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동네 술집에서 한 남편 연주 잘 보고 왔습니다.

 

 

제가 제대로 내조를 하겠다, 마음 먹었던 대로

처신을 완전 100점 짜리로 잘 하고 왔어요.

지금 생각해도 아주 가슴 뿌듯합니다.

 

 

보컬 + 기타

해서 어쿠스틱 듀오였는데

저도 그간 말로만 듣던 보컬씨를 처음 만나는 자리였고

 

 

남편이 이제 앞으로 동네 술집에서라도 꾸준히 뭘 하려면

제가 봤을 때는 저 보컬씨를 꼭 붙잡고 있어야 되거든요?

 

 

 

그러자면 저도 저 보컬씨한테 좋은 인상을 줘야 하고

저 발 넓은 보컬씨가 동원해 온 그 쪽 세계 친구들한테도

인사 소개 시켜 주는대로 두루두루  상냥하게 인사 잘 하고

하기 싫어도 이 사람들과 어느 정도는 어울려서 얘기도 조금 하고

무엇보다 싸이코라는 정체를 들키지 않고 정상인 같은 인상을 남겨야 하니

별스런 짓 하지 말고 멀쩡하게 있다 오자...한대로

잘하고 왔어요.

 

 

네 시간 동안

맥주 두 잔 마시고 그 다음은 얼음물 마시다 왔으니 말 다 했죠.

하...

이런 짓은 내가 스무살 아가씨 였을 때 소개팅 나갔을 때도 안했던 조신한 짓인데...

 

 

 

 

이 사람과 연애를 할 때는 물론이고

결혼을 하기로 마음 먹던 시점에서도

저는 테이블 위에 저 사람 가져 가라고 올려 놓은 것이 없었어요.

그 사람이 나를 위해 무엇을 올려 놓을까

나를 앞으로 어떻게 더 편하게 해 줄 것인가

이런 것만 생각 했더랬습니다.

 

 

자기가 내가 좋다니..

이걸로 끝.

그래서 날 너무 좋아해서 결혼하면 뭘 해줄건데?

이런 것만 생각했었어요.

 

 

 

저 사람 하나하고만 같이 있는 건 괜찮은데...

 

 

사귀고 나서 오는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그런 시기가 단계적으로 올 때마다

저 사람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도 불편했고

친구들과 있는 것도 더 불편했고

나중에 결혼하고 나서는

부부 동반으로 회사 모임 가는 건 정말 미치도록 불편했고.

 

 

 

그래서 어쩌다 저런 자리 다녀 오면

얼마나 성질을 부리고 혼자 지랄을 했던지.

내가 당신 땜에 오늘 얼마나 불편한 저녁 시간을 보냈는지 아냐고

유세를 떨고 난리를 치고.

 

 

 

 

 

같이 가 주면 좋았어야 할 자리들 거진 반 넘게는 저 사람 혼자 보내고

 

 

가서도 내가 누구 눈치보고 구박 받고 하는 것도 아닌데

물 한 잔 술 한 잔도 다 저 사람이 받아다 주고

공주님이 시종 노릇 부리듯 저 사람 다 부려 먹고

저 사람이 저 자리에 간 이유인

사람들과 어울려 수다 떠는 것도 기분 좋게 못할 만큼 내 눈치만 보게 하다 왔으면서 말이죠.

 

 

공주라서 공주짓을 한게 아니예요.

저 사람이 마냥 다 받아 주니까 내가 그래도 되는 줄 알고 그저 기고만장 해서.

잘난척 하는 사람들이 잘나서 잘난척 하는게 아니고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잘난척 하는 것 처럼

(어디 진짜로 잘난 사람들이 남들더러 나 잘난거 알아 달라고 잘난 척 하던가요)

저 사람이 나를 공주 마냥

세상에 둘도 없는 굉장한 여자인양 대접을 해주니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내가 뭘 해야 되는 자리인지 무엇 때문에 온 자리인지

이런거 안중에도 없이

그냥 내 기분만 중요해서 미간 잔뜩 찌뿌린채로 온갖 신경질은 다 퍼부으면서

진짜 밥맛 없이 안하무인으로 살았네요.

 

 

 

그러다

시집 식구들하고는 차차로 정이 들고 좋아져서 지금은 이렇게 됐고요,

친구들도 그렇고요.

저도 이 남자가 나한테 질려서 도망가기 전에

정상인처럼 살아야 겠다는 노력을 하면서 정신줄 조금씩 챙기게 되었고요.

 

 

남은 한 가지가 저 사람 일 때문에 어울려야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인데

 

 

 

정말 지난 날

뭐든지 내 마음대로 해야 하고 그게 뜻대로 안되면

미친 여자처럼 못되게만 굴고 살았던 거 너무 미안하고

결혼 생활 내내

저 사람이 날 위해 뭘 해줄 건지만 생각하고 살았던거 미안하고

제 건강 문제도 있었고

저 사람한테 그 동안 짐만 되었던 마누라였던지라

이제부터라도 짐 대신 힘이 되는 배우자가 되겠다고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거지요. 말하자면ㅎ

 

 

 

그래서,,,

남편이 제가 가면 이번엔 아무 일행이 없이 공연 내내 제가 취객들 틈에서

혼자 앉아 있어야 하는데 괜찮겠냐고 걱정 하길래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걱정 말라고 안심 시키고요.

 

 

 

가서는 술 한 잔 얌전히 받아서

취객들 틈새에 안 끼고

무대 옆 음향 조절하는 아저씨 바로 옆 구석탱이 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콕 쳐박혀 앉았고요,

 

 

첫 세트가 다 끝나도록 맥주 첫 잔을 반 밖에 안 마셨어요.

 

 

쉬는 시간에 남편 손 끌려서

보컬씨랑 통성명하고

돈 주시는 분인 술집 사장님한테 가서 인사하고

그 다음 보컬씨 응원하러 온 친구들 쭉 돌아가며 또 통성명하고.

 

 

두번째 세트도 끝나고 나서는

두 잔 째 먹고 있던 맥주 남편이 합류해서 같이 마시고.

 

 

저런게 공연 끝났다고 바로 돈 받고 기타 들고 냉큼 나오는 그러는게 아니잖아요.

보러 와 준 친구들하고 그 안에 있던 손님들하고

일잔씩들 곁들이면서 뒤풀이 같은 걸 해야 하니까

이거까지 남편이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저는 얼음물 잔을 홀짝이면서 무려 두 시간도 넘게

피곤한 척 일체 안하고 잘 기다려 줬어요.

아...지금 생각해도 또 대견하네.

 

 

 

새벽 공기 마시면서 둘이 어깨 동무하고 집에 와서

새로 결성된 옛 친구와의 듀오 공연 성공을 다시 한 번 축하하며

기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남편이 정말 정말 행복해 해서 보람이 있었어요.

주무셔야 할 시간에 와서 자기 응원해 준 것도 고맙고

사람들 앞에서 자기 얼굴 세워 준 것도 고맙고

내가 자기 와이프라서 자기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도 고맙고.

 

 

 

이런 얘기를 자려고 이불 속에 누워서 하는데

저도 마음이 좀 그렇잖아요.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왠지 좀 뭉클해지기도 해서

 

 

 

내 탬버린 필요하면 다음 번에 빌려다 써도 좋아.

 

 

 

라고 말해 버리고야 말았네요.

 

 

 

남편이 순간 잠잠한 것이...

또 울먹하는 것 같았어요.

나에게 내 탬버린이 어떤 것인지를 저 사람은 아니까.

그걸 빌려다 써도 좋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니까..

 

 

 

보컬씨랑 연락이 다시 되고 공연 계획이 잡히고

처음 같이 연습 한다고 그 집에 다녀 와서는

정말 신이 난다면서 흥분 상태에서

연습 후기를 어쩌고 저쩌고 쏟아 놓은 끝에 한 말이

 

 

 

어쩌면 당신 탬버린 빌려야 할지도 몰라요.

보컬은 원래 퍼커션이나 탬버린 들고 노래를 하니까.

 

 

 

그래서 제가 정색을 하고 따져 물었거든요.

 

 

 

아니 그 사람은 노래를 지금 밴드에서 몇 십년 째 한다면서

자기 탬버린이 없냐고.

 

 

 

내가 비록 밴드에서 노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 탬버린은 내가 나름대로 아끼는 나만의 악기이자

내가 유일하게 다루는 악기이고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당신 집에 없을 때

음악 틀어 놓고 내가 꾸준히 치면서 1분에 300타 고지를 향해 연습하는 건데

그걸 왜 남한테 빌려 주라고 당신이 쉽게 당연한듯 말을 하냐고.

 

 

 

그랬더니 두 번째 연습하고 온 날엔

보컬씨가 자기 탬버린 있다고 부인은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없던 일로 하자고 그러더라고요.

 

 

 

내가 조금 치졸했나...라고 뉘우 치려던 찰나에

공연 가서 봤더니

빨간색 탬버린 하고 다른 거 모래 주머니 소리나는 퍼거션이랑

두 개 번갈아 쓰며 노래 하더라고요.

 

 

 

그 빨간 탬버린도 나쁘진 않았어요.

 

 

 

그래도 내 껀...

건전지 넣으면 불 들어 오는건데...후훗~~

 

 

 

 

 

남편한테

빌려다 쓰겠다고 하면 제가 건전지도 갈아 끼워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고맙다고 역시 당신 밖에 없다고 또 감동 하더라고요.

 

 

 

내가 뭐

탬버린 연습 당분 간 중지한다고 해서

크게 제 생활에 지장 있을 건 없어요.

오늘 내일 탬버린 스킬로 직업 전선으로 나갈 것도 아니었고.

 

 

 

까짓거 필요 하다면 내주죠 뭐.

 

 

 

 

그 보컬씨는 저를 보자마자 첫 마디가

자기 집에서 팟럭 하자고.

제가 인터넷에 올렸던 음식 사진들 봤다면서 꼭 조만간 날 잡자고.

 

 

이것도 날 잡히면 당근 하려고요.

 

 

소갈비가 됐든 돼지갈비가 됐든

사진 속 뭐가 먹고 싶은지 아무 거나 찍으라고 해서 만들어 들고 가면 돼죠. 이까이꺼.

 

 

아...이 훌륭한 내조의 끝은 어디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