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언니 이사 도와주고 왔어요.

지난 주말에는 친구들이랑 두 달 전부터 계획했던 회심의 '스파 데이 아웃'도 하고 왔고요.

 

 

지금까지 둘째 언니랑 멀리 떨어져 본 적이 없어서

그냥 마음이 싱숭생숭.

이삿짐 싸는 건 하나도 안 도와주고 그냥 왔다 갔다만 하면서

말로는 언니 이사 도와야 한다고

추수 감사절, 크리스마스, 둘 다 시골 안 가고 계속 그냥 있었고요.

 

 

언니가 이삿길에 제가 함께 가주었으면 했을 때

제가

여기 내 상황도 어쩌고 저쩌고 해서 마음은 안 그런데 안되겠다, 이렇게 거절을 했다가

차로 옮기는 이사라 차 안에 자리가 없어서

그 집 딸래미는 혼자 비행기 태워 보낸다길래

제가 화들짝 놀라서 남편이랑 30초 상의하고 바로 비행기 표 끊었어요.

 

 

그 집 엄마는

이제 11학년 고등학생이라고 혼자 비행기 타도 괜찮다는데

이모인 저는 마음이 영 안 놓이고

이모부인 남편은 한 술 더 떠서 난리,

그랬다가는 오늘 이후로 아이가 갈 때 까지 자기는 밤에 잠도 못 잘 거라고

부인이 함께 가셔야 한다고.

 

 

아마도 언니가

저 집 딸래미가 저의 가장 약한 부분인 걸 알고 잔머리를 쓴 것일 수도 있어요.

'내가 얘를 혼자 비행기 태워 보낸다는데 니가 과연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하면서.

 

 

어쨌든

한참 예민하고 고민많고

인생에서 친구가 제일 소중한 나이에 이사 하느라 상심이 큰 틴에이져 조카양 데리고

짐 가방 바리 바리 들고

사람도 물건도 잘 딜리버리 해주고 왔습니다.

 

 

가서 있는 동안은

이사에 딱 때 맞춰 계단 내려오다 발 헛디뎌서 오른 쪽 발을 화끈하게 접질러서

발목이 퉁퉁 부어 있는 언니, 저 있는 며칠 동안이라도 쉬라고

밥하고 설거지 하고 밥하고 설거지 하고 밥하고 설거지 하고 오기 전 날은 빨래 다섯 통이나 돌려주고

가사 도우미 역할을 일주일 동안 충실하게 해주고 왔어요.

 

 

이모가 해주는 건 다 맛있다고 잘 먹는 아이들인데

이것들 이번 지나면

언제 또 내 손으로 맛난거 해 먹이려나...싶어서

언니 뱃 속에 있을 때 부터 해서

저 아이들과도 내내 멀리 떨어져 살아 본 적이 없는데

열심히 열심히 밥 해 줬어요.

 

 

새 해 전 날엔

김치 만두속도 혼자하면 힘들다고 자꾸 참여하려는 언니

아예 부엌에 출입 금지 시키고

혼자 척척 다 만들고

만두도 싸는 모양이 영 성의없이 어설프게 막 싸길래

(제 둘째 언니가 이런 부엌일 완전 안 좋아해요.

안 좋아하는데 어쩔 수 없이 하니까 또 완전 성의없이 해요)

제가 그냥 앞에 앉아서 전화기 가지고 놀고 있으라고 만두 싸기도 금지 시켰어요.

 

 

어차피 끓이면 사실 모양은 예쁘게 싼거나 밉게 싼거나 아무 상관이 없긴한데

그래도 끓이기 전까지는 쟁반에 주루룩 늘어 놓았을 때 좀 예쁜 맛이 있어야지..

혼자 싸도 금방 싸니까

그런 식으로 쌀거면 그냥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서 새 해 아침에는 떡 만두국 잘 끓여 먹었고

 

 

 

김밥도 두 번이나 쌌고

바베큐 립도 두 번이나 했고

통닭도 구워 줬고

육개장 제대로 맵게 한 솥 끓였고

간간이 요청이 들어 왔던 김치볶음밥 같은 초간단 메뉴에도

친절히 누룽지까지 만들어서 대령해 줬고

 

 

밥 하고 상차려 먹이고 상 치우고 설거지 하고

이 노릇을 하루 삼세 번씩 꼬박 하는 와중에

굵직한 볼 일 보러 갈 때 제가 같이 가야 또 언니가 안심을 하니까

그것도 쫒아 다니고

막간엔 역시나 저 집 아들이 화투 놀자고 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화투패 돌리고.

내 집 떠나면 항상 하는 진상짓 이번에도 어김없이.

일주일 동안 잠 못 자고

일주일 동안 화장실 제대로 못 가고

원래는 3박 4일 일정이었는데

뉴욕 눈 온다 어쩐다 해서 표 하루 미루고

그리고는 공항 갔다 비행기 타기 10분 전에 오늘 라과디아 풀로 차서 비행기 더는 안 받는단다...해서

다시 이틀 밤 더.

이래 가지고 일주일을 꽉 채우게 됐어요.

 

 

몸은 힘들어도

이모 하루 더 있는다,

이모 이틀 더 있는다, 할 때 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좋아해서

그 맛에 일주일 잘 버텼습니다.

 

 

집에 와서는

이틀은 아무 것도 안하고 잠 보충 원기 보충 하느라

넘의 집에서는 빨래를 다섯 통 씩이나 돌리고 예쁘게 잘 개켜 주는 것 까지 완벽하게 해주고 왔건만

정작 우리 집 빨래는 또 저 아저씨가 자루에 쑤셔 담아 둘러 매고 나가서 해오고.

 

 

이제는

홀아비 생활 일주일 했던 남편을 배려해 줘야 하는 타이밍이구나 해서

또 벌떡 일어나서

김치 담그는 것을 필두로

내 집 부엌 가동을 시작해서

베트남식 폭챱도 해주고

닭죽도 해주고

잉글리쉬 머핀에 미니 피자도 구워 주고

미역국도 끓여 주고

고구마 쪄서 물김치도 떠 먹여 주고

수정과도 끓여 주고

손잡고 산책도 길게 나가고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대화도 길게 나누고.

 

 

 

그러다 주말이 되어

드디어 친구들과 스파 나들이 디데이가 다가 와서

잘 놀고 왔어요.

빡세게 밥 해 대다가

돈만 내면 누가 나 먹으라고 음식을 딱딱 대령해 주니 좋더만요.

 

 

 

두 달 전에

그루폰에 딜 떴다고 친구한테 전화가 와서 일단 표 넉장 확보하고

1월 말까지 쓰면 되는 거라길래

아예 1월 중순으로 거사일을 잡자고 했었거든요.

연말 연시는 가족들과 기타 행사들 각자 알아서 치루고

바쁜거 지나고 나서 느긋하게 만나자고.

 

 

입장료 20불에

점심 20불,

저녁 20불.

잡아서 두 달 동안 하루 일 불씩 모으면 저 날 노는 비용 모인다 치고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하루 일 불씩 모은 건 아니예요ㅎㅎ

그냥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스파 가자 마자 옷 갈아 입고

 

 

언능 밥 먹으러 갑시다. 해서

 

 

밥으로 시작.

내가 한 거 아니니까.

무조건 맛있는거예요.

여러 가지 시켜 놓고 나눠 먹는데 저는 마지막까지 젓가락을 놓지 않는

그래서 반찬까지 싹싹 다 먹어 치우는 저력을 보여 줬습니다.

 

 

반나절 놀고 씻고 나와서는 저녁 먹고 헤어지기로 해서

식당가서

또 여러 가지 시켜서 나눠 먹었어요.

이번에도 이쁜아짐은 계산서 받을 때 까지 혼자 젓가락을 놓지 않는 투혼을 발휘합니다.

아주 아주 맛있게 배부르게 자알~~ 먹었습니다.

 

 

 

찜질방은 이번에 간 것이 두번 째 였는데

친구들이랑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지난 번은, 벌써 몇 년 전이지만

언니들이랑 갔었어요.

그 때도 표를 아주 싼 값에 할인 받았던가 뭐 그랬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큰 언니랑 둘째 언니랑 저랑 이렇게 셋이 갔었는데

 

 

 

찜질방이라는 것을 내 생애 처음으로 간 것 이다 보니

그것도 미국 온 이후로  대중 목욕탕이라는 걸 안다닌지 거의 이십여년 만에 간 것이다 보니

들어가자 마자

언니들이 목욕탕 들어 간다고 훌훌 옷 벗는거 보고

제가 너무나 당황을 했었어요.

 

 

제가 다급한 목소리로

 

 

"뭐지? 옷은 왜 벗어?"

 

 

했더니 큰 언니가 너 바보냐? 하는 표정으로

 

 

"넌 옷 입고 목욕하냐?"

 

 

하고 휙 가버리고

 

 

옆에 있던 둘째 언니마저 다 벗어 버리길래 너무나 황망해서

 

 

"헉! 어떡하지???"

 

 

이러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자니 둘째 언니가 나직하게

 

 

"지랄하네. 넌 젖이 세 개냐?"

 

 

하고 큰 언니 뒤를 따라 목욕탕으로 획 들어가 버림.

 

 

작은 수건으로 앞 가리고 종종 걸음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구석에 쳐 박혀서

아주 불편한 마음으로 목욕을 하고 있자니

언니들 비웃는 소리가.

 

 

가지 가지 한다 ㅉㅉㅉㅉㅉ

 

지네 신랑만 보여주는 건가 보지 뭐 ㅋㅋㅋㅋㅋㅋㅋ

 

 

너무 하더군요.

그래도 저 때는 제가 돈 걱정 안하고 살던 시절이라

내가 저 날의 물주였구만.

입장료부터 밥 값, 간식 값 까지 내가 싹 다 쏜 날인데

두 아줌마가 진짜 저한테 너무 했어요.

 

 

 

이번엔 친구들하고 간 거니까

민망하려면 더 민망한 상황인데

그래도 어찌 어찌 서로 안 쳐다보고 대충 후딱 잘 씻고 나왔어요. 휴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셔틀 버스 내려서는

하루 종일 아기 보느라 아니면 마눌님들 기다리느라 수고했을 남편들을 위해

지하철 타기 전에 한국 빵집 들러서 각 자 한봉지씩 빵 사 들고.

 

 

집에 와서

감자 고로께 봉지 내밀었더니 저 냥반 입이 귀에 걸리고.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나니 저는 기분 좋은 노곤함이 밀려 들었지만

또 남편 남겨두고 하루 종일 집 비웠으니 저녁 나절 두어 시간 서비스 해주는 셈 치고

이따 밤에 푹 자야지 하고

졸음 참아 가며 남편이랑 풋볼 같이 봐 줬어요.

 

 

이제는 멀리 떨어져 사는 둘째 언니랑 이메일 자주 하고 있어요.

 

 

그 집 아들이 김치볶음밥 해달라고 하면서

엄마가 하는 것 처럼 하지 말고

이모가 하는 것 처럼 해 달라고 요청 했다고.

 

 

제가 하는 김치볶음밥이 사실 그닥 맛있지는 않아요.

그런데 저 집 아이들이 김치 국물이 듬뿍 들어간 스팸 넣은 김치볶음밥을 좋아해서

대충 아이들 좋아하는 대로 해주는데

저 집 엄마 보다는 그래도 제가 조금 더 성의있게 해주니까 그래서 그런가 봐요.

언니는

일단 팬에 김치 국물 들이 붓고 스팸 썰어 넣고 김치 썰어 넣고 불 올린 다음

딴짓 조금 하다 와서 밥 넣고 휙 비벼서 주는데

 

 

저는 그래도 기본 방식은 지켜 주거던요.

스팸 먼저 볶다가 김치 넣어 볶고 그러다 국물 조금 넣어 살짝 졸였다가 밥 넣고

막판에 불 줄여서 10분 정도 놔둬서 누룽지 만들어 주고

따로 계란 후라이도 해서 얹어 주는데

저 집 딸이 자기는 후라이는 됐다고 해서 제 것만 해서 갔더니 후라이 모양새 보고 자기 먹으면 안되냐고.

 

 

너 안 먹는다며 했더니 자기는 엄마가 하는 계란후라이를 생각하고 됐다고 한거래요.

그런데 이건 먹고 싶대요.

계란 후라이도 저는 참을성있게 약한 불에 해서 흰자가 촉촉하게 익게 하는데

둘째 언니는 어떤 음식이던 금방 하는게 최우선 목표니까

계란후라이도 겉으로 다 타면서 벌집 만들듯이 그렇게 하니까 ㅋㅋㅋ

 

 

 

언니가 이메일에 이번에 많이 고마웠다고 썼더라고요.

오랜 만에 너랑 많은 시간 보내서 좋았고

니 덕에 정말 푹 쉬었고

내 새끼들한테 잘 해주니 또 좋았다고.

 

 

 

새 해를 맞아서

남편하고도 생산적인 대화를 많이 했어요.

앞으로 우리 잘 살아 보자...하면서.

이번에 언니 이사 문제로 제가 많이 심란해 하는 와중에

남편이 여러 가지로 많은 이해심을 보여 줘서

제가 남편을 다시금 좀 귀엽게 보는 마음가짐이 생겨 가지고 ㅎㅎㅎㅎㅎㅎㅎ

 

 

 

친정 굵직한 일은 이렇게 또 한 번 잘 치러냈으니

그러느라

명절 둘 다 건너 뛰는 바람에

시골에서 애타게 저를 기다리시는 시부모님 뵈러

이 달 말쯤에 시간 좀 만들어 보려고요.

 

 

 

그냥 저는 이렇게 연말을 보내고

이렇게 새 해를 시작하고 있어요.

 

 

모두들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