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순회 여행을 마치고 돌아 온 막내 시누를 이틀 호스팅하고

그 참에 저희 부부도 시골 같이 올라 갔다 오려다

남편 사정이 그리 안돼서 저희는 다음에 가기로 했어요.

 

 

막내 시누는 여행 떠날 때만 해도 여기는 가을이고 여행은 더운데로 간다고  

반팔 티셔츠 하나 입고

수영복 챙겨서 배낭 하나에 짐 꾸려서 갔는데

석 달 후에

그녀가 다시 찾은 조국의 날씨는

 

 

혹한!!

 

 

남편이 공항으로 마중 간다고 나서는 길에

제 패딩 중에 제일 뜨신 거,

스웨터,

두꺼운 양말,

장갑,

목도리에 털모자까지

완전 패키지로 싸서 가방 하나에 차곡차곡 넣어 줘서 보냈네요.

 

 

 

남편이 동생 마중 가는 길에 저도 길 함께 나서서

저는 김치랑 단무지랑 파게티 소스랑 또 이것 저것 챙겨서

엄마한테 다녀 왔고요.

 

 

동네서 비싼 배추 사서 담그느라 조금씩 밖에 안 담갔는데

자꾸 이게 맛있게 되는 거예요.

원래 저 김치 그닥 맛있게 못하거든요.

나 참...

재수좋게 맛있게 돼서 혼자 먹기는 너무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반절 덜어다 갖다 드렸어요.

 

 

20년 하고도 더 전에

뉴욕에 처음 왔을 때의 뉴욕 겨울의 기억은

서울 겨울처럼

그냥 똑같이

겨울이니까 춥구나,

어떤 날은 칼 바람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도 같고

발도 시렵고

그래도 난 여전히 멋낸다고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고

모자같은 건 쓸 생각도 않고

장갑도 잘 챙겨서 끼지도 않고 그랬었는데

 

 

 

언젠가 부터 뉴욕 겨울이 그렇게 춥지가 않은 거예요.

 

 

나이 먹었다고 몸을 더 싸매고 다녀서 그랬을까

아무튼지

지난 몇 년은 혹한의 기억이란게 거진 없는데

올 해 제대로 다시 춥네요.

참으로 오랜 만에 '살을 에이는 추위'를 실감하고

일기 예보가 일러주는 대로

착실히 온 몸을 꽁꽁 싸매고 돌아 다녀요.

 

 

밖이 추운건 싸매고 다니면 그만인데

밖이 추울수록

아파트 안 난방은 더 빵빵하게 돌아가서

이거 팔이고 다리고

얼굴이고

너무 건조해서 말이 아니더라고요.

 

 

 

얼굴은 원래 포기하고 산 지가 오래라

별로 관심 조차도 두지 않는데

제가 둘째 언니한테 이번에 마음을 고쳐 먹었다고 선언을 했어요.

 

 

그간

내적인 아름다움에만 너무 치중을 하고 사느라

외적인 아름다움이 쳐진 것 같아

균형을 맞춰 보기로 했다..

 

 

 

이러면서 얼굴 마사지를 시작했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저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다른 때 같으면 '지랄하네' 하고 한 마디라도 하고 다른 얘기로 넘어 가던데

이번엔 아무 대꾸도 없고.

 

 

어쨌든,

 

 

 

 

사람이 돈을 쓰는데는 다들 우선순위가 있잖아요.

 

 

저는 화장품 사는 돈을 많이 아까워 해요.

여름에도 썬블락 따위가 뭐냐 이러고 맨날 맨 얼굴로 다니고

뭐 세수도 그닥 열심히도 안해요.

화장하고 나갔다 온 날도 이중 세안 이딴거 없어요.

그냥 비누로 한 번.

 

 

얼굴은 엄청 두꺼워서

말 그대로 얼굴이 두꺼워요.

모공이고 뭐고 말 해 봐야 입 아프고

생 후 일 개월 부터 쯤은 있었던 듯 한 주근깨에

총체적 난관이지만

그래도 장점 하나를 말하자면

얼굴이 이렇게 두꺼워서 화장품은 뭘 발라도 뒤집어 지거나 이런 일은 없어요.

 

 

그래서 주변에

피부 민감한 사람들이 뭐 사서 바르다 안 맞는다고 하는거

그거 다 저한테로 와요.

저는 절대로 안 뒤집어 져요.

 

 

샘플도 몇 개씩 써 보라고 쥐어 주고

 

 

이런 식으로 산 것이 거진 이십여 년.

기초 화장품이란 걸 사 본 기억이 거의 없어요. 흐미...

색조 화장 쪽은 지금도 넘쳐요. 내 돈 주고 산 것은 하나도 없는데.

 

 

주로 사는 것은 드럭 스토에서 사는 립글로스인데

이 것 만도 한 번 살 때 마다

속으로 돈 아깝다...이러면서 사요.

 

 

 

얼굴에 수분이 너무 없어서

화장도 안 받고 한 지도 오래 됐지만

아...이런 것까지 신경 기에는 제 인생이 너무 공사다망해서

그냥 얼굴은 아예 신경을 안 쓰고 살기로 한 것도 있고.

 

 

그러다 이번에

외적인 아름다움에 힘 쏟기 프로젝트를 선언하면서

 

 

계기는,

지난 번 친구들하고 스파 다녀 온 거,

어설프게 땀 조금 빼고

목욕탕 들어가서 씻고 나왔을 뿐인데

화장 먹는게 벌써 다른 거예요.

흐미...

 

 

이거 한 번 노력을 해 봐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인터넷에서 천역팩 검색 조금 하다

제일 쉬워 보이는 바나나 팩을 한 번 해 봤는데

괜찮았어요.

 

 

잘 익은 바나나 한 개 마구 주걱으로 으깨서

꿀도 듬뿍 두 스푼 넣고

계란 한 개 까 넣고 (노른자 흰자 몽땅)

밀가루는 저어 가면서 넣었어요.

안 흘러 내릴 만큼 걸쭉하게.

 

 

그래서는

 

 

퍽 퍽 시원 시원하게 얹어 놓고

한 시간 쯤 누워서 남편이랑 텔레비젼 보다가 씻어 냈더니

좀 촉촉해진 것도 같아요.

 

 

좋은 화장품 쓰는 건 원래 피부가 좋은 사람들이나 해야 보람이 있는 거지

나같은 얼굴엔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해 오다

이참에 나도 좋은 수분 크림을 하나 사서 써 봐야 할까나...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고.

 

 

 

노여사가 셋째 성한테

막내가 바나나 팩을 했다고 하던데

얼굴이 아주 고와졌더라고 하셨더니

셋째 성도 당장 실행에 옮기더라고.

 

 

김치 배달 잘 하고 집에 와서는

공항에서 돌아 온 남편과 시누를 맞이했어요.

 

 

시누는

베트남에서 두 달 조금 넘게

그리고 나서는 라오스에서 두 주,

캄보디아에서 두 주 이렇게 여행하고 왔는데

선물은 다 마지막 기착지였던 캄보디아에서 샀다고 하면서

남자들 것은

티셔츠 한 장씩,

후추가 아주 좋다면서 한 통 사왔다고 저 조금 덜어주고

여자들 선물은 맞춤형으로 하나씩 샀다는데

제 것은 무지하게 마음에 들어요.

 

 

하와이 살 때도

큰 시누는 선물이라고 뭘 가져와 본 적이 없는데

막내 시누는 항상 뭘 챙겨 오더라고요.

본인이 입고 다니는 건 털털 그 자체인데

눈썰미나 감각이 나쁘지 않아요. 전혀.

저한테 준 게 수영복 커버 업이 두 벌인데

칫수는 저한테 아주 잘 맞는거 용케도 잘 골랐고

모양과 디자인도 다 예뻤어요.

 

 

여름에 시댁 가서 호수에 수영하러 가면서 막내 시누가 준 커버 업 입었더니

둘째 시누가 너무 이쁘다고 난리길래

리디아가 준 거야, 했더니

눈에서 불이 이글이글.....

나도 똑같은 걸로 사 보내라고 해야지.

이러면서 확 돌아 서더라고요.

무서웠어요.

 

 

그 집은 남편 것, 아이 것 해서 자기 언니 것 까지

플립 플랍 세 켤레 돌렸는데

자기는 이런 이쁜거 안 사다 주고 저만 이런거 사다 줬다고 그 뜻이겠죠.

 

 

이번엔

남자들은 다 티셔츠니까 그런 거 알겠죠.

저 집 딸래미랑 둘째 시누 것으로는 뭐가 갔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저는 또 대박이예요.

 

 

이번에도 주면서 수영복 위에 커버 업으로 입으면 될 거라고 하는데

입어 보니까

그렇게 입기엔 좀 아깝고

여름에 원피스로 밖에 나갈 때 입으려고요.

막 보석도 박혀 있고 그래요.

제가 옷에 보석 박혀 있는거 엄청 좋아하거든요 ㅋㅋㅋ

 

 

이번에도

칫수도 어쩜 이렇게 잘 골랐는지

몸에 너무 잘 맞는 거예요.

 

 

제가 입고 휘리릭 한 바퀴 돌면서

캄보디아 여왕 된 기분이라고 하니까

남편이랑 시누가 좋아서 막 박수 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까지는

혹한의 날씨에

그런대로 훈훈한 가족 간의 정을 나누는 이야기 였는데

 

 

인생이 또 뭐 그렇게 훈훈하기만 한가요.

 

 

기분좋게

마음깊이 우러나서 막내 시누 잘 호스팅하고 부모님 댁으로 보냈더만

남편이 생각지도 않게

저한테 섭섭했다 하더라고요.

 

 

막내 시누가 헤어지는 인사하면서

아이 러브 유 를 저한테 세 번이나 했는데

제가 한 번도

아이 러브 유 투

이 말을 안 했다고.

자기는 당신 식구들한테 항상 아이 러브 유, 사랑해 하는데

당신은 자기 동생한테 그 말을 안 해 줬다고.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

 

 

 

저는 저 말을 들었는지도 기억에 없어요.

그저 집 떠나 보낼 때 제 패팅 코트 입고 가라는데 끝까지 안 입고 간다고 해서

그 걱정하느라

그저 안아주고 다음에 언제 보자 이 말 하느라고.

 

 

그 말을 설사 내가 안 했어도

그 말을 안하면

내가 당신 막내 여동생 사랑 안하는 거냐? 이러면서 말싸움 하다가

당신이 나랑 산지가 몇 년인데

여기까지 말하다

 

 

갑자기 너무 열이 나는게

 

 

내가 왜 이걸 이 사람한테 설명을 하고 있지?

 

 

싶어서

 

 

한국말로 막 퍼 부었어요.

 

 

대차게.

 

 

못 알아 들어서 답답하면 지 사정이고.

 

 

 

그러고 있는데

당분 간 안 놀아 주기로 결심한 큰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길래 받았더니

 

 

벌벌벌 떠는 목소리로

 

 

막내야.......

(벌벌벌 벌벌벌)

언니.....교통 사고 났어...

 

 

아우 진짜.

 

 

나는 또 친정에 일 터졌으니

부부 싸움은 이걸로 마무리 하고.

 

 

일단 경찰 부르고

경찰 오거든 횡설 수설 하지 말고

영어 잘 못한다고 하고 통역 필요하다고 하고.

일단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있어!!

 

 

그 집 아들 전화 오고

엄마 전화 오고

 

 

에어백까지 터졌다고 해서 걱정 많이 했는데 큰 사고는 아니었고요.

저는 이래서 또 할 일이 생겼어요.

아무래도 큰 언니네 가서 밥을 며칠 해줘야 할 것 같아요.

게으른 인생에

할 줄 아는거 밥 밖에 없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이런 일이 생기는가 봐요.

 

 

남편도 보기 싫은 참에 잘 됐죠 뭐.

 

 

바나나 팩으로 화사해 진 얼굴에 화장 곱게 하고

언니네 가서 밥이나 열심히 해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