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오랜 만에 전화 통화를 하면서

어느 새 또 이렇게 연말이 왔다는 한탄과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통탄을 섞다가

주말에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습니다.

 

 

뭐가 어디서 얼마에 세일을 하고.

 

 

연말이라고 이런 것만 눈에 들어와서 큰 일이예요.

사고 싶은 것 많고 갖고 싶은 것 많아서.

 

 

친구들 만나면 아무래도 백화점 한 번 훑을 것 같은데..

으윽...

아예 카드를 놓고 나아야 하나...

점심 먹고 한국 마켓 들러서 김치나 한 봉지 사와야겠어요.

 

 

시간도 많고

둘째 언니네서 얻어 온 고춧가루도 넉넉히 있는데

배추 맛있다는 가을 내내 김치 한 번도 안 담갔고요,

언니네서 조금씩 얻어 다가 깨작깨작,

김치 자체를 거의 안 먹은 것 같아요.

 

 

김치 말고도

지난 두어 달 간 제 식단이 확~ 바뀌어 가지고요

한식을 거의 안 먹게 됐어요.

 

 

시작은 잇몸 염증 때문에 그 항생제, 그걸로 시작이 되서는

입맛이 엉망진창이 되어 가지고

(평생에 이런 일이 처음이었어서 정말 황당했어요)

냄새도 제대로 못 맡고요.

 

 

앞에서 푹익은 열무 김치를 여는데 냄새가 하나도 안나요.

그리고 보기엔 맛있어 보이는데 먹어 보면 그냥 풀 씹는 것 같고 아무 맛이 안 느껴지는 거예요.

정말 황당했어요.

저게 며칠이 되고 일주일이 되고 이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이렇게 되면서

정말 밥 먹는 게 '일'이 되어 버렸어요.

 

 

음식에선 냄새가 안나고

입에 집어 넣으면 아무 맛이 안 느껴지는데

끼니를 때우자니 너무 고역인 거예요.

그래서 어떤 날은

칼로리 와장창인 코코넛 밀크 한 캔 꿀떡꿀떡 들이키고 한 끼 때웠다 이런 적도 있고ㅋㅋㅋ

 

 

 

식사 대용으로 할 수 있는 프로틴 파우더 이런 것들 한참 알아 보는 와중에

이 달 들어서 입맛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 왔어요.

두어 달을 이가 아파서 제대로 못 먹고

그 다음은 입맛이 주책이라 제대로 못 먹다가

다시 먹게 되니까

 

 

먹을 수 있는 즐거움,

그 감사함.

 

 

밥, 밥, 밥 하던 사람한테

밥 먹는 즐거움이  없어지니

사는 재미 자체가 공중으로 증발해 버린 것 같았어요.

좀비처럼 살았음.

아마 이 상태가 더 오래 갔더라면 저는 아마 위험한 상태가 됬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사는 재미가 저거 말고 달리 여러 가지가 있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죠.

정말 괴롭던 와중에

그래도 긍정적으로 끌어낸 결과 하나는,

 

 

이참에 하루에 밥 먹는 횟수 좀 정리하자, 딱 세 번으로.

 

 

이렇게 됐어요.

 

 

집에 있으면 두 시간 마다 뭘 집어 먹어야 하고

밖에 나가서는 이 버릇 때문에 일 하기도 힘들고

'밥' 강박증에 빠져 사는 것도 같고

뭐 먹을까 궁리하고,

준비하고,

먹고,

양치질하고

하루에 여기에 쓰는 정력과 시간이 대체 얼마인지.

 

 

내 입, 식도, 위장, 소장, 대장은 쉬는 시간 없이 하루 왼 종일 일을 해야 하고.

 

 

하루 대여섯 번 먹던거

몰아서 딱 세 번으로 먹고 있고

저녁은 아주 아주 일찍 먹고 있고

메뉴도 대폭 간단해 졌고

부엌에서 음식 만드는 시간도 많이 줄었어요.

 

 

 

우연이라면 우연히 그것도 획기적으로 바꾸게 된 식습관인데

해 보니까 좋아요.

'밥의 노예'에서 해방된 기분이랄까? ㅎ

몸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소화 기관들이 자기들 쉴 시간 줘서 고맙다고 그러는거 같음ㅎ

 

 

 

한참 먹지 못해서 고생할 때

머리 속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고 계속 맴도는 게 뭐였냐면

 

 

짜장면,

 

 

이었거든요.

내일 모레 친구들 만나면 점심으로 저걸 먹자고 할까..

그런데 친구 하나가 밀가루 음식 먹으면 잘 체해서 먹자고 하기가 좀 미안도 하고.

게다가 이렇게 날씨도 쌀쌀하면 배탈나기 더 쉽죠?

 

 

 

짜장면 먹은지...보자...

워매 거진 반년 전이네.

이번에 못 먹으면 올 해 가기 전에 어떻게든 먹어 보리라.

 

 

 

이런 꿈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사는 맛이 있죠.

나의 소박한 꿈,

 

 

올해가 가기 전에 짜장면 먹기!