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 밤에 5월을 시작하는 수다 글을 올렸다가

수정 한답시고 삭제 버튼을 눌렀나 봐요.

 

 

날려 봐야 별 얘기도 아니었으니...

오늘 아침 먹고 다시 시작.

 

 

뉴욕은 이제서야 조금 날이 포근해 졌고

저는 화분에 텃밭 농사를 시작했는데

동네 새들한테 소문이 퍼진 것 같아요.

작년까지만 해도 깻잎 몇 장이 새 주둥이에 뜯긴 흔적이 발견은 됬었으나

피해가 그리 크지는 않았는데

 

 

올해는

깻잎 아홉 뿌리를 정성들여 화분에 일찌감치 따로 심어 주었는데

사흘 만에 그 어린 잎들이 새들의 공격을 받아 다 뜯겼어요.

 

 

충격이 너무 커서

일단 깻잎 모종을 다시 사오는건 보류 중이고

쑥갓이랑

부추는 집 안 창가에서 키우고 있어요.

저것들도 다 뜯어 먹힐까봐 밖에 못 내놓고 있습니다.

 

 

깻잎, 쑥갓, 부추는 밖에서 키우고

집 안 창가에는 서양 허브들 키울 계획이었는데

지금 실망이 큽니다.

새들이 왜 깻잎 맛을 알아 가지고...

지네들이 삼겹살 먹는 것도 아니면서.

 

 

 

지난 번 포스팅 이후로는

별다른 일은 없이

슬픔과 우울과 분노와 뭐 이런 걸로 지냈어요.

다들 그러시겠지만.

 

 

그 와중에

저희 집 여사님 생신이 있어서

생신상 차려서 식구들 불러서 잔치했고요.

 

 

어른 생신 상 답게 메인은 갈비찜으로 하고.

푹 끓인 미역국에

잡채랑

노여사 엄청 좋아하시는 청경채 겉절이 하고

내가 먹고 싶어서 골뱅이 무침.

평소에 안해본 것 하나 생색용으로 한다고

월남쌈 처음 해 봤는데 괜찮았어요.

 

 

저희 집에 와서 밥 먹을 때는 방문객이 빈 손으로 나가는 적이 없거든요?

먹다가 음식이 모자란다, 이런 건 저는 상상할 수도 없고

잔뜩 먹고 그래도 남아서 이것 저것 손에 들고갈 만큼 보통은 그렇게 하는데.

그런데 이번엔 제가 식전에 미리 선포했어요.

오늘은 싸가지고 갈 것은 없다. 미역국 밖에.

갈비도 5파운드 밖에 안 했고

잡채도 500g 한 봉지 밖에 안 했고

그냥 실컷 드시고나 가시라고 했는데

 

 

상 위에 먹다 남은 것들을 싹 다 싸가지고 갔어요.

 

 

저는 손님 치르느라 잘 못 먹으니까 손님들 가고 나면 먹다 남은거 저녁에 먹으려고 했는데

갈비찜은 남편이 워낙 좋아해서 남편 먹을 걸로 몇 점 겨우 남기고

 

 

먹던 갈비찜에 잡채에 골뱅이에 월남쌈에 다 탈탈 긁어서 싸갔어요.

냉장고에 있던 평소 밑반찬까지 끌어 내서

집에 있는 빈 통 다 꺼내서 싸주고 나니까

큰 조카양이

 

 

이모...근데 밥도 되게 맛있었는데...

 

 

헉! 밥도 싸줄까?

 

 

그래서 밥도 싸줬어요.

자기 내일 아르바이트 하러 가는데 도시락 싸갈거라고 해서.

 

 

 

그래서 여사님 해피하게 생신상 잘 차려 드리고

돌아 오는 주말엔

남편이 시골에서 돼지 한 마리 통 구이 하면서 먹고 노는 잔치에 연주 일정이 잡혀 있었어서

저도 같이 다녀 올 계획이었거든요.

시골가서 좋은 공기 마시면서 기분 전환도 하고

시어머니 마당에서 잡초처럼 마구 자라는 민트도 한 삽 퍼오고 그러려고 했는데

가기 전 날 커피 따르다 허리 삐끗해서 못 갔어요.

 

 

 

커피 팟이 무거운 것도 아니고..

그냥 매일 하던대로 머그 컵에 쭈욱 따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우드드득 하는 느낌이 나더니

하늘이 노래 지더군요.

정말 아팠어요.

 

 

남편은 제가 같이 간다고 신이 나서

밴드 친구들한테 전화를 대여섯번 씩은 했는데.

저 사람이 돼지발 좋아하기 때문에 그거 우리가 확보해야 한다고요.

협조를 부탁한다고.

저 사람 꼭 돼지발 먹여야 한다고.

 

 

남편 보내고

혼자 집안에서 어기적 어기적 거리면서

밖에 저렇게 햇빛이 좋은데 나가지도 못하고 아이구야...속상하더군요.

그래도 딱 사흘 고생하고 지금은 멀쩡해요.

오래 안 가서 참 다행.

 

 

 

허리 때문에 공원으로 산책도 못하는데 밥이라도 잘 챙겨 먹자 해서

왕창 끓여 놨었던 김치찌개 데워 먹는 중간에

김밥 싸 먹고

떡볶이 해 먹고

밀가루 반죽해서 손칼국수 해 먹고

손칼국수 먹으려고 배추 겉절이도 처음 해 보고

맛이 괜찮게 됐길래 겉절이 마니아이신 노여사님거 따로 덜어 놓고.

 

 

 

친구한테 이 얘기 했더니

무슨 허리 아픈 사람이 손칼국수냐고.

많이 안 아팠구나ㅎㅎㅎ

합니다.

 

 

먹겠다는 일념으로 바닥에 도마 놓고 기면서 밀었다고요...

 

 

 

 

 

 

 

 

 

 

 

 

 

 

 

 

 

 

 

 

 

 

바지락 칼국수가 먹고 싶었던 거였는데

생선 가게에서 조개를 사다 넣을까 하다 집에서 조개 손질 한 번도 안 해 봤어서 자신이 없었어요.

수퍼마켓에서 캔 조개 사다 넣었어요.

 

 

 

 

 

 

 

 

 

 

 

 

 

 

 

 

 

 

 

 

 

저는 익은 김치 좋아하고

배추 겉절이는 오로지 칼국수 먹을 때만 먹어서

이번에 처음 해 봤는데 다행히 괜찮게 됐어요.

 

가끔 하는 청경채 겉절이는 아예 안 먹어요.

오로지 여사님 드리려고만 해요.

 

 

일요일 밤 늦게 남편이 집으로 돌아 왔고

토요일에 있었던 잔치에는 사람이 별로 안 왔었대요.

그 산골 동네 날씨가 별로 안 좋았었다고.

시어머니가

사람 많이 안 왔으면 돼지 발 챙겨오지 그랬냐고 한 소리 하셨답니다.

 

 

 

저 사람이 그리 세심할 리가 있겠어요.

연주 끝나고 자기 맥주 퍼 마시느라 정신 없었겠지.

 

 

 

 

이제 봄이 왔어요.

긴 겨울 지나고 봄이 마침내 왔으니까

잘 챙겨 먹고 힘내서 저도 여기 저기 쏘다녀 볼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