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 감사절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남편과 오붓하게 영양 실조스러운 연휴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집에 남고 남편만 둘째 동생네로 가서 가족과 명절을 보내고 올 예정이었으나

남편이 목요일 전후로 다 일이 잡혀 버리는 바람에 남편도 그냥 집에 남았어요.

 

 

 

터키를 구워 먹자는 가당찮은 제안을 하길래

일단은 제가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가

제 바람대로 결론은 안 구웠죠.

 

 

들뜬 기분으로

우리도 터키를 직접 구워 보는건 어떨까요?

하는데

막바로 그건 절대 안돼, 할 수는 없잖아요.

저 사람도 자기 고유의 명절을 즐길 권리가 있는데.

일단은 장단을 맞춰 주고

천천히 나의 작전을 펼쳐 나가기로 전략을 짰어요.

 

 

그래서 이불 속에서 도란 도란

즐거운 계획을 나불나불 서로 교환 했어요.

사이드는 뭘로 할건지 까지 다 의논하고.

 

 

다음 날 아침에

저 혼자 일찌거니 동네 한 바퀴 쭉 돌았어요.

수퍼 마켓 두 군데에서 터키 물량 훓어 보고

정육점도 가서 구경하고

 

 

집에 와서 

느즈막히 일어 나서 화장실 들어가 앉아 있는 남편한테

문 밖에서 조사 결과를 브리핑 해 줬어요.

 

 

제일 작은 녀석이 삼십 몇 불쯤 하더라...

(아 진짜 내가 고기 값으로 이 돈을 쓸거면 갈비찜을 해먹지 말이죠. 그래도 본심은 숨기고)

 

 

로 시작해서 어쩌고 저쩌고

어쩌고 저쩌고 어쩌고 저쩌고

결정은 당신이 해.

당신이 원하면 난 할 수 있으니까.

빨리 결정해야 할거야.

당신이 들고 와야 하는데 해동하고 염지하고 다 하려면

오늘 당신 나가기 전에 사다 놔야 하거든.

 

 

남편이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쯤

터키 굽는 일은 전면 백지화 됐어요.

 

 

 

휴우...

이겼다 또 이겼다...흐흐흐흐....

 

 

 

제가 저게 하기 싫어서가 절대 아니고요,

4파운드 짜리 닭 한 마리를 구워도 둘이 몇 번에 걸쳐 먹어요.

저 사람은 닭 요리를 엄청 좋아하기는 하지만

원래 술 배만 컸지 음식 배는 간장 종지 만해서

항상 저 먹는 양의 반 정도만 먹는 사람이고

저는 고기 중에 닭고기를 제일로 안 좋아하고요.

 

 

 

거기다 몇 년 전에

시골 집 가서 폭설에 묶여서 오로지 터키만 몇 날 며칠 먹은 이후로는

그 트라우마가 가시질 않아서

저는 정말 괴롭거든요.

터키를 구웠다가 그걸 둘이 어떻게 처리를 하냐고요.

 

 

어쨌든 저는 추수감사절 디너 메뉴는 전적으로 당신 뜻에 따르겠다 했더니

식당에 나가서 터키 먹자고 했다가

스테이크를 구워 먹자 했다가

또 막판에 자기가 마음이 바뀌어서

직접 수퍼 마켓 행차하여 사들고 온 것이

 

 

꽁치 캔.

 

 

이번에 김치 담갔을 때 조르긴 했었어요.

익으면 꽁치 조림 해달라고.

 

 

속으로 좀 많이 웃기긴 했는데 여튼 본인이 그게 먹고 싶다니.

 

 

그래서 김치 냄비에 깔고 국물 넣고 푹 익힌 다음에

꽁치 캔 따서 넣고

새로 한 밥에

그렇게 둘 만의 추수감사절 만찬을 먹었습니다.

 

 

사실 이게 오랫 동안 먹고 싶었대요.

아주 맛있다고 고맙다고 하면서 먹길래

캔 안에 네 조각 들어 있거든요.

특별히 남편 세 조각 줬어요.

저는 꽁치 조금에 김치 위주로 먹고요.

 

 

 

조촐하게 둘 만의 추수감사절 해치우고 나니까

그런대로 괜찮았던 것 같아요.

 

 

저도 지금 친정 식구들하고 또 사이 안 좋아서

큰 언니가 저녁 먹으러 오라고 하는거 안 간다고 했고

 

 

남편 쪽은

며칠 전에 상이 있었어요.

남편 외삼촌이 돌아 가셨거든요.

시어머니의  큰 오빠.

 

 

 

이 분은

시어머니가 형제 중에 가장 가깝게 왕래하던 분이고

이 분이 먼저 시내 생활 접고 그 시골로 가셔서 터를 잡으시고

시어머니는 여름 방학 때 마다 아이들 데리고 오빠 집 방문하다

결국은 같이 그리로 이사를 하게 된

그래서 남편 집도 그렇게 시골 생활이 시작된 거거든요.

 

 

 

명절 때 마다

시골가면 뵈었었고

말 수도 없으시고 무뚝뚝 하신 분인데

저 많이 예뻐해 주셨어요.

 

 

언젠가

우연히 집에 빠다 코코넛 쿠기 한 봉지가 생겨서

쳐박아 두고 있다가

시골 가는 길에 들고 갔었어요.

심심할 때 먹어야 겠다, 하고.

외삼촌 오셨을 때 접시에 몇 개 꺼내 놨더니

집에 가시는 길에 물어 보시더라고요.

그거 뭐냐고. 아주 맛있었다고.

 

 

음식이고 과자고 무슨 일에고 뭐고 당췌 이런 저런 별 말씀이 없으신 분이

맛있었다고 하시길래

시골 가기 전에 한국 마켓 들를 경황이 있으면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강냉이 한 봉지 사면서

빠다 코코넛 쿠키도 한 봉지 사 갔더랬어요.

 

 

한국 마켓은 제가 자주 가지를 않아서

일부러 저거 사려고 챙겨 가지는 못했었는데

더 부지런히 사다 드릴 걸..

 

 

 

이것 저것 일 벌려서

둘이 먹자고 만찬을 근사하게 할 기분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남편의 외삼촌이 돌아 가셔서

빠다 코코넛 쿠키 더 못 사드린게 후회가 되면서도

정작 나의 엄마와는

이러고 있고.

 

 

함께 있을 때 감사하고 사랑하면서 살아야지 하면서도

반복되는 어긋남과 상처만 받는 관계에 힘들어서 이러고 있자니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지 어떤 후회가 소용이 있는지

이것 저것 많은게 혼란스러웠어요.

 

 

 

남편의 외삼촌에게는 전 많이 사랑스러운 조카 며느리였어요.

연애할 때 처음 뵈었을 때 남편한테 그러셨대요.

너한테 넘치는 여자를 어디서 용케 찾았구나. 놓치지 말아라.

 

 

 

남편의 부모님한테도

넘치도록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남편의 여동생들과는 더할 나위 없이 좋고 편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런데 정작

 

 

 

나를 낳고 키워 준 엄마와는

나는 이러고 있어요.

 

 

너무 나쁜 딸.

 

 

좋은 며느리 되려고 노력한 적 없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예쁘다 예쁘다 잘한다 잘한다 해주시는 시부모님하고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다 못 마땅해 하는 나의 엄마를

자꾸 비교 하면서 힘들었던 것도 같고..

노력을 해도 비난만 받는 것이 힘들기도 했고 참기 싫기도 했고

그랬어요.

같은 부모한테서 나온 자식들 놓고 차별하는 것도 이제는 정말 그만 하시라 사정도 해 봤고

그래도 안되서 지치기도 했고 화도 많이 났고

그랬어요.

 

 

 

두 해 전인가

시어머니 작은 오빠 되시는 분 돌아 가셨을 때

장례식 마치고 식사하러 가는 차 안에서 시아버님 하신 말씀이

 

 

두 분은 의대에 사체 기증하기로 되어 있어서

우리는 관 값도 필요 없고 장례 비용도 필요 없다 하셨거든요.

의대생들 해부 실습용으로요.

실습이 끝나면 의대 측에서 화장을 해서 유족에게 유골함을 보내는 거래요.

외삼촌도 함께 다같이 이걸 하셨었던 모양이예요.

 

 

부고 후에 바로 의대에서 시신 모셔 가서

의대생들이 실습 마치면 화장을 해서 유골함을 유족에게 보내기로 되어 있어서

당장은 장례도 메모리얼 서비스도 없을 것이고

시어머니하고 사촌들이 결정한 바는

내년 여름에, 날씨 좋을 때에 날 잡아서

외삼촌이 열심히 사셨던 생을 즐겁게 기리는 파티를 하겠다..이렇게 말씀 하시더라고요.

 

 

작은 외삼촌 돌아 가셨을 때는

시어머니가 많이 우셨었는데

사이가 안 좋아서 평생 소원하게 지내시다 말년에 잠깐 사남매가 화해하시고 풀었었거든요.

가까지 지내질 못했었다고 안타깝다고 많이 우셨어요.

큰 외삼촌은.. 시어머니가 담담하세요.

제일 가까지 지내셨고

사시는 동안 남매 지간으로 사이좋게 그렇게 잘 지내셨었어요.

더 아프지 않고 금방 잘 가셨다고 덤덤하게 받아 들이시더라고요.

 

 

살아 있던 동안

원없이 후회없이 남매로써 잘 지내셨어서

보내드리는 길도 더 잘 보내드리는가 싶어요.

 

 

저는 여전히

뭘 어떻게 감사해야 할 지 모르는 채로

머리로는 많은 걸 감사해야 하고

후회없이 살도록

지금 이 순간 다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 알겠는데

마음이 잘 따라주질 않아서

이도 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면서

추수감사절 연휴를 보내고 있고요.

 

 

 

아쉬운 마음에

아침에 닭 한 마리는 사 왔어요.

연휴가 다 가기 전에 남편한테 짝퉁 터키라도 구워 주려고요.

어제는 아침 일찍 부터 밤 늦게 까지 일하고 왔거든요.

잡다하게 일을 세 탕이나 뛰고 들어 왔어요 남편이.

 

 

 

온전히 성숙한 인간이 되려면

머리도 마음도 같이 크고 무르 익어야 하는데

마음은 여전히 어린애인 것 같은 내가 못마땅하고

다 자라지 못한 상처 투성이인 내 마음도 짠하면서

어떤게 좋은 해결책인지 미궁에 빠진 채로

이렇게 마냥 어지러운 채로 닭 한 마리 쳐다 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건 틀림 없이 맞는데...

후회없이 사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고

이것 저것 감사해야 마땅한 줄은 아는데

별로 크게 감사한 느낌이 들지는 않고

이것도 없어 봐야 된 통 지금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를 깨달으려나.

 

 

두서없이 복잡한 마음으로

닭 손질 들어 갑니다.

 

 

모두들,,, 마음 한 조각 붙들 평안한 하나가 있다면

일단 그거 하나 보고 감사하기로.

저는 닭 한 마리 쳐다 보며 닭아 고맙다 해 보려고요.

 

 

둘째 언니가

요즘 돈 좀 돌고 있다며

뒤늦은 생일 선물 보내주마, 사고 싶은거 사려므나, 한 지가 일주일인데

아직 메일은 도착을 안 했어요.

이거 도착했더라면 정말 좋은 추수 감사절이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진짜 고마워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거든요.

 

 

닭 오븐에 넣은 다음에

전화해서 어떻게 된거냐고 따져야 겠습니다.

 

 

모두들

해피 땡스기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