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여에 걸친 냄비밥 생활 청산하고

이쁜아짐, 드디어 밥솥을 장만 했습니다.

그것도 압력으로다. 크으...

 

 

친구 집에 놀러 가서 밥 얻어 먹으면서

조만간 밥솥 구매할 의사를 공표하면서

걱정을 했더랬습니다.

 

 

한 그릇 뚝딱 먹고 두 그릇 째 퍼서 먹으면서

지금도 탄수화물 과다 식생활이라 줄여도 시원찮을 판에

압력 밥솥 사서 밥이 이렇게 맛있게 되면 과연 얼마를 더 먹게 될지

심히 우려가 된다고 말했어요.

 

 

 

 

 

 

밥솥을 사 왔습니다.

코드 꼽고 버튼 한 번 눌렀더니 밥이 저절로...으아...

이 편한 세상.

 

 

물 조절 신경 안 써도 돼,

불 조절 신경 안 써도 돼,

자기가 알아서 뜸까지 들이고

아...전기 밥솥이란게 이렇게 신통방통한 것이었구나...으아...좋다.

 

 

 

이 이후는

제가 우려했던 일이 계속 벌어졌음이요.

 

 

그러는 와중에

노여사를 만났는데 셋째 성이 노여사 편에 저 읽으라고 책을 두 권 보냈더라고요.

뜬금없이 셜록 홈즈 단편 하나랑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인데 오~ 이거 재밌었어요. 아주 마음에 듬.)

헝거 게임.

 

 

저는 헝거 게임이 3편이나 되는 시리즈인 줄도 몰랐고

대충도 어떤 얘기인지 전혀 몰랐어요.

주연 여배우가 활 잡고 있는 영화 포스터 본 기억 밖에는.

 

 

플랏이 대충 어떻게 된건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책이 손에 들어 왔으니까 읽기는 시작했는데

초장부터 여주 캐릭터 양다리 스멜.

이거 또 트와일라잇 여주처럼 왕짜증 캐릭터인가 싶어 불안했는데

 

 

 

벨라처럼 심한 어장 관리는 아니라서

다행이었어요.

왔다리 갔다리, 이쪽도 걸쳐 저쪽도 걸쳐,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요, 이러는 나도 힘들다구요,

거기다 나는 꾸미고 치장하고 이런 보통 여자들이나 하는 짓에는

도통 관심도 없구만, 다들 나한테 반하네, 이해가 안 가네, 난 아무 것도 몰라요,

아주 내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

1편 읽으면서는 정말 재밌었는데 뒤로 갈수록 짜증만 나고 내가 왜 이런걸 읽고 있나 회의가 들고

그러다 결국 마지막이 브레이킹 돈 이던가요?

이건 제대로 읽지도 않았어요.

 

 

 

셋째 성이 준 건 1권 뿐이라

재빠르게 2, 3권은 도서관에 신청해 놓고.

 

 

 

전기 밥솥이 지어주신 뜨신 밥에

간장, 참기름 넣고 비벼 김치에 뚝딱

한 그릇 먹고 아쉬워서 또 한 그릇 뚝딱

 

 

그리고...

 

 

책 들고 방으로 가서 침대에 누워 독서 시작.

 

 

책 읽다 출출해지면 설렁설렁 부엌으로 나와서

돼지 목살에 감자, 양파, 두부, 호박에 매운 고추 넣어

야외 캠핑가서 코펠과 버너에 끓여 먹으면 맛있다는 고추장 찌개를 끓여

또 밥 한 그릇 뚝딱.

 

 

불러 나온 배를 어루만지며 책 들고 다시 침대로.

 

 

또 출출해지면 나와서

잡곡밥만 계속 했으니 백미도 한 번 해보자 하고

이 또한 환상으로 잘 지어주신 전기 밥솥에 감사하며

꼭 짠 배추김치와 양념 간장만 넣은 김치 김밥을 말아

한 줄 뚝딱, 두 줄 뚝딱.

 

 

아보카도 잘라서 김에 싸서 먹으면서 한 그릇 뚝딱.

소고기 넣고 해장국 푸욱 끓여서 한 그릇 말아 뚝딱.

카레 한 솥 끓여 또 한 그릇 뚝딱.

반찬이 먹고 싶었던 날엔 간단히 고구마순, 마늘쫑 무침, 가지 조림해서 한 그릇 뚝딱.

오랜 만에 계란말이도 계란 다섯 개만 풀어 김치랑 해서 한 그릇 뚝딱.

김치가 맛있게 되는 바람에 이렇게 된거야, 어쩔 수 없지.

두부 김치 볶음해서 또 한 그릇 뚝딱,

 

 

 

중간에 간식으로 먹은 김치 비빔 국수,

잔치 국수,

기름 떡볶이,

이런 밀가루 음식 빼고도 밥 밥 밥.

 

 

 

이러면 안되는 걸 알면서 한 한 달 넘게 저렇게

밥 밥 밥 밥 밥

하루에 다섯 번쯤씩 밥을 먹었나 봐요.

 

 

 

정신 차리고 나니

뉴욕은 이미 여름 날씨가 되어 있었고

내가 즐겨 입는 여름 원피스들은 다 임부복처럼 보이고

 

 

 

 

헝거 게임의 마지막 3권을 끝냈을 시점엔

몇 날 며칠에 걸쳐 쉬지 않고 거진 400여 페이지 짜리 책 세권을 내리 읽느라 눈 알은 쑤셔 오고

허리 아프고

배는 남산만해 있고.

그나마 엔딩이 마음에 들어서 그거 하나 위안 삼으며

 

 

 

디자이너 친구한테 얻어 온 운동복을 입었어요.

 

 

 

지난 주에 얻은 거거든요.

아주 쫀쫀한 거 위, 아래 한 벌에

지퍼 달린 긴 팔 까지 완벽한 세트로.

안 그래도 이런 운동복 한 벌 장만하고 싶었는데

어쩜 이렇게 또 시기 딱 맞게 이런걸 나한테 가져다 주다니.

 

 

 

처음 한 날은

바지는 혼자 힘으로 입고 벗고 했는데

상의는 헉헉 대면서라도 혼자 어찌 어찌 입긴 했는데

벗을 때는 어깨 올라오다 말고 걸쳐져서 이도 저도 못 움직이겠는 거예요.

제 신음 소리 듣고 남편이 달려 와서 위로 잡아 당겨 줘서 겨우 벗었어요.

 

 

 

 

제가 한다고 하는 운동이라 봐야

공원으로 다녀 오는 걷기 운동.

그리고 집안에서 하는 스트레칭.

이게 다인데

운동복 입고 나서 거울 보니

차마 이 꼴로 밖은 절대 못 나겠고..

사진기로 배 사진 두어 장 찍어 놓고

거실에서 스트레칭 했습니다.

 

 

 

오늘까지 여섯 번 밖에 안 했지만

이제는 위에 운동복 혼자서도 벗을 수 있어요.

 

 

 

운동 시작하고 나서

과도하게 밥에 몰두하던 것도 어느 정도 진정 국면으로 들어 섰고요,

전기 밥솥에 대한 감사는

앞으로도 두고 두고 몇 년에 걸쳐 계속하면 되니까.

 

 

 

뱃 살, 등 살 찌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탄수화물은 목구멍 넘어가면 그냥 설텅 덩어리라는데

진짜 그 동안 내가 너무 했네, 너무 했어.

 

 

 

항상 끼니를 너무나 잘 챙겨 먹는 인생이다 보니

마음 한 구석

죄책감은 늘 있어요.

하는 일은 없는 인생이 왜 이렇게 먹는 것만 밝히나,

필요 이상으로 왜 이렇게 많이 지구위의 식량을 축내나,

어찌하여 인생의 관심사가 오로지 맛있는 것 챙겨 먹기일 수가 있나,

이런 죄책감.

 

 

 

눈 알 아프게 책을 읽겠거든

인생에 도움이 되는 좋은 책들도 많은데

할 일 없이

이 중년 나이에

틴에이져들이나 열광할 책 붙들고 낮이고 밤이고 시간 아깝게 이게 뭐하는 짓인지..

 

 

 

돈 벌 일을 찾고

건강한 먹거리 알맞게 먹고

운동도 하고

이렇게 살아야지

어째 이렇게 발전이 없어 인간이...

 

 

 

그런데 요 며칠 아침에 스트레칭이라도 하니

이런 죄책감이

아주 코딱지 만큼 줄어 들었어요.

 

 

 

오늘은 다른 날 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져서

전화기랑 어제 사 놓은 전화 카드 챙겨서 집 밖으로 나왔어요.

큰 언니 아들이 갑자기 빠듯한 일정으로 한국에 다녀 온다고 어제 갔거든요.

너무 갑자기 가는 바람에 이모랑 이모부 다른 사촌들, 조카 선물 아무 것도 준비 못 하고

아이 비행기 타는 당일 아침에 급하게 동네 옷 가게 뛰어 가서

사촌 언니 걸로 면으로 된 맥시 드레스 두 벌 사서 편에 보냈거든요.

 

 

 

나야 여기서는 어디든 가리지 않고 매일 입는 스타일이지만

한국에서 아줌마가 그런거 입는거 분위기 불편하거든

놀러 가서 휴양지에서 입든가

수영복 위에 커버업으로 입든가 하라고 설명해 주려고

전화 카드를 샀는데 저녁에 시간을 놓쳐서 못하고

 

 

 

오늘은 일찍 일어 났으니

한국으로 전화하면 딱 좋을 시간이라

운동은 나중에 하고 일단 나가서 전화를 하고 오자.

남편은 아직 좀 더 자야 하는데

제가 거실에서 떠들어 대면 많이 시끄럽거든요.

 

 

 

그러려고 보니

옷이 다 방 안에 있는 거예요.

방 문 열고 들어가서 부시럭 대면 남편 깰까봐

하는 수 없이 거실 클라짓에 걸려 있는 옷들 중에 하나 입는 수 밖에.

접어서 서랍에 넣었다 입지 않고

제가 옷걸이에 얌전히 걸어 옷장 안에 소중히 보관하는 옷들이 어떤 옷들이겠어요.

 

 

 

 

그래서 아침 댓 바람 부터

파티 드레스 입고 동네 수퍼마켓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국제 전화하고 왔어요.

통화 하면서

언니한테

 

 

 

아침 출근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 보네.

 

 

했더니

 

 

어제 밤 새 놀고 아직 집에 안 들어간 건 줄 알겠네ㅎㅎㅎ

 

 

 

하더군요.

언니가 요즘 모습 본지도 오래 됐다고 그 옷들 입고 사진 좀 찍어서 보내라길래 알았다고 했어요.

예쁜 옷 입은 사진은 운동 조금 더 열심히 하고 나서 찍어야 할 것 같아요.

요리와 책 읽기는 좀 자제하고

당분간은 운동에 더 초점을 맞추는 걸로.

 

 

 

목표는

배 둘레 살 정리하고

등에 근육을 좀 만드는 거예요.

 

 

 

아 이 출렁이는 뱃살 정말 지겹네요.

밥 좀 작작 먹어 대야하는데

입에 들어가는 것마다 너무 맛있어서 정말 큰 일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