷들도

회사 입고 갔더니 예쁘다고 난리가 났대요.

이 친구가

항상 자기 칫수보다 하나 더 크게 입는 경향이 있어서

제가 친구가 골라 놓은 것 다 뺏어 버리고

제가 우겨서 다 골라 줬거든요.

저는 한 개도 안 사고

오로지 친구 쇼핑에만 올인해서 도우미 했어요.

 

 

 

앞으로 옷은 꼭 저랑 같이 사야겠대요.

 

 

 

12월 다 가기 전에

얼른 맨하탄 한 번 또 나오라고

자기가 저 점심 사줘야 한다고요.

지난 20여년 간 제가 저 친구한테 얻어 먹은 밥 값, 술 값이 엄청나요.

저는 또 점심 얻어 먹게 생겼어요.

 

 

 

어디서 돈이 뚝 뚝 떨어지면

생활비 걱정 안하고

맨날 장이나 봐다 밥이나 해서

여기 저기 나눠 주면서

나 이런거 참 잘 해 이럼서 혼자 흐뭇해 하고

이러고나 살았으면 좋겠는데.

 

 

 

 

 

 

 

 

 

 

 

 

 

 

 

 

 

 

 

 

 

 

 

 

 

 

 

 

만두 하거든 사진 올리기로 약속 드린 분 있어서 사진 올려요.

 

저 음식할 때 위생 장갑 안 써요.

설거지 할 때도 장갑 안끼고 맨 손으로 한다고

저희 이모가 맨날 끌탕 하셨거든요. 그러다 손 다 망가 진다고.

고무 장갑 끼고 설거지 하면 그 느낌이 제대로 안 오는 것 같아서 저 장갑 못 껴요.

자주 아니라도 어쩌다 한 번 집 청소해도 저는 장갑 끼고 못하고요

음식할 때도

항상 맨 손으로 해 버릇해서

그래서 제 음식은 가족만 먹을 수 있어요.

아니면 진짜 진짜 친한 친구들.

음식 나눠 주는데가 가족 아니면 친구들 밖에 없긴 하지만 ㅎ

 

 

여름에 패디큐어는 가끔해도

저는 일년 열 두달 손에 팔리쉬 못 칠해요.

이렇게 항상 맨 손으로 음식하기 때문에.

 

 

큰 언니가 김치 가질러 왔을 때 제가 맨손으로 김치 던다고 놀라길래

버무리는 것도 맨 손으로 했는데

맨 손으로 더는게 무슨 대수냐고 했더니

언니 기절 하려고.

손 안 맵냐고. 어떻게 그걸 맨 손으로 다 버무렸냐고.

 

 

저는 손 망가지는 것도 안 무섭고

맨 손으로 열두포기 김치 버무려도 손 안 매워요.

다만 먹는 사람들이 더럽다고 여길까 그 걱정 하나인데

옛날 우리 엄마와 할머니들은 다 맨 손으로 음식 하셨잖아요 그쵸?

저는 제가 만든 음식 돈 받고 파는거 아니고

식구들하고 친한 친구들만 먹이는 거라

그냥 위생에 대한 죄책감 없이 이렇게 항상 해요.

 

 

오른 손으로 버무리면서 왼 손으로 찍은 사진이고요,

요거 한 장 찍고는 양 손으로 팍 팍 버무렸어요.

 

 

 

 

 

 

 

 

 

 

 

 

 

 

 

 

 

 

 

 

 

 

 

처음 몇 개 싼 거 시식용으로 찐 건데 그 중 하나가 양 끝 마무리가 터졌길래 반으로 갈라서 한 컷.

한 입 먹고 찍은 거 아닌데

그래도 혹시 지저분해 보이나요?

 

맛은

괜찮게 됐어요.

맛있는 김치 만두예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여기 저기

속 나눠 주고

싸서 나눠 주고

지금 저희 집 냉동실에 열 몇개 남았어요.

점심으로 끓여 먹으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