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남매 연주단.

 

 

시골 부모님 댁에 가면

남편이랑 둘째 시누가 항상 합주를 해요. 가족음악회.

남편 기타, 둘째 시누 바이올린.

 

 

남편이 언제 시내 내려와서

오픈 마이크 하는 술집가서 둘이 합주하자고 말을 몇 번 던졌었는데

이번에 진짜 행차를 했더랬습니다.

관객 동원력까지 보여 주면서.

 

 

막내 시누 당연히 따라 붙었고

아이는 친할머니한테  하룻밤 맡기고

그 집 남편도 같이 왔고

외곽에 사는 친구 부부도 왔고

맨하탄 미드타운에 거주하며 저 사람들 다 재워 주기로 되어 있었던

베이스캠프 제공자 친구 한 명 또 있었고.

 

 

자기들끼리도 잘 놀테니 저는 꼭 낄 필요는 없었는데

냉정하게 보자면 남편 쪽 관객은 저 밖에 없잖아요.

와 줬으면..하더라고요.

아...귀찮은데...

맨하탄 밤 마실이면

머리니 화장이니 의상이니...아 신경쓸게 많은데...

 

 

 

베이스캠프에서 연습 겸 해서 일찌거니 모이기로 했다는데

저는 거기 빠지고

그냥 술집에서 바로 만나는 걸로. 하고

치킨 샐러드, 볶음밥하고 에그 드랍 숲, 시금치 된장국 있는데 뭘로 먹을래?

했더니

 

 

된장국 주세요. 하길래

된장국에 밥 말아서 먹여 내보내고

 

 

저는 일단 머리에 롤부터 말았어요.

뭐 입을지는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옷 입을거 정하고 나서는 

눈 화장도 좀 해볼까 해서 시퍼런 아이새도우 처덕처덕 바르고

그 위에 20대 시절 쓰던 반짝이가 어디서 굴러 나오길래

반짝이도 눈덩이 위에 듬뿍 바르고

 

 

치마는 무릎 바로 밑 길이 쫘악~ 붙는 검정색 펜슬 스커트를 입었고

이게 배부터 쫙 조여오는 스타일이다 보니

상의는 가슴하고 팔은 타이트하고 배에서 꽃 봉오리처럼 확 퍼지는

복부 비만 친화형 디자인으로 갖춰 입고,

 

 

마지막으로 머리는 포니테일로.

 

 

나이가 먹으면

왜 얼굴이 자라는 걸까요?

안 그래도 평생 싸이즈로 절대 안 밀리는 엑스트라 라지 얼굴이

점점 더 커지네요?

 

 

지금 보자...

상의는 배 부터 너풀거리고

위 아래 다 블랙이라 포인트 준다고

이미 눈덩이에 시퍼런거 발라 놓고 반짝이까지 뿌려 놨기 때문에

머리를 풀어 헤칠 수는 없는 거예요.

똥머리를 하자니 아침부터 진즉에 말았던 롤로 나온 웨이브가 아까워서 안되겠고.

묶은 뒷모습은 웨이브가 잘 나와서 흡족했어요.

앞모습이 큰 사단인거죠.

아...진짜 크네...

 

 

 

내가...양심이 없는 인간은 아니예요.

아무리 미의 기준이 엉망진창인 남편이 공주병을 키워 놨다고 해도

나도 거울 볼 줄 알고

남편 외의 주변인들 의견도 뚫린 귀로 들을 줄 알고

내가 내 원래 얼굴 크기를 모르는 바도 아니었고

 

 

요렇게 머리를 올백으로 묶었을 때

스무살 청년이 반해서 쫒아올 만큼의 멋진 비쥬얼이 나올 것이다,

 

 

설마 이런 생각을 했겠어요.

나는 얼굴에 기름기도 없는데.

 

 

나는 내 주제를 알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진짜 좀 슬프기까지 하다...

많이 우스꽝스러운 걸.

 

 

 

잠깐, 아예 외출 자체를 없던 일로 할까 고민했다가

그냥 나갔다 왔어요.

내가 뭐 거울 쳐다 보면서 놀 것도 아니고

이 모습 남들이 보지 내가 볼 거 아니잖아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쿡쿡 웃음까지 나면서 기분이 괜찮아 졌어요.

 

 

술집에서 6시에 만났으니까

두어 시간 잘 놀고 나왔더니 그래도 초저녁이었고

남매 연주단의 공연도 그런대로 괜찮았고

다들 기분들이 좋았어요.

이제 베이스캠프로 가서 밥도 배달시켜 먹고 술도 더 마시고 놀자~~

이런 참이었는데

 

 

남편과 미리 합의한 저의 계획은

저는 딱 술집에서 노는 것만 하기로 했었거든요.

뒷풀이까지 가서 놀면 저는 너무 피곤하고

저렇게 밖에서 늦게까지 놀다 지하철 타고 집으로 오는거 제가 싫어해요.

저는 자가용하고 택시 마니아이기 때문에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은 기사달린 차도 없고 펑펑 쓸 돈도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내가 소화 가능한 스케줄만 감당하기로.

 

 

 

저 시점에

베이스캠프 제공자가 술이 이미 좀 취한 상태였고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고

주책이 주책을 알아 본다고

저랑은 처음 술 마시고 놀아 보는 거였는데

완전히 저한테 꽂혀 가지고

팔 붙잡고 안 놔 주는거예요.

가긴 어딜 가냐고. 이제 시작인데.

 

 

 

저는 속으로

'오 이거 완전 한국식인데?'

좀 웃겼는데

남편은 여기서 심기가 상했어요.

나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강요'를

왜 내 동생 친구가 내 부인한테 하는지 그 자체부터 언짢아 져서

지하철 역까지 자기가 에스코트 해주고 자기는 베이스캠프에 합류 하겠다,고

완강하게 나오는데

제가 남편한테 들렀다 가겠다고 말했어요.

술집에서 지하철 역 까지는 한참이고

그 집에서 지하철 역은 가깝다고 하니

지금 저 알딸딸한 사람하고 몸싸움 하느니 그냥 갔다 가는게 낫겠다고.

 

 

그 술집에서 집까지는 스트릿으로 열블락 정도 였는데

저 베이스캠프 제공자가 택시를 후딱 잡아서 저를 태우고

나머지 사람들은 알아서 택시 타던지

걸어 오든지

빠이빠이~~ 하고는 슝~~

 

 

 

그래서

계획에 없던

미드타운 파크 애비뉴의 럭셔리 아파트라는 것을 구경을 하고 왔어요.

 

 

 

저 베이스캠프 제공자는

둘째 시누의 대학 동창으로써

제가 참 부모를 잘 만나면 평생 저리 팔자 좋게 사는구나 하면서 붙여준 별명이

그 시골 동네 이름 따서

'델하이 패리스 힐튼' 이거든요.

 

 

 

저 아파트는 저 델하이 패리스 힐튼 양 소유 아니고 친구 집이요.

부잣집 자식들은 또 그 세계의 다른 부잣집 자식들과 어울려 노는 물이 있으니까

어려서 부터 집안끼리 잘 아는 그런 친구 집이래요.

이 시골 동네 패리스 힐튼 양을 한 큐에 '없는 집'으로 만들어 버리는...

 

 

저 집주인은

주 거주지는 런던이고

여기 저기 마음에 드는데 아파트니 집이니 하나씩 마련해 놓고

작년에 마흔 살 생일 파티는

친구들 불러서 스위스에 있는 별장에서 조촐하게 한 달 간 하고

(제가 그 때 델하이 패리스 힐튼이라고 별명을 지어 줬거든요.

친구 생일 파티 참석 차 스위스 가서 한 달 놀고 온다길래.

이야~~ 그 사람 팔자 좋구나. 같은 백수인데 나랑 이렇게 삶의 질이 다르네.

이런 경우엔 비행기 값은 생일인 사람이 대주나? 아니면 참석자가 하나?

이러고 궁금해 하다가

아니 한달씩이나 모여 노는 스케일들이 찌질하게 비행기값 걱정을 할리가 없잖아요.

나도 참...저런 물에서 놀아 보질 못했으니)

 

 

 

뉴욕은

일년에 채 두 달도 안 머문다니까

소박하게

세븐 밀리언하는 아담한 아파트 한 채,

요렇게 마련해 놓고 사는 거지요.

 

 

 

뉴욕에 사는 친구한테

집 간간이 들여다 봐 달라고 부탁도 하고

자기 없는 동안은 그냥 방 하나 차지하고 살아도 된다 하고

그래서 저 델하이 패리스 힐튼양은

자기 집인양 이렇게 시골과 시내 변두리에 사는 소시민 친구들하고 모여 놀게 되면

친구들한테 까지 잠자리도 제공하고.

 

 

 

남편이 저기 처음에 보고 와서

얼마나 호들갑을 떨어 대던지...

저보고도 꼭 언제 한 번 구경가야 한다고요.

화장실 바닥이 대리석인데

변기도 어찌나 반짝반짝한지 죄책감 들어서 쉬야도 편하게 못 하겠더라나..

 

 

 

저는 뭐,

집 좋은거는 인터넷으로 구경 다 할 수 있잖아요?

여기만 봐도 올라오는 집 사진들 잘 보고 있어요.

내 집도 아니고

나 아는 사람 집도 아닌데

뭐하러 집 구경하러 맨하탄까지 나가요.

 

 

 

럭셔리 아파트 집주인이 싱글인데

남편도 없고 아이도 없는 독신 여성이니까

큰 아파트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또 조촐하게 유닛 두 개만 사서 하나로 텄는가 봅니다.

집 값이 세븐 밀리언이니까

공사비는 껌값 들여서 싹 다 털어 수리하고.

힐튼양이 집구경 시켜 주면서 매스터 베드룸 침대에 누워 보라고 난리를 쳐서 누워 봤더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코 앞에 있더라고요.

 

 

 

아 이거 감탄사 쏟아 내라고 지금 이거 시킨거 같은데....

 

 

해야 죠 뭐.

 

 

 

와우 와우 오 마이 갓.

 

 

해주고 일어 났어요.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최소 한 번씩은 왔었던 방문객들이라

저만 집구경 따로 했어요.

집구경 마치고 사람들 자리 잡고 있는 거실로 합류해서

샴페인 잔 들고 우아하게 소파에 앉는데

다들 소감 한 마디를 바라는 얼굴로 저를 쳐다 보길래

샴페인 한 입 홀짝 하면서

 

 

혼자 살기 아담하고 딱 좋네~

 

 

했더니

다들 까르르르~~~~~~~~~

 

 

남편이

역쉬 우리 부인은 배포가 커요 하는 얼굴로 흐뭇하게 보고 있고.

 

 

 

그런데 농담 한 마디 끝내고 나니 바로 현실감이 와서요,

 

 

 

이거 마시다 소파에 엎지르면 어떻게 되나?

 

 

하고 좌중을 향해 물었더니,

 

 

난 그래서 아예 여기 앉았잖아요.

 

 

막내 시누, 바닥에 양반 다리하고 앉아 있더만요.

 

 

이 얘기 듣고 둘째 시누 또 까르르르~~~~~ 하더만

나도 아예 그래야 겠다,

이러고 바닥에 철퍼덕.

이번엔 다같이 까르르르~~~~~~

 

 

아.....

이 알아서 기는 소시민들이란...

 

 

저는 치마를 입었으니까 앉기는 그냥 소파에 앉고 술 잔만 바닥, 발 옆에 얌전히 놓았어요.

원래도

맨날 흘리고 엎지르고 이런거 전문인데

이런 상황의 남의 집에서

소파에 술 엎지르고 싶지 않았어요.

뭐든 너무 좋은건 나를 불편하게 해요.

저는 그래서 너무 비싼 물건, 너무 비싼 식당, 너무 비싼 집,

이런 너무 비싼 것들 싫어요.

너무 비싸다 보면

나를 편하고 기분좋게 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주객이 전도가 돼서 내가 전전긍긍하게 돼서 싫어요. 불편해요.

 

 

 

인도 음식 배달시킨거 와서 맛있게 먹고 샴페인도 한 잔 더 마시고

저녁 식사 후 술이 더 취한 델하이 패리스 힐튼 양께서

노래 부르고 춤 추길래 그거 구경하고

남편은 더 놀고 싶어 했으나

이제는 저 혼자 지하철 태워 보낸다는건 남편으로썬 할 수 없는 일이고

저는 남편과 같이라도 절대 지하철을 타고는 집에 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어요.

토요일 밤이라 지하철 평소보다 드물게 다니고

거기다 또 한 번 갈아 타야 하는데 말이죠.

 

 

 

빼닥 구두를 신고 외출하신 이 부인님은

오늘도 기네스 석 잔에 샴페인 두 잔을 섞어 마시고야 말았다..이 말이죠.

 

 

 

다행히 그 동네가 미드타운이고 저희는 강 건너면 바로인 동네라

택시값도 얼마 안 나왔어요.

돈 조금 쓰면 이렇게 편한 세상.

 

 

 

세븐 밀리언 짜리 아파트는 부러움의 스케일을 넘어 가는 거라

별 감흥이 없었고요

재미나게 술 마시고 논 밤에

택시타고 집에 오는건 행복했어요.

 

 

 

저희 부부 배웅해 주면서

델하이 패리스 힐튼양이

다음 번에는 꼭 케이 타운으로 뜨자고, 자기 노래방 정말 가고 싶다고.

꼭이야 꼭~~약속~~~

 

 

면전에서야 당연히 오케이 오케이 했죠.

어차피 저나 나나 술 들어 간 정신머리는 똑같으니까.

속으로는

아휴 나는 너처럼 좋은 팔자가 아니란다,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노래방 놀러 다니라고

몇 만불씩 생활비로 찔러 주는 아버지가 나는 없거든.

 

 

 

남편은 흥분을 잔뜩해서 그런 집구경한 소감이 어떠냐고 하는데

그 날도 그 다음 날도 제가 시큰둥하니까

김이 새나 봐요.

 

 

 

그런데 저는 뭐랄까...

인터넷에서 수 많은 예쁜 집들과 식탁, 소파 이런거 많이 보아 왔는데

이 집은..그런거 있잖아요.

내 취향은 아닌거.

내가 돈은 없지만 취향까지 없는 건 아니잖아요?

내 취향이 아니니 별 이렇다 할 감동이 없더라고요.

감동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좀 화까지 날 정도였다고 해야 하나.

 

 

 

머리부터 발 끝 까지 저게 분명 다 비싼거 걸친 걸텐데

결과는 총체적 촌스러움인 연예인 사진 봤을 때 느끼는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어떤  잔잔한 울화같은 거랄까...

 

 

그래 돈 쳐 바르고 그것 밖에 안돼냐!

 

 

뭐 이런거.

 

 

부엌을 갔더니

아 나도 저런데서 밥 해 먹고 싶다...이런게 아니고

이상했어요.

식탁도 이상하고

더 이상한 건

아파트 두 유닛을 통째로 만드는 대공사를 했으면서

부엌과 다이닝 룸의 동선도 너무 이상하고.

바닥도 그냥 그렇고

천정은 요상하게 촌스럽고

아무리 전망에 목숨 거는 서양인들이라지만

이게 엠파이트 스테이트 빌딩이 한 눈에 보여서

맞은 편 유닛들보다 프리미엄이 붙은 걸텐데

 

 

 

나는

매스터 베드룸에 발코니가 있고

그 발코니에 서면

앞으로 에메랄드 빛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러면

웃돈 얹을 의향이 있지만,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높은 빌딩에 불 들어와 있는거 봐서 뭐해?

 

 

 

하고 아주 천진난만한 얼굴로 남편한테 물었더니

(정말 비꼬는 표정 아니고요)

남편이 더 이상 할 말 없다는 듯이 돌아서서

더 이상 그 집 구경한 감상을 안 물어 봐요.

세븐 밀리언짜리 맨하탄 아파트가 이 여자한테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닌가 보네..

이런 생각을 하는 듯.

 

 

 

그런데...

 

 

 

다음 번에 또 와서 놀자고 초대해 주면

다시 갈 의향은 있어요.

모 인테리어 내 취향 아닌게 대수인가요.

내 집도 아닌데.

 

 

맨 정신에 다시 보면 또 내 취향일 수도 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돈 많은 사람들이랑 잘 지내서 손해 볼 것 없잖아요.

뭐가 콩고물이 떨어졌음 떨어졌지

나한테 다단계 물건 팔아 달라고 귀찮게 할 것도 아니고.

나도 노는 물 좀 업그레이드 시켜 볼까나.

 

 

 

아 맞다~!

남편이 저 델하이 패리스 힐튼 양 한테서

저 프라다랑 코치 가방도 예전에 한 번 얻어다 줬었어요.

노래방 가자고 하면 한인 타운으로 성심성의껏 안내해 줘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