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시골에서 시부모님이 시내 오셔서

저희 부부가 기차역으로 마중 가서

한인 타운 중국집으로 모시고 가서 점심 먹고 들어 왔습니다.

 

 

마침 게이 퍼레이드가 열리는 바람에...

왜 하필 이 날 이 복잡한 일이...

수 많은 인파를 뚫고 42가 기차역에서 35가 까지

열 블락도 안되는 거리 가기를 반나절 쯤 걸린 기분이예요.

 

 

항상 그렇듯이 그랜드 센츄럴도 인파로 붐비고.

큰 시계가 달려있는 안내 센터 앞에서 만나기로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른들 타신 기차가 도착하고 트랙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멀리서도 알아 보기 참 쉬운 나의 시부모님.

 

 

낡은 여행 가방 두 개에

낡은 옷차림에

그림은 딱

서울역에서 시골 고향에서 상경하시는 부모님 맞이 하는 딱 그거.

서울역이 아니고 뉴욕의 그랜드 센츄럴이라는 것만 다를 뿐.

 

 

마중 나온 자식들 찾아 내고 환하디 환한 웃음으로 인파 속에서 열심히 손 흔드는 모습도.

 

 

시아버지는 지난 번에 남편이(저는 없이) 한 번 모신 적 있다는

근처 술집으로 다시 가셨으면 했는데

남편이 지금 월드컵 경기 중이라 어디 술집이나 많이 시끄러울 거라고,

한국식 중국 음식점으로 가자고 말씀 드렸습니다.

 

 

제가 본의 아니게 그 유명한 뉴욕 게이 퍼레이드를 본 게

이번이 두 번 째 인데

몇 년 전에 처음 봤을 때는 그래도 실내 안에서 편안히 유리창으로 구경한 거였고

 

 

이번엔 그 인파들에 직접 섞인 거였는데

혼이 다 나갈 것 처럼 시끄러운 것 둘째 치고

이미 다들 자리들 잡고 서 있으면서 길이 꽉 찬 거라

뚫고 전진을 하는게 너무 힘들었어요.

 

 

중간에 경찰 아저씨한테 5 애비뉴를 관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34가와 32가 두 곳 뚫려 있다고 해서

목적지인 35가를 지나서 뺑 한 바퀴를 돌아야 했고

그나마도 길 하나 건너기를 철책으로 둘러친 곳 안에 들어 가서

줄 서 있다가 조금씩 조금씩 잘라서 건너게 해주더군요.

 

 

저 몇블락 가기를 한 시간이 걸렸어요.

 

 

새벽부터

성당까지 들렸다 미사 마치고 운전 두 시간 넘게 하셔서 기차역에 차 내려 놓고

기차 또 두 시간 타고 마침내 시내에 도착 하신 거라

지금 얼마나 시장 하시고 피곤하실까 걱정이 됐지만

 

 

원래 남편의 식구들이란 사람들은

짜증이란게 없는 사람들이라.

 

 

시아버지는 대대 손손 뼛 속 까지 카톨릭이시고

시어머니 역시 집안 자체가 성직자 집안 이시고

시어머니는 워낙에 생각이 트여 있는 분이시라 별 걱정은 없지만

시아버지가 혹시나 퍼레이드 언짢아 하시려나..했는데

 

 

제일 재미나게 구경을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열심히 걷는 와중에도 틈틈이 기린 목을 하시고 안에 쳐다 보시고

 

 

줄 섰다 길 건널 때는

중간 쯤에 섰을 때 

어떤 퍼레이드 차의 누구를 보고 그랬는지

갑자기 사람들이 와아~~~ 와아~~~ 함성이 터졌어요.

 

 

시아버지가 갑자기 모자를 벗고 길가에 늘어 선 사람들한테 흔드시면서

 

 

 

땡큐 땡큐

저를 이렇게나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땡큐 베리 마치!

 

 

 

남편하고 시어머니는 앞에 있어서 못 보고

이 썰렁하고 황당한 시아버지의 개그는 저 혼자 봤습니다.

 

 

나중에 조용히 남편한테 얘기해 주니

남편이 웃느라고 정신이 없어요.

동생들한테 이 얘기 빨리 해줘야 한다고

역시 아버지 답다고.

농담 한 마디를 하셔도 정말 썰렁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는 아버지.

 

 

 

긴 여정 끝에 도착한 식당으로 들어 가니

손님 두 테이블 밖에 안 차 있고

조용~한 가운데 에어컨이 빵빵.

아 천국이 따로 없구나.

 

 

남편하고 시아버지는 OB맥주를 세 병씩 결들여서

군만두, 탕수육, 깐풍기

이렇게 먹고 왔어요.

 

 

항상 그렇듯이

어느 누구와 대화를 나눠도 상대방이 기분 나쁠 수가 없는

그런 화법으로 대화를 하시는 시어머니 옆에 앉아서

도란 도란 그간의 근황을 주고 받고 얘기를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 지고

그러다 갑자기 시아버지가 단무지를 간장에 찍어 드시길래

화들짝 놀라서 저걸 말려야 하나, 했다가

한 입 드시고 또 드시는게

저렇게 드시는게 입에 맞으시는가 보지, 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시내에는 토요일까지 있다 가시는데

목요일엔 저희 사는데로 오신다고 하셔서

한 번 더 같이 데블 데이트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다른 스케줄은 어떻게 되는지,

내일은 뭐하시는지

여쭸더니

 

 

누구와 누구를 만나 점심 약속이 되어 있는데

그 사람이 누구냐면

두 분이 맺어 지는데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시어머니가 얘기를 시작 하셔서

두 분 처음 만난 얘기, 연애 하시던 얘기를 듣게 되었어요.

 

 

연애는 일 년 채 안되게 하시다

어머니가 청혼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존, 우리 이런 데이트는 이제 그만하고 결혼 합시다.

 

 

하셨다고 그랬거든요.

ㅎㅎㅎㅎㅎ

 

 

그런데 친구 통해서 어쩌고 저쩌고 해서 두 분이 처음 알게 된 후

친구 집 파티에 초대가 되서

어머니가 친구한테 물어 봤대요.

내가 누구 한 명을 더 데려 와도 될런지.

그 친구가 좋다고 해서

시아버지한테 가자고 하셨답니다.

 

 

그러니까 데이트 신청도 역시 어머니가 먼저 하신 거.

 

 

그래서 저 날 친구네 파티에서 잘 놀고

두 분이 택시를 타고 어머님 혼자 사는 아파트 까지 왔는데

 

 

어머님이

 

 

존, 내 아파트에 잠깐 올라 갔다 갈래?

 

 

했더니

 

 

아버님이

 

 

노우

 

 

하시더랍니다.

 

 

 

엥?

노우? 노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버님 진짜 노우 라고 하셨어요?

 

 

응 내가 그랬다.

 

 

그러고는요? 그냥 집에 가셨어요?

 

 

응 내가 그랬다.

 

 

 

헐........

 

 

저는 정말이지

제 시어머니가 시아버지 어디를 보고 그렇게 한 눈에 마음에 들었는지

미스테리예요.

하긴 저도 제 남편하고 결혼하고 이렇게 사는 거 보면

다 제 눈에 안경이고 짚신도 짝이 있고 남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 옛날

1960년 대에

곱게 큰 뉴욕의 부잣집 백인 처녀가

아프리카 아이들 가르친다고 우간다로 달려 가서 2년을 살고 온 이력

이거 하나만 봐도

용감하고 스케일 크고 범상치 않는 멋있는 여성인데

 

 

 

이런 우리 시어머니가

야망도 없고

아무 욕심도 없어

숫기는 더더욱 없어

뭘 보고 반했는지...정말 사랑은 미스테리.

 

 

저 댁 1남 3녀는

딸은 죄다 엄마 닮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또 딱 아버지 닮았네요.

아오.....

 

 

 

시부모님과 더블 데이트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는 지하철 안에서 남편한테 말했어요.

 

 

 

당신 아버지는

어머님 아니었으면

오늘 날 분명히

팔십 넘긴 노총각이셨을 거야.

 

 

 

부인 말씀이 맞을 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

 

 

 

 

 

저 사람도 나 아니었으면

오늘 날

마흔 중반 노총각이었으려나...

 

 

 

결혼 40주년을 훌쩍 넘기고도 두 분이 저렇게 서로 좋아 하시는 건

그건 저는 못 따라 할 것 같아요.

난 참을성 많고 마음이 바다처럼 넓은 우리 시어머니가 아니니까.

 

 

그래도 저 사람이 나한테 올 때

좋은 부모님 보나스로 달고 왔으니

이건 가산점을 좀 주긴 해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